중국은 지난해 10월 개최된 19기 4중전회에서 “중국특색사회주의제도의 견지 및 완비와 국가 치리(治理)체계 및 치리능력 현대화 추진에 관한 결정(中共中央关于坚持和完善中国特色社会主义制度、推进国家治理体系和治理能力现代化若干重大问题的决定)”을 발표했다. 2013년 18기 3중전회에서 처음으로 “치리 현대화”를 제기하고 336개의 중대 개혁조치를 발표한 이후, 중국지도부는 지난 몇 년간 당-국가영도 체계를 정비해왔다. 19기 4중전회의 결정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중국 제도와 치리의 내용을 더욱 구체화함으로써 개혁의 방향을 확고히 한 대회로 평가할 수 있다.
중국 지도부는 18기 3중전회를 하나의 “시대를 구분하는(划时代)” 대회로 규정하고 있다. 1978년 개최되었던 11기 3중전회가 ‘개혁개방’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18기 3중전회를 기점으로 지난 개혁개방과는 다른 새로운 개혁개방의 단계, 이른바 “신시대 개혁개방”으로 들어선 것으로 시대구분을 하고 있다. ‘경제건설’에 초점을 맞춘 기존 개혁개방 시기와는 달리 ‘전면발전(전면심화개혁)’의 단계로 들어섰다고 보는데, 여기서 ‘전면심화개혁’이란 경제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등 전 영역에 걸친 개혁을 포함할 뿐 아니라, 중국에 걸맞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중국 이론으로 설명하겠다는 계획까지 포괄한다. ‘사회주의제도’의 확립과 방향을 확실히 정하고 ‘치리 현대화’를 통해 금세기 중반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国梦)’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방법과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다. 조직기구개편과 관련 정책의 재정비를 통해 이른바 ‘제도자신’을 실현하는 ‘사회주의 제도’를 확립해나간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개혁개방을 이렇게 새로운 단계로 규정하면서 새로운 발전단계와 발전성격에 맞는 통치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것이 4중전회에서 구체화하고 있는 치리의 핵심 목표라 할 수 있다. ‘치리’ 개념은 베이징대의 위커핑(兪可平) 교수가 처음으로 중국학계에 소개한 이후 주로 학술차원에서 논의되어오다 18차 당대회 이후에는 현실정치영역에서 사용하게 된 용어이다. 중국에서는 ‘governance’를 ‘치리(治理)’로 번역하지만,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거버넌스’와는 의미가 다르다. 중국에서 치리는 대상 영역에 따라 그 기능과 목표가 다른데, 국가 수준에서는 중국 제도건설이라는 통치시스템의 완성을, 정부 차원에서는 중국식 정부관리 현대화의 실현을, 사회 차원에서는 다원화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하여 기층자치를 실현하는 거버넌스 기제의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치리’는 ‘국가통치’로, ‘정부치리’는 ‘정부관리’로, ‘사회치리’는 ‘사회거버넌스’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몇 가지 차원에서 기존 정치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정치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의 영도체계를 제도화한다는 점이다. 4중전회 문건 마지막 15번째 부분에서는 사회주의제도 견지와 치리 현대화가 당의 중대한 전략적 임무라고 명시하며, 이에 대한 당 영도 강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건에서는 “중국공산당영도는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고, 중국특색사회주의제도의 최대 장점이다. 당은 최고정치영도역량이다. 반드시 당정군민학(党政军民学), 동서남북중(东西南北中)을 견지하고 당이 모든 것을 영도한다. 당 중앙 권위를 견결히 수호하고 ‘전 국면을 총괄하고 각 분야를 조율하는(总揽全局、协调各方)’ 당 영도제도체계를 확립한다. 당의 영도가 국가치리 각 영역, 각 분야, 각 부분(과정)에서 실현되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국가행정 뿐 아니라 전체 사회에 대한 ‘당 우위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문혁이 끝난 뒤 개혁개방 초기의 정치적 상황에서 덩샤오핑이 ‘당정분리(黨政分開)’ 방침을 확정했지만, 1989년 천안문사건 이후 실제로 당정분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덩샤오핑이 강조했기 때문에 아무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지 않은 것이지 실제로는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고, 18대 이후 이것을 실제 문제로 받아들여 당의 영도지위와 집정지위를 보장할 수 있는 구조와 제도를 이론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추진하는 “신시대 개혁개방”의 제도나 정책들이 덩샤오핑의 개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개혁 정책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 새로운 시대 변화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인 정책에 반영하는 단계로 해석한다. 