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는 심상의 지리이면서 때로는 강력한 실체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전략적 담론이다. 무심하게 한중일을 명명하는 습관 속에서 타이완이나 북한, 베트남이나 오키나와는 그 의도와는 관계 없이 동아시아의 시야 밖으로 튕겨나가 버릴 때가 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는 그것이 연대와 연합의 구상으로 제기될 때마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까다로운 이념이다. 야마무로 신이치(山室信一)는 [사상과제로서의 아시아(思想課題としてのアジア - 基軸 連鎖 投企 )]라는 역저를 통해 그 까다로운 이념의 아시아가 구성되는 메커니즘을 방대한 문헌의 고증으로 펼쳐보였다. 특히 그 책을 전개하는 핵심 개념인 기축(基軸), 연쇄(連鎖), 투기(投企) 중에서도 절반 이상의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연쇄’의 항목은, 아시아라는 공간을 창출하는 학지(學知)의 교섭과 유통의 실상을 평준화, 유동화, 고유화의 세 가지 차원에서 대단히 세밀하게 서술하였다. 각각의 국가가 아시아라는 공동의 자의식을 공유하게 되거나 혹은 타국과의 차이를 통해 자국의 독자성을 자각하는 메커니즘은 정치적일뿐 아니라 철학적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기와 타자의 심오한 변증법 속에서 아시아는 역사적인 것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작가와 작품과 독자 그리고 문학적 사건의 교류라는 그 ‘연쇄’의 양상이 어떠한가에 따라, 아시아라는 공속감각의 질감은 전혀 달라질 수가 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문학인 교류’라는 것은 단순하게 작가들이 모여 우정을 나누는 그런 차원의 평면적인 논의에 한정되지 않는 난해한 ‘사상과제’이인 것이다. 특히 언제나 정치적인 긴장으로 팽팽한 한반도와 그 주변의 지정학적 현실은, 문화의 교섭과 감성의 교류를 통해 연대의 계기를 더듬거리게 만든다.
전후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는 오랫동안 단절되어 오다가 세계적인 탈냉전의 기류 속에서 김대중 정부에서 개방조치가 이루어졌다. ‘한일문학 심포지엄’은 그런 흐름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양국 문학인들의 역사적 만남이었으며, 특히 한국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라는 걸출한 비평가의 참여와 그 이후 한국 문단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그 만남의 의의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2002년까지 6회에 걸쳐 이루어진 이 심포지엄에서는 그야말로 양국의 유명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방식으로 한국과 일본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이루어졌다. 유명 작가들의 만남이었다는 점에서 언론의 주목이 있었고, 대중들의 관심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회 시의적절한 의제를 설정하였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겠다. 이 심포지엄은 이후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국제적인 문학인 교류의 한 모델을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의 ‘한일문학 심포지엄’을 주도한 것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였다. 2000년 가을에 처음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은 그 진행 방식이나 회합의 형식에 있어서 ‘한일문학 심포지엄’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행사에는 십여 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백여 명 내외의 작가들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국제적 문학인 교류로 자리 잡았다. 대산문화재단이 지원하고 그 결과물은 민음사에서 출간되고 있다. 탈냉전기의 ‘한일문학 심포지엄’과 세계화시대의 ‘서울국제문학포럼’은 국민국가의 경계가 유동하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그 만남과 교류의 의미도 그런 역사적 전환기의 감각과 무관하기 어렵다. 그 감각의 출현이 오늘날 세계문학 전집의 출간 붐, 세계문학 담론의 유행과 함께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하나의 요인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대규모 행사의 양상으로 펼쳐지는 그런 만남이 문학과 문화 교류의 최선책인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수도권 이외 지역의 작가나 대중성이 강한 장르문학 작가들의 참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 싶다. 더불어 독자들이 참여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계기들을 더욱 마련할 필요가 있겠다.
한중 작가들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중일 간 혹은 한일 간의 교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토대 위에서 가능할 수 있었다. 서울(2008)에서 처음 시작하여 기타큐슈(2010)를 거쳐 베이징(2015)에서, 그리고 다시 서울(2018)에서 열린 ‘중한일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그 결실이었다. 그 만남은 공교롭게도 매번 과거사 문제, 영토 분쟁, 무역분쟁과 같은 국가 간의 첨예한 갈등 가운데서 성사되었다. 베이징 대회에 참가한 한국의 비평가 최원식(崔元植)은 그런 정치적 분쟁을 넘어서는 작가 교류의 참뜻을 데리다의 ‘환대’라는 개념을 적절하게 인용하면서 풀어내었다. “말하자면, 중국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은 기꺼이 일본 작가들의 인질이 되고 또 거꾸로 일본 작가들은 중국/한국 작가들의 인질이 됨으로써 기타큐슈에서의 환대가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주인과 손님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이 기묘한 호환성(互換性)은 주인의 내부성과 손님의 외부성/적대성을 슬그머니 해체한 바, 이로써 주인과 노예의 순환하는 적대성을 변주(變奏)한 주객이원론으로부터 기쁘게 해탈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은 먼저 온 손님입니다.”(최원식, 「문자공화국의 꿈」, 모옌 외 32인, [문자공화국의 꿈], 섬앤섬, 2016, 19쪽) 그러니까 진정한 교류란 주객의 이원론을 해체하는 환대하는 역능의 활발한 발현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그 역능의 발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완강한 국민국가의 알력, 내셔널리즘의 미망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작가들의 만남은 말 그대로 국경을 횡단하는 문학의 초역성(超域性)을 실현하는 것이어야 하겠다.
