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
저자: 이중
둘째 아이 출산 후 독박육아에 시달리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노라면 영화 ‘82년생 김지영’ 속 김지영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아이를 겨우 재우고 남는 나만의 시간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책을 읽는 것이 당시 나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학회의 토론을 맡게 되었는데 ‘모택동의 선전(프로파간다)’에 관한 주제였다. 평소에 관심이 없던 분야지만 맡은 토론으로 인해 모택동이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동네 도서관 한 편에 먼지 쌓인 모택동과 관련한 몇 권을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한 것이 오늘 소개할 책과의 인연이다. 혁명가들의 인생 스토리에 저자의 문학적 감각이 어우러진 이 책은 단숨에 읽어 내려갈 정도로 흥미가 있었다.
저자 이 중은 한국 현대문학 전공자로 <김수영시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시사 잡지에 <등소평 기행>, <주은래 기행>, <모택동 기행> 등을 실어 현대 중국 공산혁명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종전과는 다른 인물탐사를 시도하였다. 1998년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총 50일간 18만여 킬로미터를 여행하며 중국혁명의 근거지와 모택동, 주은래, 등소평의 생장과 활동 연고지를 두루 답사하며 저술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중국 외부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저자는 답사와 풍부한 자료 수집을 통하여 특유의 시각과 사유와 문체로 풀어갔다.
<모택동과 중국을 이야기하다>는 저자 이 중이 <월간 조선>에 실었던 등소평, 주은래, 모택동 관련 5편의 기행문을 토대로 저술되었다. 이 책은 모택동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되는 해인 2006년에 베이징 인민출판사에서 기념 출판을 하기도 하였다. 외국인이 모택동에 관해 쓴 책을 베이징 인민출판사에서 번역 출판한 것은 이 책이 두 번째이다.
정강산에서 만난 대륙의 거인들
등소평의 부활, 모택동을 향한 팽덕회의 현실적 비판과 그로 인한 갈등, 시라는 문학적 매개를 통한 혁명가들의 동지애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모택동과 팽덕회의 관계는 모택동과 오늘의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여산회의 이후 팽덕회의 추락, 이것은 한 개인의 불운이 아닌 이후 중국의 방향을 바꾸어놓는 중요한 고비가 되었다. 1956년 9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제8차 전국 대표대회에서 등소평이 제안한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집단지도체제가 얼마다 중요하고 개인숭배 반대 투쟁이 얼마다 중요한가는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분명하게 입증되었다. 이 천명은 소련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 공산당국가에도 강력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우리는 개인 돌출을 반대하고 개인에 대한 찬미를 반대해야만 할 것이다. 당 영도자에 대한 숭배는 본질상 당의 이익, 인민의 이익에 대한 애호에서 표현되는 것이지 개인에 대한 신격화로써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모택동과 팽덕회는 갈라졌지만, 마음으로는 서로의 우정과 애정이 여전함을 그들의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팽덕회 동지에게
높은 산, 머나먼 길, 깊은 골짜기
대군은 종횡무진으로 내달리는구나
그 누가 말 타고 칼 비켜 들었는가?
둘도 없는 우리의 팽덕회 대장군이어라!
모택동은 팽덕회에게 시를 써서 보낸 것처럼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시를 보내어 우정과 애정, 신뢰 등을 전달하곤 하였다. 저자는 모택동의 일생을 알려면 모택동의 독서 범위와 독서에 대한 모택동의 반응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 연고로 이 책 곳곳에는 모택동이 쓴 시와 글들을 소개하고 그에 담긴 스토리를 풀어놓는다.
