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지명, 동래(東萊)와 부산(釜山)이 담은 부산 정신
모든 도시가 그렇듯 그 도시의 정체성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부터 근거를 찾아야 할까? 여러 길이 있겠지만, ‘부산’을 지칭하는 이름을 통해서 그 정체성을 풀어 보는 것도 유효한 방법일 것이다. 본디 명칭이나 이름이라는 것이 해당 사물이나 물체의 특징이나 내력 혹은 바람을 잘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자는 뜻을 담은 글자여서, 한자로 된 명칭은 이를 더욱 가능하게 해 준다.
예컨대, 학(學)자를 통해서 중국인들이 생각했던 ‘배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성(聖)자를 통해서 그들이 생각했던 ‘성스러움’이 무엇인지, 선(善)자를 통해서 그들이 추구했던 ‘정의’가 무엇인지, 덕(德)자를 통해서 그들이 상상했던 ‘도덕’은 무엇인지, 독(毒)자를 통해서 그들이 그려낸 ‘독’은 무엇인지를 살펴볼 수 있다. 뿐만 아니다. 한국(韓國), 중국(中國), 일본(日本)이라는 이름을 통해 동아시아 삼국이 담고자 했던 이상, 그들 각국이 갖고 싶어 했던 이상을 확인할 수도 있다. 이는 음가만 갖는 알파벳 문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표의성이 강한 한자가 갖는 장점이자 특징이다.
그렇다면 ‘부산’이 상상하는, 바라보는, 담고자 했던 정체성은 무엇일까?
사실은 지금 쓰이는 부산(釜山)이라는 이름이 이 지역을 지칭했던 처음의 이름은 아니다. 그전에는 ‘동래군(東萊郡)’과 ‘동평현(東平縣)’ 《삼국사기․지리지》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또 그 전에는 거칠산군(居漆山郡)과 대증현(大甑縣)이라는 지명도 보인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742~765년 재위) 때 동래(東萊)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른 이후 동래가 줄곧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어 왔다. ‘부산(釜山)’이라는 이름은 1481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등장하여 지금의 지명으로 발전했지만, 처음 에는 ‘부산포(釜山浦)’라는 바닷가 조그만 포구를 한정하여 부르던 말이었다.
한편, ‘거칠산(居漆山)’은 거칠다, 황량하다는 우리말을 한자로 빌려 쓴 이름인데, 지금도 남아 있는 황령산(荒嶺山)이 이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대증(大甑)은 ‘큰 시루’라는 이름인데, ‘증산(甑山)’도 마찬가지 뜻이다. ‘증산’은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시루(甑)처럼 생긴 산(山)’이라는 뜻이다. 부산은 바로 이것을 바꾼 이름이다. 즉 ‘시루’를 뜻하는 증(甑)이 ‘가마솥’을 뜻하는 부(釜)로 바뀐 것이니, 쉬 이해된다.
역대로 등장했던 여러 이름 중, 동래(東萊)와 부산(釜山)이 특히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동래(東萊)는 알다시피, 진시황의 불로초와 관련이 되어 있다. 중국 최초의 통일 대 제국을 완성하고서, 그는 자신의 영토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동쪽 끝까지 순행을 나섰다. 난생 처음으로 본 바다, 그에게 바다는 신비롭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옛날 신화에서 동쪽 바다 건너에 불로국이 있고 불로초가 있고 그곳에 불사약이 있다고 했다. 진시황은 서불(徐市)을 보내 이를 구해오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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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야경(해운대 마린시티)
불로초를 찾아 출발했던 곳이 산동 반도의 동쪽 끝, 연대(煙臺)라는 곳인데, 지금도 거기에는 동래(東萊)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진황도(秦皇島)와 마주하고 있어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서불 일행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까지 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남해에도 서불이 바위에 새겼다는 글씨가 남아 있고, 제주도의 정방폭포 앞에도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이 새겨졌다고 하고, 서귀포(西歸浦)라는 이름도 그가 되돌아 갈 때 출발한 곳이라는 이름을 담았다고 한다. 일본 후쿠오카에도 그와 관련된 유적이 남아 있다. 다만 모두가 아직은 전설일 뿐 구체적 사실(史實)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부산만 해도 그렇다. 영도를 지칭하던 봉래(蓬萊), 거기에 남아 있는 청학동(靑鶴洞), 동래(東萊)의 다른 이름인 봉산(蓬山), 장산(萇山)(《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도 모두 중국의 전설에서 가상의 영산(靈山)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부산은 오래전부터 불로초와 불사약이 있고 신선이 사는 곳,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이상향, 진시황이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그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유토피아를 꿈꾸고 선약을 상상하며 이상향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런 꿈을 그리며 그런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분명 낭만적일 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럴까? 최근의 조사에서 살기 좋은 도시, 찾고 싶은 도시, 여행하고 싶은 도시의 앞에 부산이 이름을 올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항구도시면서 아름다운 금정산까지 함께 갖춘 배산임해의 전형적인 도시이자 10월이면 세계적인 영화 축제가 열려 세계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정열의 도시가 바로 부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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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사진: 조선닷컴)
다른 한편, 조선의 최초 개항지, 한국의 근대화를 열었던 부산(釜山),
이를 계기로 크게 부상한 이름 부산(釜山)은 특히 남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부산이 1876년 조선에서 처음으로 개항함으로써 한국은 ‘근대화’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조일수호규약이라는 불평등의 치욕적인 강제에 의해 이루어진 개항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바깥세상과 교류하게 되었고, 부산이 그 창구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전통적인 동래(東萊)라는 이름을 대신하는 진정한 이름이 되었다.
