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개혁개방 40년간 경제적 고도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루어왔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일반적 평가는 정치개혁 없이 경제개혁만을 확대해 온 중국 당국의 ‘정경분리’ 노선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의 논자들은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이 서구 민주주의 제도를 수용하지 않은 것을 정치개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등식화하고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태도를 비도덕적으로 보는 견해다.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중국이 서구의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권위주의를 유지해서 정치안정을 도모한 것이 오히려 국가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했다는 견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들은 모두 부분적으로만 옳다. 중국 당국이 개혁개방 이후 정치개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개혁은 서구 민주주의 제도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지만 개혁개방 40년 동안 일정하게 이루어졌다. 다만 그 정치개혁은 서구 민주주의의 영향과 사회주의체제의 독자적인 모색 사이에서 좌충우돌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 더욱이, 중국의 정치개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제적 성과만으로 정치사회적 안정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중국의 정치개혁 문제는 개혁개방 직후 일찍부터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1980년 8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덩샤오핑(鄧小平)은 “당과 국가의 영도제도 개혁(党和国家领导制度的改革)”이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중국의 정치개혁이 중국의 현대화를 위해 필수적임을 천명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덩샤오핑은 이미 권력의 분산, 당정분리, 권력승계 문제 등을 제기한 바 있었고, 이후 정치개혁의 3대 목표로서 간부 체제 개혁을 통한 당과 국가의 활성화, 기구팽창 및 인사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관료주의의 극복,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계층과 지식인의 적극적 정치참여를 통한 권력의 분산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실제 중국 공산당은 개혁개방 초기에 집단지도체제와 직무 분담 그리고 민주적 토론을 통한 합의에 의한 결정 등을 통해 과거 마오쩌둥 시기의 일인 독재 체제를 폐기하고 집단지도체제로의 개혁을 단행하여 일당 지배 하에서의 권력 분산을 실현하였다. 간부의 종신제를 폐지하고 임기제와 연령제한 규정을 제시하였고 간부 4화(혁명화, 연소화, 지식화, 전문화) 정책을 통해 능력 위주의 간부 선발제도를 구축하였다. 지도자의 퇴임 규정과 함께 최고지도자에 대한 격대지정(隔代指定) 원칙을 제도화함으로써 권력승계의 제도화도 이루었다. 비록 천안문 사건의 여파로 당정분리 개혁은 취소되었지만 정부와 기업의 분리, 정부직능의 전환, 행정관리 방식의 개혁, 기구간소화, 법률제도의 완비 등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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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중국의 1980년대 정치개혁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회복하고 당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 권력의 합리적 배분을 시도했다면, 1990년대 정치개혁은 천안문 사건 이후 국가-사회관계를 재정립하고 당과 국가의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정치개혁을 제도화하는 과정이었고 이러한 차원에서 도입된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었다. 즉, 1990년대 들어 중국은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선거법의 수정과 더불어 주민들에 의한 지방 인민대표 선거의 범위가 현급(縣級)까지 확대되었고 촌민자치를 위한 기층선거가 실시되었다. 1998년에는 향진장 직접선거도 한 곳에서 시험적으로 도입되어 2004년에는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선거방식에서도 무기명 비밀 투표 방식과 복수 후보제도 그리고 유권자 후보추천 제도의 채택 등 보편합리적인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졌다. 중국에서 선거제의 구현은 중국정치가 ‘인치’에서 ‘법치’로 가는 가장 중요한 상징적 제도 중 하나이다. 사실상 중국에서 선거제는 유명무실한 제도였으며 지도자 임기 종신제, 단독 후보에 대한 찬반을 묻는 등액선거제(等額選擧制), 거수에 의한 표결 등이 오랜 관행이었으나 이제는 중국 정치개혁의 핵심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기층에서 선거의 구현은 대중의 정치참여 패러다임의 민주적 전환을 상징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중국의 정치개혁의 목표는 단순히 경제개혁에 필요한 정치적 제도와 조건을 구축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는 ‘민주성(democracy)’이 탈각된 과거의 독재적 통치방식을 반성하고 ‘민주성’을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 목표로서 복원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치제도의 우월성을 현실화시키는데 있었다. 당시 중국 지도부는 중국이 스스로 사회주의 우월성을 현실화시키지 못했음을 시인하면서 그 원인으로 생산력 발전에 매진하지 않았음과 더불어 민주정치의 부재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민주화 즉 이른바 ‘社会主义民主(이하 사회주의민주)’의 실현이 정치개혁의 근본 목적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물론 천안문 민주화 운동 이후 1990년대 이후에는 급진적인 민주화 요구는 중국 내에서 사라졌다. 새로 구축된 중국 지도부가 ‘先경제발전, 後정치개혁’의 신권위주의적 발전담론을 구축했고 ‘사회주의민주’ 이념은 이른바 ‘중국적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민주(中国特色的社会主义民主)’의 담론으로 집중되었다. 즉 ‘사회주의민주’보다는 ‘중국적 현실 상황’이 더 강조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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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중국 당국의 ‘사회주의민주’는 다당제, 삼권분립 제도 등 자본주의적 정치제도라 여겨지는 제도들의 도입은 이제 완전히 거부한다. 이는 중국 당국이 상정하는 '사회주의민주’란 공산당의 일당 지배 체제를 전제로 하여 구상되었음을 매우 강조한다.
