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10월 10일자 신문에서 주윤발의 최근 소식이 기사화되었다.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복면을 한 그를 알아본 팬과 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지금의 우리나라 20대들에게는 낯설겠지만, 40대 후반에서 50대에의 연령층에게 그는 한때 ‘영웅’이었고 ‘따거’였다. 그 연령층의 사람들은 <영웅본색>에서의 그를 잊지 못한다. 그는 우리에게 ‘친구’와 ‘남자다움’, ‘의리’라는 것들을 가르쳐주었고, 현재에는 그를 통해 <영웅본색>을 학교에서 단체관람가던 까까머리의 중학생이었던 필자를 회상하게 해준다.
사실 8,9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들에게 홍콩과 대만이 익숙하였으며, 중국은 ‘죽의 장막’으로 불렸다. ‘중국’보다는 ‘중공’이라는 호칭이 익숙했던 시절에, 우리가 접했던 중화권의 영화는 홍콩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홍콩영화는 대륙을 겨냥한 홍콩과 중국의 합작영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1월부터 발효된 중국-홍콩 경제무역협력강화협정(CEPA)로 인해 홍콩영화는 대륙에서 외국영화 쿼터제에 제한을 받지 않고 대륙영화와 동일한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또한 홍콩자본이 대륙 극장에 100%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의 경제적 성장과 함께 홍콩의 영화산업이 대륙에 종속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사춘기때 영화관에서 홍콩영화를 쉽게 접하였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은 대륙의 영화를 접하기가 쉽지가 않다. 영화관보다는 인터넷에서 접하기가 더 쉽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끔 블록버스터 무협영화가 영화관에서 상영되기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중국보다는 미국과 가까운 학생들은 할리우드 영화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강의를 하면서 중국영화를 보여주면 학생들은 중국영화의 수준에 깜짝 놀란다. 짝퉁을 비롯한 온갖 부정적인 인식과 이미지로 비춰지는 중국이 예술의 한 영역인 영화에서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반전으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장이머우(張藝謀), 천카이거(陳凱歌), 지아장커(賈樟柯) 등의 중국국적의 감독이 칸, 베니스, 베를린의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바와 같이, 아시아에서 중국은 영화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영화산업의 수치를 통해서도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영화산업을 비교해보면 중국의 영화산업규모는 명확하게 파악된다. 2018년 상반기의 자료를 참고한다면, 우리나라 상반기 전체 극장 관객 수는 9636만 명이고, 극장 매출액은 8,025억이다. 중국의 극장 관객 수는 9억 100만 명이고, 극장 매출액은 320억 31000만 위안(약 5조 2851억 원)이다. 중국은 2017년 말 스크린 수가 5만 776개에 달해 북미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영화 스크린 보유국으로 등극했다. 2018년 상반기에는 스크린 수가 5만 5623개이며, 영화관 수는 1만 73개에 달했다. 그리고 상반기에 222편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와 같은 영화산업의 기반은 중국영화시장의 규모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영화의 흥행을 살펴본다면, 2017년 흥행 1위인 <전랑2(戰狼2)>는 56억 8천여만 위안을, 2018년 흥행 1위인 <오퍼레이션 레드 씨(紅海行動)>는 36억 5천여만 위안을, 2019년에는 <유랑지구(流浪地球)>가 46억 6천여만 위안을 기록하였다. <오퍼레이션 레드 씨>는 2015년 3월 예멘 내전 당시 중국 현지교민의 철수사건을 배경으로 그렸다. 특히 해군의 교룡돌격대 대원의 영웅적인 활약상과 전우애에 초점을 두었다. <전랑2>는 아프리카에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특수대원의 영웅담을 기반으로 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중국 육군과 해군의 협조로 미사일, 군함, 탱크 등이 등장하면서 할리우드 못지않은 스케일을 보여주었다. 분쟁과 내란이 벌어진 국가에서 자국의 국민을 구해내고, <유랑지구>에서 소멸해가는 태양계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그려내는 그들의 영화는 세계의 패권을 꿈꾸는 중국의 ‘중국몽’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들 상업영화들은 중국의 영화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그러한 이유는 이때까지의 상업영화들이 주선율적인 요소들을 가미할수록 흥행에서 실패하였으나, 상업영화에 주선율적인 요소를 동시에 확보하면서 전례 없는 흥행을 기록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주선율영화’의 장르는 독특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중국의 이념체재와 맞닿아 있다. 