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 출범과 향후의 한중관계
1. 한중관계를 둘러싼 최근의 환경
금년은 한국과 중국은 수교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양국 간에 마늘 분쟁, 동북공정 문제, 사드 사태 등 양국 간에 갈등도 적지 않게 발생하였지만, 1992년 수교 당시와 비교해 보면 한중관계는 전체적으로 크게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근년에 들어 한중관계는 양국 간 정치적 신뢰가 충분치 않은 가운데 경제 통상 분야에서도 중국 산업의 고도화에 따라 상호 보완적이기보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중국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 한중관계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적지 않게 변화해 왔고, 양자 간의 상호 인식과 실질적인 이해관계에도 변화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으며, 이는 향후의 한중관계를 낙관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 미중간의 전략적 갈등 심화
한중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으로는 무엇보다도 미중간 전략적 경쟁의 심화를 들 수 있다. 사실 한중수교 이후 상당 기간 지속되어온 세계적인 경제 글로벌화와 미국의 대중 포용 정책은 한중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양호한 여건을 제공해 주었지만,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우려가 커지면서, 그간의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미중 관계에 큰 변화가 발생하였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미국은 QUAD 활성화, AUKUS 동맹 결성, EU와의 공조 등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시키고, 민주주의와 인권,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내세워 중국을 압박하는 한편, 트럼프와 달리 WHO 등 국제다자 협력체제에 복귀하는 등 미국의 지도력을 강조하면서 첨단 산업 기술면에서 중국과의 본격적인 경쟁을 추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미중 전략적 경쟁이 어떤 결말을 맺게 될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시간은 결국 중국 편이라는 것이 중국인들 다수의 인식이고 서방에서도 중국위협론이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서, 최근에는 중국의 인구 고령화 문제, 국가의 시장개입 확대에 따른 경제 활력 부족, 권위주의적인 장기 집권에 따른 정치 불안정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중국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도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 속도는 둔화되겠지만, 앞으로도 상당 기간 중국의 국력은 계속 신장되고 중국의 공세적인 대외정책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되며, 이에 따라 인도-태평양을 중심으로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이러한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으로 인해 미중 양국은 자신들의 전략적 입장에 한국이 동조해 줄 것을 요청해 오고 있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에서부터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조하면서, 동맹국이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이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에 협력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그간 한미일 협력 강화를 강하게 추동하면서, 규범에 입각한 국제질서, 대만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홍콩 사태, 신장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 표명을 요청해 왔으며,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기술 제품에 대한 미국의 공급망 재편 노력에 한국의 기업들이 적극 협력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또한 향후 경제안보 측면에서 포괄적으로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에의 참여도 요청해 올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미동맹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한미동맹이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동맹으로 변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서 한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 사안을 존중해 줄 것을 바라고 있으며, 한국이 미국에 치우치지 말고 한중 공통의 현실적 이익을 확대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오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드나 미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배치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한국의 QUAD 가입이나 미국의 공급망 재편 참여에 대한 우려도 표명하고 있다.
나. 북핵과 한반도 문제
북핵 문제도 한중관계의 외부환경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수이다. 그간 북미 간의 북핵협상은 미국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으며, 북한은 최근 그간의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 모라토리움을 깨고 ICBM 도발을 계속하고 있고 가까운 시일 내 추가적인 핵실험마저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얼마 전 평양에서 개최된 창군 9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은 최대속도로 핵무기 고도화 추진을 공언하면서 “근본 이익이 침탈될” 경우 한국에 대한 선제 핵공격의 가능성마저 언급하였다. 특히 최근 러시아의 우쿠라이나 침공과 핵무기 사용 위협은 북한으로 하여금 자신의 안보를 위해서는 핵을 포기해서는 안되고, 핵 선제 사용 위협은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참여를 억제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에 따라 북미간 갈등이 증폭되고, 한반도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면서 대북제재 강화가 논의될 경우에는, 대화를 강조하면서 제재에 소극적인 중국과 그렇지 않은 한국 간에 불협화음이 불가피하다. 아울러 북핵 문제가 긴장과 완화를 반복하는 소강상태가 계속된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핵 공조를 포함해 전략자산의 한반도 주변 배치나 한미 간 새로운 미사일 방어망 조치를 취하게 될 경우 중국으로서는 한미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에 비록 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하겠지만 북미간 비핵화 대화가 진전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문제가 제기될 경우에는, 중국과 북한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내세우게, 이에 따라 한중간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다. 한중 양자 간의 모순 증대
한중 양국 모두 수교 이후 국력과 국제적 위상이 신장됨에 따라 양국 간 상호 인식과 이해관계에서도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 수교 이래 한중 양국은 서로 이념과 체제가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간 실질적 협력 확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양국 간 정치적 신뢰는 축적되지 못했고, 양국 국민들 간 상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강해지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40여 년간 발전을 지속하여 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국제적 위상이 대폭 신장되었다. 이에 따라 그간 잠재되어 있던 한국에 대한 중국의 대국 의식이 표출되고 있고, 중국이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짐에 따라 한중 간 교류와 협력에 있어서 비대칭성이 증가하고 있고,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또한 한국 내에서는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공세적인 대외정책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중화민족주의와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가 더욱 강화됨에 따라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념과 체제의 이질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와 같은 중국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 인식에는 한국인들의 소득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짐에 따라 환경이나 보건 등 인간안보 문제 그리고 자유와 인권 문제와 같은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크게 제고되었으며, 이런 면에서 중국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 내의 강한 민족주의 정서도 국민들 간 감정충돌을 일으키기 쉽게 만들고 있다. 특히 14억 인구의 중국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기치 하에 중화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때에 따라 외국에 대해 공세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경계심을 갖게 한다. 한중간에도 최근 김치와 한복에 대한 원조 논쟁에서 보듯이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문화 민족주의적 현상들도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중 양국 모두 정보통신 기술의 광범위한 보급에 따라 왜곡되거나 조작된 가짜 뉴스는 언제든 순식간에 모든 국민들에게 전파되어 상대방에 대한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불을 붙이고 양국 관계에도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상황이다.