둘째, ‘사회주의체제의 민주화’가 매우 장기적인 과제임을 제시하며 급진적인 민주화가 아닌 점진적인 민주화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사회주의민주’는 역사발전 단계의 측면에서 보면, ‘사회주의 초급민주(社会主义初级民主)’일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당면 목표가 민주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발전에 있으며 민주화는 정치안정을 위해서 상대적으로 유보되어야 한다는 신권위주의 논자들의 견해가 부분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셋째, ‘사회주의체제의 민주화’는 법치의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따라서 사회주의민주의 법제화가 중요하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사회주의 체제의 민주화에 대하여 무엇보다도 제도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읽혀지기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의 경로는 법적, 제도적으로 봉쇄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2000년대에 후진타오 집권 이후에 중국에서 '사회주의민주’는 다시 중국식 민주주의 논쟁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후진타오 지도부는 ‘민주’가 보편적인 가치이며, ‘사회주의민주’를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모델로 간주하면서 향후 어떤 형태의 민주주의 모델도 무조건 배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우수한 민주적 전통을 계승 수용하여 중국식 민주의 참신한 내용과 형식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후진타오 총서기는 2007년 17차 당 대회 정치보고에서 ‘민주’의 이념과 실천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빈번하고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사회주의민주 실현을 위한 정치체제개혁의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2007년 중국 공산당 중앙편역국 부국장이자 후진타오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중국의 정치학자 위커핑(俞可平)이 제기한 이래, 중국의 학계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졌던 ‘민주’ 논쟁은 사회주의민주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실제 2000년대 이후 ‘사회주의민주’라는 중국식 민주주의 모델은 일반적으로 ‘당내 민주(党内民主)’와 ‘인민 민주(人民民主)’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설계되었다. ‘당내 민주’의 실현이 중국 공산당의 권력구조와 제도의 민주화를 의미한다면, ‘인민 민주’의 실현은 대중의 정치참여 제도의 민주화를 의미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이후 당내민주 실현을 위한 다양한 제도개혁이 추진되었는데 당원 대표 활동의 일상화, 당내 감찰 제도인 순시(巡視) 제도의 도입, 공산당 위원회의 상무위원회에 대한 감독 등이 공식화되었다. 또한 당대회에서 10인 이상의 당원들이 각종 의견을 서면으로 제출하는 ‘제안제(提案制)’가 도입되어 당원들의 정책결정 참여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내 민주의 실현을 강화하기 위해 당대표대회의 상설화와 당내 삼권분립 제도의 요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2000년대 이후 ‘인민민주’ 측면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다른 정치세력과 인민들의 요구를 폭넓게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협상민주’의 제도화가 두드러졌다. 이는 중국의 일당 지배체제를 변경시키지 않고서도 개혁개방 이후 다원화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주민 참여형 정치제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라는 중국 특유의 정치제도가 바로 이러한 ‘협상민주’를 실현하는 가장 대표적이고 공식적인 제도이지만, 각종 주민간담회나 포럼, 공청회 등 다양한 여론 수렴 시스템은 물론이고 일반 주민들이 지방 간부들의 업적을 직접 평가하는 공민평의회 등의 도입 등이 모두 ‘협상민주’를 실현하는 제도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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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에서 정치개혁이 퇴조하고 강력한 통치체제가 다시 구축되고 있다. 예컨대, 국가안전위원회가 중국 행정부인 국무원 산하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중앙의 직속기구로 설치된 것은 국내외 안전 부문을 중국 공산당이 장악하기 위한 방책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갖가지 영도소조(领导小组)가 만들어져 당과 정부의 부처가 사실상 동일한 통제 하에 놓이게 된 것은 과거 정치개혁의 가장 중요한 돌파구였던 당정분리를 완전히 포기한 증거로도 볼 수 있다. 중국의 민영기업은 물론이고 외자기업에게도 당 조직을 설치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정부와 기업을 분리시켰던 과거의 개혁 조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셈이다. 시진핑으로의 권력집중은 공산당의 집단지도 체제를 무력화시키는 흐름으로도 보여진다. 2018년 초 헌법수정을 통하여 국가주석의 3연임 제한 조항이 삭제된 것은 중국의 최고지도자의 종신제를 사실상 허용하는 조치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결국, 개혁개방 이후 매우 점진적이지만 그래도 지속되어온 중국의 정치개혁의 물결이 시진핑 시대에 이르러서 역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공산당이 향후 어떤 시점에 이르러 전격적으로 새로운 정치체제를 실험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시진핑 시대는 개혁개방 이후 40년의 역사에서 정치개혁이 퇴조하고 나아가 오히려 개혁개방 이전의 시대로 되돌아간 ‘역행의 시대’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