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참조체계의 다원화와 ‘중화분단체제’
현대세계에서 타자인식을 경유하지 않는 순수한 자기인식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분단 한반도’의 역사와 현실 인식에 있어서 기존의 참조체계는 식민주의적 현대성(일원성) 또는 냉전적 이원성으로 인해 일정하게 인식론적 한계를 드러냈다. 따라서 아시아 또는 제3세계의 또다른 ‘분단’ 경험을 외재적이고 수직적 접근이 아닌, 관계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접근 속에서 재인식하는 참조체계의 다원화가 필요하다.
특히, 홍콩, 대만, 중국 대륙을 포괄하는 ‘중화분단체제’라는 참조체계는 과거 유럽의 동서독 분단과 달리, 동아시아 권역의 역사적 특정성을 반영하며, 나아가 ‘식민/제국주의’ 인식이라는 보다 확장된 역사적 시야를 요구한다. 이는 분단극복 또는 통일을 위한 ‘실용’적 해법을 넘어, 역사적 다원성에 근거한 주체적 참여를 통해 국민국가 체제 자체의 극복을 향한 사상적∙정치적 상상력을 촉구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의 현실적 인식 수준에서 ‘중화 분단체제’를 사유할 때, ‘중국’과 ‘非중국’의 분기가 드러난다. 나아가, ‘역사’와 ‘정치’가 미묘하게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지칭하는 것이고, ‘非중국’은 홍콩 또는 대만과 같이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체제에 아직 내부화되지 않았거나(대만), 과도기 상태( 홍콩)에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홍콩, 대만, 중국 대륙이 공유하는 역사적인 것을 ‘중국적인 것’ 또는 ‘中華性’이라 할 수 있고, 이는 현실적인 국민국가적 경계를 넘어선다.
특히, 중화 분단체제 하에서 대만과 홍콩은 기본적으로 한국/남한과 여러 층위에서 상호참조가 가능하다. 아래에서는 국가성격과 사회성격 등의 범주를 통해 참조가능성을 초보적으로 제시해보자 한다.
2. 국가화와 국가성격: 대만과 한국
먼저 ‘대만’이라는 거울 또는 참조점을 통해 한반도의 식민/분단의 성격을 보면, 우선 대만과 조선이 공히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시기를 경험했다는 점이 확인된다. 이를 ‘권역적 공통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데 ─ 기실 이와 같은 ‘공통성’의 조망 하에서 ‘상이성’을 드러내면서 타자인식과 자기인식의 심화를 꾀하는 것이 참조체계의 다원화가 지향하는 것이고, 이른바 ‘방법으로서의 아시아(竹内好)’의 길이다 ─ 여기에서 공통성은 보편성과 긴장관계를 이룬다.
이어서, ‘할양 식민지’ 대만과 ‘병합 식민지’ 조선의 상이성이 확인된다. 자연스럽게 이 상이성은 ‘탈식민’이라는 과제의 경로와 내용에 상이성을 부여한다. ‘할양 식민지’는 홍콩과 대만이 기본적으로 청나라의 ‘지방’이었음을 확인해준다. 또한 ‘할양’은 식민과 분단의 중첩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한반도는 先식민-後분단을 경험했다. 여기에서 ‘식민지 독립’의 함의가 논쟁적이게 된다.
