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에 발생했던 5.4운동은 중국 공산당이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형성되었던 중요한 계기였다. 1919년 5월4일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에 나섰던 학생과 지식인들의 요구는 중국에 이권을 요구하던 일본에 대한 애국운동이자 일본의 요구에 굴복한 군벌정권에 대한 민주운동이었다. 이는 중국 민중이 조직된 힘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했던 중국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5.4운동에 참여했던 지식인과 학생들 가운데에는 급진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직업혁명가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났으며 이들은 2년 후 중국공산당을 창당하게 된다.
이들 중국 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것이 70년 전인 1949년이다.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한 중국공산당은 그러나 문화대혁명 등으로 조성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40년 전 1979년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하여 ‘시장경제’로의 체제개혁이 심화되어 왔다. 하지만 공산당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시장경제 개혁은 심각한 관료부패를 낳았고 이는 정치사회적 위기를 낳아 30년 전인 1989년 천안문 광장에 학생과 지식인들을 다시 집결시켰다. 1989년 4월부터 시작된 ‘천안문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학생과 지식인들 역시 자신들을 5.4운동의 계승자로, 자신들의 시위를 ‘애국민주운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중국 민중의 저항 운동이었기에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위기가 극대화된 사건이었다.
이러한 쓰라린 기억들이 다시 소환되는 2019년 올해는 그래서 중국 국내외에서 일찍부터 주목되었던 연도였다. 중국공산당을 둘러싼 정세 변화 여부에 따라 중국의 정치적 위기가 재현될 수도 있으리라는 전망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최근 정국에서 주목해야 할 현상이 있다. 2018년 가을 이래 최근까지 사이에서 응당 열릴 것으로 예상되던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은 사실이다. 더욱이 2018년은 개혁개방 선언 40주년이 되는 시점이었기에 시진핑 집권 2기의 경제개혁의 새로운 결정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관례를 깨고 2018년 가을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19기4중전회는 열리지 않았고, 2019년 3월 양회(兩會) 직전까지도 개최가 실현되지 않았다.
양회 개최 이전에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고 경제개혁에 관한 결정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 현상이다. 이는 중국 정치체제의 내재적 논리에서 본다면 양회에 대한 공식적인 ‘당의 영도’가 작동하지 않은 셈이기 때문이다. 양회 개최 6개월 즈음 전에 관례적으로 열렸던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음으로 써 시진핑 정권의 집권2기 핵심 경제개혁 결정이 제시되지 못한 셈이다.
이는 향후 개혁노선과 관련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 사이의 합의 실패를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즉, 최근 중국 공산당 당내에서 개혁 방향을 둘러싼 좌우 노선투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9년 3월 개최된 양회(兩會)에서도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2019년 3월의 양회에서 시진핑과 리커창의 강조점이 확연히 차이가 났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이 정협 대표단 회의에 참석하여 “인민을 중심으로 인민을 위한 작품”을 만들고 ‘인민’을 대변할 것을 주문하는 등 ‘인민’을 키워드로 강조한 반면, 리커창 총리는 전국인대의 <정부업무보고>에서 ‘시장화’를 통해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하자면서 ‘시장화’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리커창 총리는 ‘감세’와 각종 경비의 절감, 융자 지원 강화 등을 친기업적인 태도를 분명히 하고 공정한 시장경쟁 환경 조성, 혁신 능력 향상, 강대한 내수시장 형성 등을 2019년 정부 업무로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2018년 정부업무보고에서 사실상 시진핑이 주도하던 ‘공급측 개혁’이 정부업무보고에서 제일 먼저 그리고 상당히 중시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2019년 정부업무보고에서는 ‘공급측 개혁’에 대한 강조를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시장화’ 개혁이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2019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의 정부업무보고에서 주목되는 점은 전력, 석유 및 가스, 철로 등 국유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자연독점 업종에서 경쟁성 업무를 떼어 시장에 넘기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동안 시장경쟁이 배제된 채 독점 상태로 단일 국유기업이 장악하고 있던 영업 업무를 시장경쟁으로 바꾸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실상 핵심 국유기업의 영업 분야를 ‘민영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활력 있고 효율 높은 국유기업의 시장화 운영 기제 구축을 가속화하자는 추상적인 표현에 그쳤던 2018년 정부업무보고와 비교하면, 이는 1년 만에 국유기업의 일부 분야 및 업무에서의 ‘민영화’를 구체화한 것이다. 2019년 정부업무보고에서는 민영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천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시진핑(習近平)과 리커창(李克强)을 중심으로 하는 제5세대 지도부의 집권이 막 시작되기 직전인 2012년 초 이후의 상황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상무 부총리였던 리커창의 승인 하에서 세계은행과 중국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의 공동 보고서였던 <China 2030>이 발표됐는데 이 보고서는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국유기업의 민영화(privatization)를 적극적으로 권고한 바 있었다. 