모택동 시대 훔쳐보기
저자가 혁명가들의 활동지를 기행하며 수집한 자료를 매개로 당시의 상황을 저자의 독특한 문체로 서술한 것이 돋보인다. 독자로 하여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그들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는 책 속에서 여러 인물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그중 중국의 대표적인 지성인 곽말약(郭沫若)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는 사회주의자로 1926년 광동성의 광주대학(廣州大學) 문학원 원장으로 부임할 무렵 모택동의 초청으로 모택동이 소장으로 있던 광동농민운동강습소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그런 그가 북벌 전쟁에도 참여하면서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혁명군의 총정치부 비서장, 부주임과 주임(대리)이라는 고위직을 맡기도 하였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이 결렬되고 장개석이 공산당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과 압박에 나섰을 때, 장개석이 공산당원들에게 가한 무분별한 테러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장개석은 나라를 배반하고 민중을 배반하고 혁명을 배반한 괴수다. 우리는 혁명열사들이 남겨놓은 영광스런 역사를 존중하며 이러한 역사를 보존하고 이러한 역사를 계속 창조하여야 한다. 바로 그러하기에 우리는 급속히 장개석을 타도하고 소명시키며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
모택동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이 또 있다. 한때 모택동의 비서였고 정치국 비서와 중국사회과학원 명예원장을 지낸 중국의 최고 이론가 중 한 사람인 호교목(胡喬木)이다. 그는 1989년 3월 미국을 방문하여 ‘중국은 왜 1985년부터 1978년까지 20년 동안 좌경(左傾)의 오류를 범했나’라는 제목으로 강연에서 모택동이 중국의 사회주의 제도에 군중 운동을 더함으로써 실패를 자초했다고 비판하였다.
목숨을 걸고 지도자를 비판한 곽말약과 호교목의 용기를 엿볼 수 있다. 나는 과연 목숨 줄을 쥔 권력자 앞에서 그의 과오를 당당히 비판할 수 있을까...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가 독자에게 ‘당신은 과연 위험을 무릎 쓰고 정의의 길을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모택동의 새로운 면모
저자는 문화대혁명을 중국만의 강점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도 한다.
“중국공산당이 엄격하게 문화대학명에 대해 역사적인 심판을 내린 것과, 인민들이 여유를 가지고 당시의 억울했던 사연들을 소화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중국 사회에 내재한 힘의 원천이며, 또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중국만의 강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모택동의 혁명노선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데, 첫 번째 부인인 은사 양창제의 딸 양개혜(楊開慧)에 대한 사랑을 담은 시를 소개한다.
손을 흔들며 이제 떠나노라
서글피 마주 하고 쓰라린 마음 털어놓자니
더더욱 난감하고 견딜 수 없구나
눈시울과 눈썹 끝에도 한이 서린 듯
뜨거운 눈물 떨어질 듯 글썽거린다
오해는 전번 편지에서 생긴 걸 알았지만
구름과 안개 걷히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세상의 지기는 나와 당신뿐
우리 사이 아픔이 있다면 하늘이 알아주기나 할는지?
오늘 아침 된서리 내린 동문 길
횡당(橫塘) 못에 비낀 하늘 한쪽의 새벽달
이토록 슬프게 싸늘하구나
기적 소리에 벌써 애간장이 끊어지고
이제부터는 천애를 떠도는 외로운 나그네
수심과 원한의 줄을 끊어버려야 하리
곤륜산의 벼랑이 무너지듯
태풍이 온 누리를 쓸어버리듯 해야 하리
다시 날개 가지런히
구름 위로 날아보자
30세의 젊은 혁명가가 아내를 두고 떠나며 아내를 그리는 마음과 앞으로 불어 닥칠 혁명의 고난과 폭풍을 예감하며 낭만과 감상에 젖어 쓴 시다. 카리스마 있는 혁명가의 이면에 사랑꾼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책 마지막에는 모택동이 시대를 함께 했던 40인의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인물마다 출생부터 죽음까지의 일대기는 모택동을 그리고 모택동 시대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접점이 된다. 아울러 함께 첨부한 모택동 연표는 1893년 그의 출생과 1976년 사망까지 연도별로 당시의 시대사를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 모택동 연표를 먼저 읽거나 모택동 연표와 함께 책을 읽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저자와 함께 기행하며 모택동 시대 중국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이 절판되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경대학교 중국학과 김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