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나라의 경제를 전망하는 일은 주역으로 한 해의 운수를 점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고 어려운 일이다. 중국경제의 앞날을 예측하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0년 초부터 전염성 강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2019-nCoV)가 중국 우한시를 중심으로 창궐하여 언제 진정될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인명이 상하는 일이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한편에서는 벌써부터 이 전염병이 중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 예측의 진위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수 있겠으나,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단기적 혼란’을 초래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보다는 ‘중국경제 위기론’을 살펴보는 것이 보다 생산적일 것이다. 중국경제 위기론은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이슈라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과거에는 관료들의 부패, 개혁의 미진 등 뜬구름 잡듯 모호한 위기론이 주를 이루었다면, 근래에는 보다 정형화된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부채가 과도하여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하는 언론보도와 각종 보고서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BIS는 2019년 1분기 말 기준 중국의 (지방)정부, 가계, 기업의 총 부채가 GDP의 248.8%로 추산했다(Institute of International Finance는 303%로 추정). 이 가운데 기업부채가 159.6%(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국가부채로 간주해야 할 국유기업 부채가 75%로 다수를 차지하는데, 아래에서 이러한 구분이 왜 중요한지 설명한다)로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하였다고 경고하기도 한다(정부와 가계 부채 비율은 각각 37.7%, 54.3%).
부채가 과도하여 상환이 불가능해지면 채권자인 은행 등 금융권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는 다시 ‘시장’의 위험회피 성향을 증폭시키고, 신용경색(극단적인 경우 신용 붕괴(crash))이 발생할 수 있다. 신용경색은 이어서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어떤 은행의 대규모 채권이 상환불능(default) 상태에 빠지면, 해당 은행은 이 손실을 메꾸기 위해 신규 신용 공급을 중단하거나 기존 대출을 회수(예컨대, 보통의 경우 만기를 연장하여 처리해 오던 기업이나 개인에 대한 당좌대출(흔히 ‘마이너스 통장’)의 만기 연장을 갑자기 거부하고 즉시 상환하라고 독촉하는 경우)하려 하거나, 혹은 이 양자를 모두 실행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해당 은행의 고객은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처분하거나 타 은행으로부터 신용을 받아 갚아야 한다(차환(借換)). 하지만 문제는, 특히 거대 은행의 경우처럼, 한 은행의 부실은 금융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금융권 전체가 유동성 확보에 돌입하게 되면, 차환(借換)의 길이 막히게 된다. 운전자금을 융통하지 못해 생산이 중단되거나, 상환을 위해 기존 생산설비 등 자산을 매각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경제활동이 축소되고 실업이 증가하는 등 경제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채위기란 ‘금융위기’라 부를 수 있다. 과도한 부채로 인한 채무 불이행이 경제위기로 전환되기 메커니즘이 금융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금융위기의 시나리오에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이와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특히 중국경제에서 정부가 경제의 관리(혹은 계획)를 포기한 적이 없으며, 항상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중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중국의 금융과 정부의 역할 일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역사적 경험이 유용할 것이다.
1980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점진주의적 방식을 따랐다. 정부의 경제계획 기능을 시장과 가격 메커니즘으로 대체한다는 전체적인 방향은 동일하지만, ‘하루 아침에 민영화’ 방식을 따른 구소련과 동구권 계획경제들의 개혁방식과는 달랐다. 당시 중국의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개혁세력이 점진적인 개혁의 경로를 선택했던 것은 개혁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ㆍ경제적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개혁개방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동시에 양산할 것인데, 패자가 많으면 개혁에 대한 저항 또한 필연적이고 개혁 자체가 좌초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중요하게, 기존의 계획경제 체제를 대표했던 국영부문을 급속히 해체한다면, 엄청난 실업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천안문 민주화 운동이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국영부문에 대한 개혁을 미루고 개혁부문(민영경제)이 먼저 성장하도록 했다. 후자가 충분히 크다면 전자에 대한 개혁이 낳을 실업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영부문에 대한 개혁이 미뤄지면서 그 사회적 비용은 고스란히 (국유)은행의 부실채권으로 쌓였다. 국영부문의 재무적 수익성은 개선되지 않았고, 이들의 적자는 국유은행 대출로 메꾸어 간 것이었다. 실제로 1998-99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하자 중국 국유은행들의 부실채권 문제가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당시 중국정부의 공식적 발표를 불신하던 세계 금융기관 및 국제기구들은 이들 은행들의 부실채권 규모를 전체 여신의 20-40% 정도로 추산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경제의 금융위기를 심각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이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역사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부실채권 규모였고, 만약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하여 심각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홍역을 치른 아시아 경제들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금융위기도 경제위기도 없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가장 심각했던 1999년에도 중국경제는 7.7% 성장했다. 여기에는 중국 정부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첫째, 중국 정부는 외환(外患)에 대응하여 4조 위안(1998년 GDP 8조5200억 위안의 약 47%)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서둘러 발표하고 실행했다. 외환에 의한 충격을 내수로 막은 것이다. 금융적 관점에서 볼 때, 정부지출의 증가는 금융부문에 유동성이 가장 큰 통화, 즉 지급준비금(흔히 ‘현금’이라고도 불린다)을 공급하여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통상적인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정부의 지출은 중앙은행 화폐인 지급준비금으로 행해지고, 지급준비금은 현찰을 의미하므로 금융권의 자산건전성을 강화하고 신용경색을 완화한다.
