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광장에서 마오쩌둥이 중화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을 선포한 이래 70년의 중국 외교정책을 조망한다. 짧은 지면을 통해 70년의 외교정책을 가늠하기에는 제약이 따르지만,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는 요인들을 고려하여 커다란 흐름을 구성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선 70년의 외교정책을 구분할 수 있는 요인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마오의 혁명노선 30년과 덩샤오핑 개혁개방노선 40년으로 구분된다. 국가의 발전전략의 차이가 외교정책에서도 뚜렷한 구분을 가져왔다. 고립주의적이고 자력갱생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입각한 발전전략과 개혁개방의 발전전략은 서로 구별되는 대외정책을 가져왔다. 둘째, 마오쩌둥부터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5세대의 정치엘리트의 권력 승계가 이루어졌다. 권위주의 정체체제가 갖고 있던 권력 승계의 불안정성도 제3세대 장쩌민을 이후로 10년 주기의 집단지도체제가 정착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각 시기별로 구분되는 세대별 리더십들은 자신의 외교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다. 셋째, 1949년 GDP 약 193억 달러의 국가에서 2017년 세계 2위의 GDP 13조 4,572억 달러의 경제력을 보유한 국가로의 종합국력 변화이다. 700배가 넘은 경제성장으로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18.%의 세계 경제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15-16세기에 세계 경제의 30%를 차지하던 경제대국의 지위를 되찾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구분에 따라 중국 외교정책의 변화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국 외교정책은 마오쩌둥 시기 이데올로기적 요인에서 벗어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실용적인 노선 변화가 있었다. 1950-60년대는 3개 세계론에 입각해 세계를 자분주의 진영, 사회주의 진영, 제3세계 진영으로 구분하여 중국을 사회주의 진영에 위치지우면서 비동맹국가들과의 협력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1960년대 후루시초프의 탈 스탈린 정책에 대항하여 소련을 수정주의라고 비판했던 ‘중소분쟁’ 시기도 이념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였다. 마오의 국가발전전략인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영향력이 외교정책 노선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저우언라이는 이 시기 국무원 총리로서 외사영도 소조를 이끌며, 중국의 초기 외교정책 기구들을 정비하고 실무를 주도하였다.1) 1979년 제11차 공산당 대회 3중전을 계기로 덩샤오핑은 국가발전 전략을 수정하면서 대외정책도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왔다. 개혁개방정책을 위한 ‘화평발전(和平發展)’이란 국가목표는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평화로운 주변 환경 조성이란 대외정책 목표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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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둘째,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중국 외교정책에서도 많은 변화를 발생시켰다. 덩샤오핑의 ‘독립자주외교’ 노선으로 소련과 동구권 편향의 외교정책을 수정하고 미국 등 서방과의 대외 교류를 확대하였다. 중국의 국제기구와 국제레짐 참여로 새로운 국제문제를 담당해야하는 외교기관과 인력들을 필요로 했다. 중국 내에 외교부와 관련기관 등 다양한 형태의 외교정책 결정 참여자들의 수가 급증하였다. 외교정책 결정과정은 과거보다 제도화되었고, 전문성을 필요로 했으며, 민족주의와 같은 대중 여론도 외교정책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발전했다.2) 잘 알려진 덩샤오핑의 대외정책인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유소작위(有所作爲)’는 과거 마오쩌둥의 모험주의적인 외교정책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유훈을 제시한 것이며, 중국의 부국강병을 위한 외교정책의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이라 할 수 있다. 양국관계를 중시하던 중국의 전통적인 태도는 1990년대 ARF(ASEAN Regional Forum) 참여를 계기로 다자주의 국제제도의 유용성을 인식하게 되고 참여를 중시하게 되었다.3) 미국 일방주의를 견제하기 위해서 ‘다극화(多極化)’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과정에서 ‘유소작위’의 변용적인 개념으로 ‘책임대국론(負責任的大國)’이 제기되었다. 1990년대 중국은 서방국가들이 제기한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책임대국(負責任的大國)을 강조하며, 신안보관(新安全槪念)을 주창하고, 소프트파워(軟實力)과 공공외교를 새로운 외교로 제시하였다.
셋째, 중국 외교정책은 증대된 종합국력을 바탕으로 보다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는 강대국의 외교정책으로 전환 중에 있다. 종래 발전도상국과 정체성을 함께 하던 중국 외교정책이 스스로 ‘대국(大國)’이라 지칭하며 미국과 경쟁하는 G2의 위치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 제18기 공산당 전당대회에서서 제5세대 지도부의 핵심 시진핑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력 증대로 인한 자신감을 피력하며,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강조하고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였다. 양보할 수 없는 중국의 ‘핵심이익(核心利益)’을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중국의 국력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로 투사하여 해양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중국의 해외 자산 및 법인(走出去)에 대한 권익을 보호하는 적극적인 대외정책으로 전환하였다. 미국 등 강대국에게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라는 프레임을 제시하면서 중국이 새로운 강대국 관계의 규범을 제안하였다. 나아가 중국은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스스로 구상하고 실천하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2013년 일대일로 (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라는 유라시아를 기반으로 하는 장구한 대전략을 발표하였는바, 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고대 실크로드의 현대적인 재생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통해서 실현하려는 계획이다. 이미 참여국으로서 상하이협력기구와 같은 안보기구를 운용한 바가 있던 중국은, 이제 나아가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질서(IMF, 세계은행) 및 일본주도의 아시아지역 금융질서(ADB)에 대항하는 자국주도의 새로운 다자금융기구를 창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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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중국 외교정책의 양상은 뚜렷하게 변화되었지만 지속성도 존재한다. 중국 외교정책은 경로의존적(pathdependent)인 진화의 과정을 밟았는데, 덩샤오핑의 유훈의 틀 내에서 국제정치의 환경 변화, 세계화,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 다자주의 국제제도의 발전 등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국가이익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탐색, 조정, 변화되었다. 그런데, 중국 외교정책의 행위 차원의 변화 이면에 내재하는 중국적 세계관의 이론적 논리는 지속되고 있다. 국제질서에 대한 마오쩌둥의 ‘양대진영론’이나 ‘3개세계론’, 그리고 저우언라이의 ‘평화공존 5원칙’은 중국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후진타오의 ‘조화세계론(和諧世界)’이나 일대일로에서 제시된 친(親), 성(誠), 혜(惠), 용(容)의 운명공동체(運命共同體)도 모두 서구세계가 부여했던 베스트팔렌의 국제질서를 변용하면서 중국특색의 고유한 국제질서 논리를 창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적 국제질서관이 주변국들의 자발적 동의를 확보하고 중국의 스마트 파워를 증대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미국이 선점한 ‘민주주의’혹은 ‘인권’과 같은 보편적인 가치를 대체하는 새로운 인류사적 가치를 발굴하기에 중국이 안고 있는 국내정치의 불안정성(부패문제, 불균등한 성장에 따른 계층과 지역격차, 정치개혁의 지연 등)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70년 동안 중국 외교정책은 국가발전 전략, 증대된 종합국력, 새로운 세대의 정치엘리트 등의 요인으로 변화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중국적 국제질서를 창출하고자 하였다. 미국 중심의 단극질서가 G2로 이행하는 어느 시점과 지점에서 중국 외교정책은 새로운 모색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곳은 한미동맹과 북중동맹이 연루(entrapment)와 방기(abandonment)가 교차하는 시공간이 될 수도 있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은 미중 패권 경쟁이 이미 치열하게 진행 중임을 시사하고, 한반도의 냉전해체로부터 중국의 외교정책은 새로운 변화의 압력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