새로운 시대인식이 반영된 정책방침의 핵심은 ‘당 우위 원칙’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당은 정치적 영역에서, 국가(행정)는 법적 영역에서 작동하도록 구분하려고 했던 기존의 제도적 구상은 이제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법적, 행정적, 제도적으로 당 우위 사회를 만들어간다는 방침을 확고히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당 중앙권위와 집중통일영도를 수호하는 제도를 완비”하고 “당 중앙 정책결정 의사협조기구의 직능역할을 강화”하며, “당 중앙에 대한 보고제도를 엄격히 집행”하고 “전면적 종엄치당(从严治党)의 제도를 완비”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인대, 정협, 검찰기관, 인민단체 뿐 아니라 기층사회조직이나 기업·사업단위에서도 당 조직 건설(党建)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사상, 교육, 선전과 관련된 국가기관들이 당 기구와 통합되어 이미 당 조직 편제(编制) 안으로 들어갔으며, 의사협조기구인 몇몇 ‘영도소조(领导小组)’가 ‘위원회(委员会)’라는 제도화된 조직으로 개편되기도 했다. 당의 영도를 우위에 두면서 집중된 권력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자체 권력감시제도도 강화해왔다.
이렇게 볼 때 시진핑 일인권력의 강화 현상은 당 중앙권위와 집중통일영도의 제도화라는 흐름과 결합해서 파악해볼 수 있다. 즉 기존 영도체계에서 발생한 부작용이나 약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개혁의 방침이 정해졌고, 이 과정에서 최고지도자의 핵심적 지위가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후진타오 시기의 이른바 ‘구룡치수(九龙治水)’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책결정이 어렵고 중앙의 권위가 쇠퇴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관료들의 부패문제나 빈부격차, 환경오염 문제 역시 개혁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 만큼 심각한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중국 체제논리에서 부패문제는 반드시 권력집중, 즉 ‘집권(集权)’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구조의 영도체계를 갖추고 이를 제도로 보장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상황에 대한 인식이 중국정치의 ‘전변(转变)’을 초래한 중요한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 지도부는 현재 세계가 “백년에 일찍이 없었던 대변국(百年未有之大变局)”에 처해있고, 중국이 직면한 도전 역시 전례없이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인식과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대내외적 리스크와 기존 개혁으로 인해 초래된 경제사회적 과제를 극복해 나가려면 반드시 당 영도 하에 중국특색사회주의제도 견지와 치리현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035년까지 각 분야의 제도를 완전하게 확립하여 국가치리체계와 치리능력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하고, 건국 백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치리 현대화를 전면적으로 실현하여 중국특색사회주의제도를 공고히 하고 그 우월성을 드러낸다”는 계획이다. 18기 3중전회 이후 35년 간의 중국정치의 방향이 새롭게 정해졌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중국 체체를 ‘당-국가체제’의 틀에서 분석해왔는데, 이제야말로 당이 국가를 통치하는 ‘당치국가(党治国家)’를 실질적으로 관철시키는 체제로 들어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18년 3월 헌법 개정이후 일각에서는 주로 “일인권력집중이냐 집체영도의 지속이냐”는 화두에 집중해왔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당의 영도를 법치화하고 제도화하여 당의 장기적이고 확고부동한 집정지위와 권위기준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 공식적인 제법(提法)으로는 “당 국정운영(党治国理政)”, 또는 “당이 인민을 영도한 국정운영(党领导人民治国理政)”이라고 부른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당이 인민에 대해 영도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아직 진행 중에 있고 많은 과정이 남아있지만, 중국 정치의 새로운 전환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물론 중앙의 계획을 집행하는 각급 지방정부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조직 동원력이나 돈을 살포하는 방식(维稳奖励费)으로 중앙의 방침을 실행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저급한 애국주의행태나 개인숭배현상(低级红/高级黑)도 나타났다. 치리의 현대화를 제시했지만, 공안식 안정유지와 일상에 만연한 ‘작은 부패’ 현상은 현대화된 치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공산당 창당 백주년을 한 해 앞둔 2020년,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정치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그리고 이러한 구상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행되어 가는지 면밀한 관찰을 통해 읽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