둘째, 당시 금융위기를 막은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정부(재무부와 인민은행)가 부실채권을 인수한 데에 있었다. 이는 ‘중국식 양적완화’ 정책이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은행의 부실채권은 누적된 개혁비용이고, 그 비용은 당시 중국 전체 여신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던 4대 국유은행들이 댔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999년 중국 재무부와 인민은행의 출자로 4개의 자산관리공사가 설립됐다. 이들은 국유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던 1.4조 위안 규모의 부실채권을 액면가 그대로 인수했다. 이것은 당시 4대 국유은행 전체 여신의 총 18%에 해당하는 수치이므로, 실질적인 부실채권 규모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이후 2004년에는 건설은행으로부터 2,787억 위안, 2005년에는 공상은행으로부터 7,050억 위안의 부실채권을 추가로 인수함으로써, 중국의 거대 국유은행의 부실채권, 즉 개혁비용은 완전히 처리되었고, 이들 국유은행들은 홍콩과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될 만큼 건전한 재무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 두고 자본주의 경제권에서 활동하던 수 많은 전문가들(주류 경제학의 신봉자들)은 ‘국유은행의 위험을 자산관리공사로 떠넘긴 것에 불과하고, 그 위험은 머지 않아 자산관리공사의 위기’로 나타날 것이라 경고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산관리공사의 국유은행 부실채권 인수는 밑돌 빼어 윗돌 괴는 속임수에 지나지 않고, 부실채권이라는 위험은 중국경제에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서구의 대형 투자은행에 복무했는데, 자신의 예측을 실제로 믿고 투자했더라면 큰 돈을 잃었을 것이다). 그그들의 경고와 예측이 틀린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부도 가계나 기업과 똑같이 엄격한 예산제약 하에서 운영된다고 잘못 가정한 데에 있다. 가계와 기업은 자신이 얻은 소득 내에서만 지출해야 지속가능하다. 또한 부실채권으로 자산이 묶이거나 상각되면 운영에 큰 타격을 받는다. 이와는 반대로 정부는 예산제약이 없다. 왜냐하면 정부는 통화의 발행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한 화폐단위로 발행된 부채(국채)의 상환요구가 들어오면 통화를 발행해 상환하면 그만이다. 또한 특정 자산이 묶인다 하더라도 정부의 운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 자산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통화를 발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산관리공사와 인민은행은 정부의 하부 기관이므로, 이들을 정부로 통칭할 수 있다. 이들 사이의 거래는 단지 내부 거래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인수한 부실채권은 실제로 상각처리 하지 않는 한 장부상 기록으로 남아있고, 정부는 이 자산을 매각하거나 상환받아 회수할 필요가 전혀 없다. 따라서 자산관리공사는 이들 부실채권을 영구히 보관하면 그만이고, 해당 국유은행들이 존재하는 한 자산관리공사의 자산으로 액면가 그대로 존재하게 된다. 설사 상각처리 된다 하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위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산관리공사라는 정부의 한 부문에 손실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경제 전체에 큰 변화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부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부채 중 약 75%는 국영기업이 진 빚이고, 채권자 역시 국유은행이 대부분이다.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중국 정부의 일부분인데, 이를 두고 위험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파산할 수 있다는 말과 같다 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중국의 부실채권 처리방식은 ‘중국식 양적완화’ 정책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국면에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은행이 취한 ‘양적완화’ 정책이 이것과 정확히 동일하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 최대 4조 달러에 달하는 민간은행 부실채권을 연준이 통화를 발행하여 매입했지만 ‘연준의 부실자산(채권)’ 보유를 이유로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중국 정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비밀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활동에 제약 요인은 없는가? 이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인플레이션 우려이다. 흔히 정부가 돈을 많이 풀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주류 경제학이 오랫동안 (근거없이) 주입해 온 이론적 배경에 기초해 있다. 그것은 정부가 주입한 모든 통화가 곧바로 실물거래에 사용된다는 가정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종류의 양적완화 정책에는 이 가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실채권 매입자금은 은행의 자산으로 기록되지만, 이것이 대출을 통해 실물경제로 흘러간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부실채권이란 이미 오래 전에 실물경제에 지출된 장부상 기록일 뿐이다.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면, 과거 해당 채권들이 발행되던 시점에 발생했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외국인 투기자본의 급격한 유출과 그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이다. 이 또한 주류 경제학의 통념과 최근 표준화된 완전 자본자유화 제도 가정에 기초한다. 통화발행이 증가하면 국내물가 상승과 그에 따른 국내통화가치 하락이 예상되고, 자본의 유출입이 완전히 자유롭다면 외국인 투기자본이 급격히 이탈할 수 있다는 스토리가 그것이다. 첫 번째 이유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부가 통화를 발생하여 민간의 부실채권을 매입한다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높아질 이유가 없으므로 국내통화가치 하락을 예상할 이유가 없다. 또한 중국의 자본통제는 세계적으로 유명할 만큼 엄격하고, 그 결과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투기자본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중국의 위기론이 형태만 달리해서 반복되고 있다. 역사가 반복되면 희극과 비극이 번갈아 나타날 법도 한데, 중국의 위기론은 매번 희극적이었다. 2020년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 정부는 도그마적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고, 금융위기에 대처할 의지와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