따라서 당시 국유기업에 대한 전면적인 민영화가 임박했다는 예측이 우세했다. 자유시장주의의 본산인 세계은행과 중국의 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의 집결지인 국무원발전연구중심은 리커창 총리의 지지 하에 국유기업 민영화를 선제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국유기업 개혁 문제 특히 국유기업의 민영화 여부는 항상 중국 내 첨예한 이념적 대립의 핵심 이슈였다. 국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국유기업을 관료부패의 온상으로 보고 민영화만이 정답이라고 보는 우파의 견해에 대해, 신좌파 등 중국 내 좌파세력은 중국 국유기업의 민영화는 민간 기업가의 국유자산 침탈과 신자유주의화를 야기했다고 비판해왔다. 실제 당시에도 재야의 좌파 지식인인 두젠궈(杜建國)가 <China 2030> 발표 기자회견장 단상에 뛰어올라 ‘미국에서 시작된 민영화 정책이 세계 경제위기를 야기했다’고 비판하며 중국 국유기업 민영화 주장에 거세게 반발했던 것이 그 상징적인 사건이다. 당시 좌파 지식인들과 네티즌들은 국유기업 민영화를 주장해온 우파 경제학자들을 매국노로 규정하여 비난하기도 했다.
이후 2013년 18기3중전회에서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국유기업 개혁 방향은 민영화가 아닌 혼합소유제 개혁(mixed ownership reform)이었다. 사회주의공유제의 주체적 지위를 견지하고 국유경제의 주도적 작용을 발휘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국유부문과 민간부문의 상호 지분소유체제를 구축하는 조치였다. 즉, 국유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민영화는 자제하겠다는 것으로 국유자산의 유실을 방지하고 국유자본의 영향력 확대도 가능한 것이라 중국 내에서 좌파의 환영을 받았다. 더욱이 시진핑 주석이 리커창 총리가 맡을 것으로 예상되던 경제개혁의 총괄 권한까지 가져오면서 시진핑 주석으로 권력이 집중되었고 이후 중국 공산당의 경제개혁 노선의 무게 중심은 상대적으로 왼쪽으로 기울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2019년 양회에서 리커창 총리가 ‘시장화’를 대대적으로 강조하고 제한적이긴 하지만 ‘민영화’를 구체화시킨 것은 그동안 시진핑 중심의 경제개혁 노선 대신에 리커창의 경제개혁 노선이 대두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중국 공산당의 개혁 노선을 둘러싸고 좌우 노선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양회 개최 이전에 당의 경제개혁 비전을 제시해야 할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개최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노선투쟁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묘하게도 최근 중국 내 노동운동가와 이들을 지원했던 좌파 학생 그룹들이 당국에 의하여 대거 구금되고 있는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국유기업 민영화 문제는 중국 내 좌-우 논쟁의 최대 쟁점이었던 만큼국유기업 민영화 문제 등 민감한 경제개혁 노선을 둘러싸고 중국 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면은 쉽게 변화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 국면은 그동안 권력을 강화하면서 좌파의 노선에 비교적 부합했던 시진핑의 경제개혁 노선에 대응하며, 미중무역전쟁과 경기침체라는 위기 국면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 리커창의 우파적 경제개혁 노선이 새롭게 대두되는 좌우 경합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구나 최근 시진핑 주석의 건강이상설이 미국 언론의 보도로 확산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유럽순방 과정에서 상당히 불편한 걸음걸이와 불안정한 얼굴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례와는 달리 중국공산당의 최고지도자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2018년 초 헌법 수정으로 시진핑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점쳐지던 와중에 시진핑 주석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것이다. 때문에 공산당의 정치 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는 잠재적 요인 중 하나가 새로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7년 전에도 시진핑 건강 이상설을 유포했던 미국 언론의 희망 섞인 보도가 재현된 것일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시진핑 건강 이상설을 유포하면서 중국 공산당 당내 권력구조의 불투명한 측면을 부각함으로써 중국 내 사회여론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2018년 가을 이후에 열려야 할 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았으며, 2019년 양회에서는 정책노선 상의 갈등 조짐이 보이며, 후계자가 전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의 건강이상설이 유포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최근 어떤 연도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정치적 불안정 조짐들이 2019년에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5.4운동 100주년, 천안문 민주화 운동 30주년의 시점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