안보 문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한중수교 이래 지난 30년간 중국이 과거의 북한 일변도 정책을 수정하고, 때에 따라 북한에 의해 고조되었던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완화시키기 위해 막후에서 노력하였던 것은, 물론 중국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주변의 안정이라는 자신의 목표와도 일치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안보에도 의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한중간의 많은 소통과 협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보면 북핵 문제나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고, 특히 근래에 들어 미중간 전략적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중국에 있어서의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증대되면서, 이 문제들에 대한 한중간의 견해차가 고착되거나 더 악화될 수 있는 상황에 있다.
중국의 해공군력 강화에 따라 양국이 군사 분야 협력을 통해 적절한 방안을 마련치 않으면, 앞으로 군사 분야에서도 양국 간 갈등이 부각될 여지가 있다. 현재 중국은 국제법상 의무가 없다면서 한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KADIZ)을 사전 통보 없이 무단 침입하고 있지만, 자신의 방공식별구역에 들어 올 경우 중국에 통보하지 않으면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양국 간 해양경계획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서해에서 빠르게 증가되고 있는 중국 해군 함정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자칫하면 양측 간 우발적 충돌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제 통상 분야에서도 상호 이해관계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다양한 갈등 요인 속에서도 동아시아 가치사슬 내에서 수출상품 제조국으로서 상호 밀접한 경제협력을 하였으며, 이것은 양국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자유무역 질서를 옹호하는 다자체제의 기능이 약화되는 추세에 있으며, 각국에서 보호주의 조치들이 확대되고 있다. 미중 대결 등 지정학적 갈등이 글로벌 통상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중국의 국가주도 경제 조치가 강화되는 추세 하에서 공정 경쟁을 둘러싼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한중 양자 간에도 2017년 한국의 사드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양국간 정치안보 이슈와 경제협력이 연계되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에 진출해 있는 많은 한국 기업은 중국 내 인건비 상승과 규제강화로 제3국으로의 공장 이전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사라지고 있고, 중국 산업구조의 고도화로 교역 구조가 상호보완적 관계에서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상대로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2. 향후 한중관계를 위한 제언
5월 9일 새롭게 출범한 신정부의 대중정책이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윤석렬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중국에 대해서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외교를 전개하겠다고 하면서, 지난 3월 10일 당선 직후 국민들에 대한 인사말에서 상호존중에 기반한 한중관계를 언급하였는데 이는 최근 중국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북한의 점증하는 핵 위협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동아시아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 지역 정세 불안에 대응하여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도 현재의 안보 상황으로 보면 타당성이 있다. 그렇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한국이 전략적으로 중국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은 적어도 중국이 한국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우리의 국익에 부합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이 좋든 싫든 중국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인접하고 있어서 오랜 역사를 통하여 상호 안보, 경제와 문화 방면에서 긍정적이든 아니든 큰 영향력을 발휘해 왔기 때문에 양국이 앞으로 상호 관계를 잘 관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1992년 수교 당시도 그랬지만 지금도 핵 문제를 포함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적어도 중국이 훼방을 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양국의 협력이 여전히 중요하며, 상호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적 발전, 그리고 나아가 지역 내지 글로벌 가버넌스 문제에 있어서 양국간 협력이 도움이 되는 것도 여전히 사실이다.