부(釜)는 金(쇠 금)이 의미부이고 父(아비 부)가 소리부로, 쇠(金)로 만든 아비(父) 같이 큰 ‘가마 솥’을 말했는데, 상하 구조로 결합하면서 획이 생략되어 지금처럼 되었다. ‘큰 솥’이라는 뜻의 부(釜), ‘가마솥’은 다른 기물과 달리 우리의 생활 문화에서 특별한 상징을 갖고 있다. 밥을 짓고 갖가지 음식을 요리해 내던 가마솥, 이는 생활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불가결의 기물이었다. 혹시 전쟁이라도 나면 가마솥부터 짊어지고 피난을 가야 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하늘 천, 따 지, 가마솥에 누룽지, 빡빡 긁어서……’, 《천자문》을 처음 접하던 어린 시절, 어린 아이들이 《천자문》의 첫 시작,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을 패러디해서 부르던 노래였다. 이처럼 가마솥은 단순한 청동 기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중요하고 생존에 없어서는 아니 될 한국 고유의 조리 기구로서 생활의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산(山)도 그냥 산이 아니다. 산(山)은 원래 세 개의 산봉우리를 그려 연이어진 ‘산’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러나 중국 최초의 어원사전인 허신(許愼)의 (서기 100년 완성)에서의 철학적 해석을 통해 산(山)은 그냥 산이 아니라 끝없이 베풀어 만물을 살리는 이타적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산(山)은 ‘선(宣)과 같아 베풀다’라는 뜻이다. 기운을 발산하여 퍼져나가게 하여 만물을 자라게 하며, 돌이 있어 높게 돌출된 것을 말한다. 상형이다. (宣也. 宣气𢿱, 生萬物, 有石而高. 象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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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 편찬된 《여지도(輿地圖)》의 동래부(東萊府) 지도.
허신은 산의 가장 큰 속성을 ‘베품’이라고 하면서, ‘기운을 발산하여 퍼져나가게 하여 만물을 자라게 한다.’라고 선언했다. 의미심장한 해석이고 깊이 있는 풀이가 아닐 수 없다. 산은 옛날부터 하늘과 사람을 통하게 하는 상징으로 신성한 존재였다. 게다가 《설문해자》의 해석처럼 기운을 발산하여 만사만물이 자라나도록 하고, 가진 모든 것을 품고 안아주며, 자신이 가진 것을 한없이 베푸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산을 배경으로, 산에 기대어 살아온 우리에게는 쉽게 이해되는 말이다. ‘사람을 살리는 곳’이 산이다. 조선 최고 풍수학자의 한 사람이었던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소백산을 두고 한 말이다. ‘사람을 살리는 산’이 어찌 소백산에 한정 되겠는가? 지금도 기쁠 때도 기쁠 때지만, 특히 실의하고 마음을 추슬러야 할 때 자주 찾아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를 받는 곳이 산인 것은 바로 산의 이러한 속성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부산(釜山)은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아니 될 ‘커다란 솥’, 가마솥처럼 ‘끊임없이 베푸는’ 존재라 할 것이고, 그것이 부산이라는 지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물론 부산이라는 이 이름은 부산의 지형에 근거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땅 이곳 ‘부산’에 이러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러한 의미가 담긴 이름이라 여기고, 그것이 담았던 정신을 늘 간직하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부산’이라는 이름과 자연스레 닮아가 그런 존재로 그런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영원한 미래를 꿈꾸고, 영원히 죽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그런 낭만을 갖게 하는 것이 동래(東萊)가 담은 정신이다.
그리고 포용하고, 융합하고, 한없이 베푸는 것이 부산(釜山)이 표상한 정신이다.
21세기 새 시대를 맞아 부산은 새로운 세상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때 부산은 중심이되 이전의 중심이 가졌던 위계적 중심을 벗어나 ‘주변’의 공헌과 희생에 감사하며 주변을 포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그런 부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꿈과 낭만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에서도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성과 고귀함의 하나일 것이다. 부산(釜山)이라는 이름이 담은 ‘끊임없이 베푸는 큰 가마솥과 같은 존재’처럼 포용과 융합과 베풂의 정신을, 동래(東萊)라는 이름이 품은 인간 고유의 낭만과 꿈을 정신적 기반으로, 품격 있는 성숙한 부산, 세계의 부산, 미래를 이끄는 부산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이들 이름이 담고자 했던 ‘부산 정신’일 것이다.
경성대 중국학과/한국한자연구소 교수 하영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