2011년에 부산에서 열린 ‘한중문학, 소통의 상상력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한중 작가들의 만남이 있었다. 그때 나는 문학평론가이자 한 잡지의 편집위원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중국 측에서는 옌롄커(閻連科), 왕자신(王家新) 등의 문인이 참석했고, 한국 쪽에는 부산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주로 참가하였다. 그날 작가들은 자기의 작품을 한국어와 중국어로 낭독하고 비평가는 발제를 맡았다. 사실 그날의 만남은 급조된 감이 없지 않았다. 서울의 어느 큰 행사를 위해 내방한 중국의 저명 작가들을 그 행사가 끝난 뒤에 부산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류 문단이 아닌 지역 작가들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었다. 특히 행사 뒤풀이 자리에서의 음주방담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인간과 인간의 진솔한 만남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대만 자오통대(交通大)의 천광싱(陳光興) 교수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연대와 교류를 기록하는 자리에 이렇게 적었다. “지식, 감정, 믿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은 사실 어느 곳에서든 음주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천꽝싱, 「화해의 장벽-2008 동아시아의 비판적 잡지 회의 후기」, [창작과비평], 2008년 가을) 문학인들의 교류에 있어서 알코올은 만찬의 환대 이상의 유물론적 친교를 의미한다. 교류와 협력에 미치는 뒤풀이와 알코올의 영향력이란, 또 다른 진지한 고찰의 주제로 남겨두어도 좋겠다.
2012년에는 내가 참여하고 있는 잡지에 소설가 왕안이(王安憶)의 인터뷰를 수록하기 위해 상하이의 푸단대학을 방문하였다. 대담은 목포대의 임춘성 교수가 맡아주었다. 그날의 일정이 끝난 뒤에는 상하이대학의 왕광둥(王光東) 교수와 함께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왕샤오밍(王晓明) 교수가 이끌고 있는 상하이대학교 당대문화연구소의 어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다. 왕후이(汪暉)의 개혁개방 서사를 둘러싼 논쟁이 펼쳐졌던 그날의 세미나 이후에 이어진 뒤풀이는 역시 엄청난 알코올과 언어와 정감이 넘실거리는 자리였다. 이날 함께 술잔을 나누며 정담을 나누었던 저우잔안(周展安) 선생은 2013년에 성공회대학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 혁명 사상 포럼’에서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성공회대학교에서의 행사에서 저우잔안은 물론, 임춘성과 강내희 등 상하이이 밤을 함께 보냈던 이들을 다시 만났고, 특히 이날 발제를 맡았던 경상대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정성진 교수를 만난 것은 또 다른 좋은 인연이 되었다. 선생과는 이후에 난징대 장이빈 교수의 방한과 관련하여 두어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서구의 급진적 사상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온 장이빈 교수가 경상대의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함께 했고, 마르크스의 [자본]을 완역한 동아대 강신준 교수와의 대담을 기획하여 잡지에 수록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만남은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진다. 인연의 연쇄가 사상의 연쇄로 이어진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교류의 중핵은 바로 그 인연의 연결고리로서의 기능과 역할인 것이다.
2011년에 부산에서 있었던 한중 작가들의 만남은 ‘부산-상하이 문학 포럼’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을 얻었고, 2014년에 왕광둥 교수의 주선으로 다시 상하이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2015년에 부산의 행사로 계속 이어졌다. 2014년 상하이대학에서 이루어진 만남은 한류의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 대학 문창과 학생들과의 공동행사로 기획되었다. 한국문화의 수용자들인 중국 대학생들의 생각과 느낌을 생생하게 직접 대할 수 있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음 날은 작가, 교수, 출판 관련자 등 전문적인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한국소설 속의 상하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했다. 상하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상하이라는 장소성을 매개로 한국문학과의 관련 양상을 살피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 해의 ‘부산-상하이 문학 포럼’은 ‘대한중국학회’의 추계학술대회와 연계하여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재중동포 작가이자 [녹차]라는 작품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진런순(金仁順) 소설가와의 만남이 중요한 이벤트였다. ‘부산-상하이 문학 포럼’의 의의는 무엇보다 국가 간의 문학인 교류라기보다 상하이와 부산이라는 지역 간의 교류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장의 변방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직접적인 만남은, 주류 상업출판가 주도하고 기획하는 대형 이벤트 중심의 행사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규모가 작아지니 독자들이 참여할 공간이 생기고, 균질적이고 평준화된 국가의 표상과는 구별되는 지역도시의 특이성을 체감할 수 있다.
국가 간의 공간적 거리를 넘어 한 자리에 함께 모여 얼굴을 마주하는 것보다 확실한 친교의 방법은 따로 없을 것이다. 그 나라의 문물과 인심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문화적인 동질성과 이질성을 확인하고 자각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 사행(使行)의 일원으로 청나라를 다녀왔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베이징의 유리창(琉璃廠)에서 받았던 문화적 충격과 그곳 문인들과 나눈 필담의 교류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는 것, 생각을 나누고 느낌을 나눈다는 것, 국경을 넘는 그 소통과 교류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므로 국제 교류에 소용되는 막대한 비용은 미래를 위한 공공의 투자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교류를 국민국가의 논리를 강화하는 수단이 아니라, 국가주의를 넘어 존재의 다양성과 이질성을 환대할 수 있는 지구적 차원의 공공의식을 함양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