상호존중과 호혜 평등은 한중수교 시에도 합의된 국제관계의 일반 원칙으로서 향후 한중 양국 관계를 건전하고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따라서 한중 양국은 상호존중과 호혜 평등을 바탕으로 협력은 확대하되, 이견은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원만하게 관리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은 이념과 체제 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측이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중국이 국가 관계에서 강조하는 상호존중은 상대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요 관심 사안을 존중해야 상호 협력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은 주권과 영토보전, 국가 및 체제의 안보와 발전이익을 핵심 이익이라고 하고 있지만, 구체적 내용은 남중국해에서의 해양 권익과 같이 중국의 국력이 강해지면서 확장되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언젠가 한중 상호간 핵심 이익이 충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주요국들과의 협력 관계에서 상호 간의 정치적 신뢰를 다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한중 양국은 이념과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상호 간의 정치적 신뢰 형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쌍방이 현재 부족한 상태에 있는 양국간 정치적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을 강화시켜 나갈 필요는 있다. 이런 점에서 우선 양국 최고 지도자들 간의 대화가 자주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한국이 자칫 매달리거나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중국에 대한 당당한 외교와는 거리가 있으며 의전에 있어서도 상호주의가 적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상 차원 외에도 한중간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형태와 레벨에서 전략적 소통을 강화시키고 이를 정례화 내지는 제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며, 군사 분야에서도 협력의 확대와 더불어 우발적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위기관리 체제를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다만 과거에 보면 소통 채널이 있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사례가 적지 않았던 점에 유의하여 양국 관계에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중요 전략소통 채널들이 충분히 가동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한국의 대외정책은 한국의 정체성, 국익과 가치에 기반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시장경제 체제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볼 때 한국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접하는 위치에 있고, 국토가 주변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고 분단되어 있으며, 부존자원도 부족한 나라로서 안보와 경제 등 면에서 취약성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경제력, 기술력과 문화 전파력이 선진국 수준에 진입함으로써 글로벌 가버넌스에서의 한국의 역할에 대한 국제사회와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가급적 주변 주요 국가들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개방적인 자유무역 체제를 옹호하고, 안보나 경제 등 면에서 국제협력을 중시하며, 가능하다면 다양한 다자협력 체제에 중층적으로 참여하여 한국의 목소리를 내고 기후변화, 국제감염병 대응 등 지역과 국제사회에서의 가버넌스에 기여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된다고 할 것이다.
한중수교 이래 역대 정부들은 모두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가 양립되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도 가급적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한국의 실리에 부합되기 때문이며 이를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물론 앞으로 미중간 갈등이 더욱 첨예화되는 등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한국으로서는 사안에 따라 불가피하게 미국이나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한국 정부의 선택은 한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국의 국익, 그리고 한국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안별로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서 무엇이 한국의 국익과 가치에 맞는 것인지는 국내적으로 충분한 토론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단 결정된 사안은 일관성을 갖고 의연하게 밀고 나갈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이 무엇보다도 자신의 경제, 과학기술, 군사,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자신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함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 인도-태평양에서의 미중간 전략적 경쟁과 관련해서는 한국이 앞서 기술한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을 바탕으로 자신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하고 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아울러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신남방정책도 역내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 반응이 있었던 만큼 정부가 바뀌었어도 이를 계속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향후 한국 정부 나름대로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수립된다면, 내용적으로는 상당 부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첩될 수 있겠지만, 이는 한국의 정책이 미국에 따라가는 것이 아닌 한국의 판단에 의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하고 전술 핵미사일, SLBM 등 투발 수단을 다양화시키고 있으며, 최근에는 심지어 한국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새로 출범한 윤석렬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화 위주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규정하고 비록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 두지만, 북한과 북핵 문제에 대해 보다 강경한 대응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핵을 포함한 북한의 도발적 행태에 대해 한국 스스로 보다 확실한 군사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중국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북한의 비핵화와 도발 방지를 위한 한국의 노력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주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미북 간 대화가 단절되어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를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과 연계시키지 않도록 하는 중요하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중국이 국내문제라고 하면서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안이지만, 한국의 국익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새로운 정부도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대만해협에서의 미중간 무력 충돌은 한정된 지역에서 국지화되는 것이 바람직스럽지만, 경우에 따라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으로 인해 동북아 지역 전체로 전장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 아울러,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일부 주한미군의 이동 가능성이 대두되고, 그에 따른 전략적 공백을 북한이 이용하려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한국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에 관심을 갖고, 분쟁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경제 통상 분야에 있어서 양국은 양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협력의 기초를 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본 틀로서 우선 현재 진행중인 한·중 FTA 서비스·투자 후속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간 추진되어 왔던 한국의 신남방정책 등 대외협력 정책과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간 연계 강화 노력도 계속되어야 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등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커져야 한다. 요소수 품귀 사태와 같은 문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한·중 협의체 신설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양국 정부는 앞으로 발생할 수도 있는 정치적 이견에도 불구하고, 정치 안보적 사안과 경제통상 협력을 분리한다는 정경분리의 기조를 유지하고, 양국의 지방 도시들 간이나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지장을 받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중국이 늘 강조하는 구동존이의 정신에도 부합되고, 향후 양국 관계의 안정적 발전에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한중 청년들 간의 상호교류 확대는 양국 지도자들의 큰 관심 사안이다. 특히 현재 양국의 젊은 세대들에서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다수의 양국 청년들 간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상호 이해와 유대감을 높이고 미래의 한중협력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될 필요가 있을 것이며, 인문 교류에 있어서도, 전통문화에 더하여 양국의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재료들을 발굴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동서대 동아시아연구원장 신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