Independence는 일반적으로 ‘독립된 국가건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식민지 조선의 독립은 이러한 일반적 이해에 부합한다. 그런데, 대만과 홍콩에 이러한 일반론을 적용할 수 있는 지는 논쟁적이다. 우리가 ‘탈식민decolonialism’을 식민으로 인해 초래된 왜곡, 단절, 분리, 박탈의 극복으로 정의한다면, ‘분단’ 상태를 계승하는 ‘독립 국가 건설’은 탈식민의 방향과 충돌하게 되기 때문이다. 조금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이러한 ‘독립’은 식민상태의 또다른 연속이다. 이 때문에 일제 식민지 시기 대만의 항일 운동이 ‘중화/중국’ 지향적이었고, 1945년 해방 이후에도 ‘대만 독립’은 소수의 급진적 주장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대만 독립’ 주장이 대만 내부에서 실질적인 힘을 얻게 된 것은 고착화된 냉전/분단 체제 하에서 중화민국/국민당의 당국가체제가 대만을 ‘국가화’했기 때문이다. 이는 1950-60년대 국민당에 의한 경제적 대만화(사실상 미∙일 종속적인 ‘신식민지’ 경제)와 1970년대 이후 국민당의 양보와 당외운동(‘민주화 운동’)의 성장에 의한 정치적 대만화에 의해 완성된다. 일반론적으로 보면 ‘자유주의적 정치경제’의 단계적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국민당과 민진당의 공모성이 확인된다.
그러나 역사의 복수라고 할까? 이 과정은 동시에 1971년 중화민국의 유엔 탈퇴(사실상 ‘퇴출’)로 표현되는 대만의 ‘非국가화’를 초래했다. 대내적으로 대만은 ‘국가화’를 경험했지만, 국제사회에서 대만은 ‘국가’가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지방의 국가화’는 사실 하나의 ‘거대한 전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주체성의 확립’으로 볼 것인지, ‘주체성의 박탈’이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사이 무엇으로 볼 것인지는 논쟁적이다.
상대적으로 ‘남한’은 ‘지방’이 아니다. 그러나 온전한 ‘국가’도 아니다. ‘半國’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경험한 것은 ‘半國’의 국가화라고 할 수 있고,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가운데 경험한 국민경제의 성립과 정치적 ‘민주화’는 어떤 의미인지, 대만의 경험과 대비해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 본고의 초고는 2021년 12월 16일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가 주최한 북콘서트 “방법으로서의 동행”에서 발표된 바 있다. 아울러 개고 과정에서 비판적 논평을 해준 박석진, 박동범 선생께 감사드린다.
3. 사회성격과 ‘방법’으로서의 중화분단체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홍콩의 경험은 대만과 상이하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지방’이 할양된 식민지였지만, 홍콩은 ‘국가화’의 경험이 부재했고, 냉전 시기 일정하게 국공내전의 비무장적 연속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포스트 냉전 시기인 1997년 ‘중국’으로 ‘회귀’(vs. 반환)했다. 1997년의 회귀는 형식적으로 보면 1945년 대만이 중화민국으로 ‘회귀’한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1947년 대만의 2∙28 사건은 1997년 이후 홍콩 사회의 모순과 서로 유비될 수 있다. 물론 2∙28 당시는 ‘국공내전’ 중이었기 때문에 모순의 양상이 달랐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도 있다. 사실 당시 대만이 경험한 엄청난 규모의 ‘백색테러’는 국공내전의 간접적 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홍콩이 국가화의 경험은 없었지만, 홍콩 또한 하나의 ‘사회’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서울 사회’, ‘북경 사회’, 또는 ‘경기 사회’라고 하지 않듯이, 일반적으로 ‘지방’이나 ‘도시’를 사회로 규정하지 않지만, 홍콩은 역사적으로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식민/분단을 매개로 하여 하나의 사회로 전환된다. 즉, 국가 또는 국가화 없는 ‘사회’라는 특정성이 파악된다. 우리가 홍콩이나 대만을 하나의 참조축으로 설정할 수 있는 이유도 그들이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성’과의 관련성은 서로 상이하다.
그런데 식민지의 독립이 국가를 전제한 것처럼, 우리의 ‘사회’ 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를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회 개념은 ‘할양’이라는 역사적 특정성을 담기 어렵다. 대만과 홍콩의 ‘사회’를 통해 우리의 ‘사회론’이 언제부터 ‘국가’를 전제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보고, 사회성격의 상이성을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 물론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비록 ‘할양’과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독립국가 건설의 상대적 비주체성에서 기인한 국가의 취약성과 내전을 통해 이분되어 형성된 남측 정치체의 대외의존성을 감안하면 ‘사회론’의 국가 전제는 다소 탈역사적이다.