개혁개방을 실행하기 전,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 영화는 하나의 선전수단이며, 단지 국가의 정책과 이념을 선전하는 도구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개혁개방을 실시하면서 외국의 자본과 함께 그들의 대중문화도 휩쓸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1978년 이후 개혁개방 정책의 논의와 더불어 1992년 ‘남순강화’까지 지속적으로 행해진 ‘사회주의시장경제’의 확립은 자본주의 경제로 나아갈 수 있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배경아래 탄력 받은 산업경제와 더불어 성장한 매스미디어의 보급과 확산은 기존의 일방적ㆍ수직적 소통구조에서 벗어나 쌍방적ㆍ수평적 소통구조로 변환을 가져왔다. 또한 이는 국가의 계획에 의해 생산ㆍ유통ㆍ소비되는 구조에서 대중들이 소비의 주체로 부상하면서 문화적 패권이 역전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라는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체재 아래에서 문화적 패권이 역전되는 상황, 즉 사회주의의 가치를 지켜나가려는 신념에서 주선율영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1987년 3월 광전부 영화국이 개최한 ‘전국영화제작소장’회의에서 “주선율 영화를 부각시키고 다양성을 견지하자(突出主旋律, 堅持多樣化)”라는 구호를 제창하면서 주선율영화가 등장하였다. 기존의 정치선전영화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관습적이고 진부한 표현에서 벗어나 현실생활에서 소재를 찾아 관객들의 호응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중국은 개혁개방과 더불어 사회의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기 시작하였다. 90년대 영화계에 등장한 제6세대 감독들은 현대중국이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영화에서 재현하면서 비판하기 시작하였으며, 영화국은 영화심사제도를 통하여 검열과 제재를 강화하면서 영화감독들을 길들이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물론 그러하지만 중국은 정부에 대한 비판에 민감할 정도로 반응하고 있다. 필자가 박사학위과정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할까 한다. 상하이의 푸단대학에서 지도교수님의 중국영화사 과목을 듣고 난 뒤 중국영화와 관련되는 레프트를 제출하였다. 다음날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연구실에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연구실 교수님의 책상에는 필자가 제출한 레포트의 몇 장중 한 장에 두세 줄의 문장이 검은 매직으로 그어져 있었다. 당시 제6세대 감독에 대한 글을 썼으며, 그중에 정부의 영화심사제도를 통한 검열과 제재에 대한 비판을 가한 문장이었다. 매직으로 그어진 문장을 공산당이 보게 되면 우리 둘 다 난처해지니, 삭제하고 다시 제출하라는 당부를 하셨다. 이러한 일을 겪고 난 이후 한동안 필자는 글을 쓰고 난 뒤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올해 국경절에도 어김없이 애국심에 호소하는 주선율영화들이 등장하였다.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시위 사태로 인한 <나와 나의조국(我和我的祖國)>, <중국기장(中國機長)> 등과 같이 애국심을 고취하는 영화가 극장가를 휩쓸었다. 특히 이 가운데 <나와 나의 조국>은 천카이거 감독이 총감독을 맡고 장이바이, 관후, 쉬정, 닝보 등 7명의 감독이 공동 연출했다. 1949년 신중국 건국, 1964년 첫 원자폭탄 실험 성공, 1984년 여자배구팀의 올림픽 금메달, 1997년 홍콩 반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5년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열병식, 2016년 유인우주선 선저우(神舟) 11호 귀환 등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7가지 순간을 배경으로 한 7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10월 25일까지 28억 위안(약 4650억)의 흥행을 기록하였다.
올해 국경절의 <나와 나의조국>, 올해 춘절의 <유랑지구>, 2018년의 <오퍼레이션 레드 씨>, 2017년의 <전랑2>는 주선율영화이면서 흥행을 기록한 영화들이다. 이때까지 중국 영화계에서 항상 고심하였던 주선율영화의 완성도는 이제 상당부분 수준에 올랐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주제에 있어서도 중국을 벗어나서 세계와 우주로 향하고 있다. 밖으로는 미국과 무역전쟁을 하면서, 안으로는 시진핑의 장기적 정치기반을 다지는 상황에서 주선율영화가 어떻게 진화하고 발전해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