사실 1990년대 초반까지도 한국의 사상계는 ‘남한’에 대해 반식민지 또는 신식민지 ‘사회’로 규정하고 그 성격을 논의했었다. 원리적으로 볼 때, ‘식민지 사회’는 국가가 아니다. ‘식민지=국가’는 형용모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사적으로 ‘민족해방’이 국민국가로 귀결되었더라도, 중국의 사회성격논쟁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사회’ 개념은 본래적으로 ‘비(국민)국가’적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계승한 한국의 사회사상(예를 들어 1980년대 사회성격론)을 재조명하면서, 사회 개념의 비국가성이 담지하고 있는 개방성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이 때 대만과 홍콩의 경험이 유용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아울러, 대만과 홍콩의 사회성격에 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사회성격 논의를 불러 일으킨다. 그런데,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기존 입장 안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논의인 듯하다. 왜냐하면 이 논의가 모종의 곤혹스러움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만의 사회성격을 논의함은 그것의 비국가성, 즉 모종의 ‘식민성’을 전제하는 것인데, 이는 대만의 일부 좌익들의 꾸준한 실천에서 보이듯이, 대만의 정치 및 경제가 일정하게 미국과 일본에 종속적인 측면을 비판하는 것이고, 대만 독립 주장을 비판하는 강력한 논거임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 이러한 사유는 ‘하나의 중국’ 안에 존재하는 ‘비국가/식민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어 중국이라는 국민국가의 불완전성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회성격론’이 현실에서 낳은 이와 같은 곤혹스러움은 그것이 오히려 분단체제극복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4. 사회성격론의 권역화
대만과 홍콩을 정치적으로 타자화하여 단순히 중화인민공화국의 ‘피해자’ 위치에 고정시키거나, 인식론적으로 역사적 중국성/중화성과 무관한 ‘자족’적 단위로 설정하는 것은 중국성/중화성의 재구축에 참여할 수 있는 다원적 역사 기반을 갖는 홍콩과 대만의 ‘주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탈역사적인 타자인식은 대내적으로 한국의 ‘자족’적 자기 인식을 강화할 뿐이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은 대외적으로 타자 인식에 있어서 ‘정상성’에 기반한 위계적 인식을 강화하게 된다.
사회성격의 차원에서 대만과 홍콩을 다시 마주하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만과 홍콩을 목적이 아닌 ‘방법’으로 삼는다는 것은 대만과 홍콩의 역사적 경험을 거울삼아 기간 한국 사회의 ‘자족성’ 또는 ‘정상성’, 나아가 같은 기준에 기인한 ‘콤플렉스’에 질문을 던지고 역사 안에서 현실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여, 사회성격 논의의 권역화를 위한 객관적 조건은 성숙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응할 주체적 준비는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으로서의 아시아’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함을 통해 일차적으로 서구중심주의적인 인식틀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자그만 위안이다. 이 작은 공감대에서 출발하여 권역적 참조관계 속에서 지성사적으로 ‘사회성격론’을 재역사화하는 것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사회성격론은 표면적으로 대립적이면서도 대만과 중국 대륙이 공유하는 국민국가적 폐쇄회로를 벗어나 중화분단체제의 역사성을 재인식하여 내부적으로 다원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대외적으로 정치체간의 다원평등한 관계모델을 구상하기 위한 중요한 경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사회성격론의 ‘권역화’가 갖는 내외부적 중요성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어 보인다.
이를 위해서 먼저 남한, 홍콩, 대만 등과 같은 비국가적 사회들의 사상계가 역사적 공통경험과 주체성을 기반으로 상호인식과 자기인식을 심화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정치적으로 권역 내의 복잡다기한 모순을 재정의하고 조절할 수 있는 사상적 근거와 기준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지성계가 먼저 할 일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가상적 정상성으로서의 ‘국가성’에 질문을 던지는 것일 테다. 그로부터 ‘사회성격’ 논의를 재출발시킬 기반이 확보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