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간 전략적 갈등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대응과 한국
1. 미중간 전략적 경쟁의 심화
코로나 19를 계기로 미중간의 전략적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은 코로나 발병 원인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그 책임에 대해 거론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현재 코로나
사태와 관련,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늦게는 베트남,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모든 아세안 국가들에게 의료물자와 장비를 지원하였고, 캄보디아, 라오스, 필리핀, 미얀마와
말레이시아에는 의료팀을 파견하였으며, 향후 중국에서 백신이 개발된다면 이 지역 에 공공재를 제공하는 방향에서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중국은 인건비 경감과 미국의 디커플링 정책에 대한 대응을 위해 생산기지를 동남아지역으로 옮기기 시작하였으며, 기존의 일대일로 사업들도 계속 추진하여 역내 국가들에 대해 자신의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높이려고 하고 있다. 또한, 2050년엔 세계 일류의 군사대국이 되겠다는 강군몽 달성을 위해 군비 확장을 지속하면서, 비록 중국이 유엔과 국제법을 기초로 하는
현재의 국제질서를 변경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신형국제관계와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앞세우며 궁극적으로는 중국 중심의 새로운 지역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대해 미국은 지난 5월 백악관에서 발표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이라는 보고서에서 지난 40여 년간 지속해 온 미국의 대중국 관여(engagement)정책이
실패했으며, 앞으로 힘에 의한 평화와 원칙에 입각한 현실주의에 따라 중국에 대한 전략적 압박을 본격화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이를 위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이하 FOIP)’ 비전을 적극 추진하면서,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한편, 외교, 안보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과 연계를
강화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그간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오던 미국의 대 중국 압박은 작년 하반기부터 이념과 체제면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2019년 11월 미 국무부의 FOIP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미중간의 전략적 경쟁은 미래 국제질서에 대한 자유의 비전과 억압의 비전 사이의 경쟁이라고 규정한 바 있으며, 지난 5월의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접근’이란 보고서에서도
그러했지만, 7월 23일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닉슨 대통령 도서관에서 행한 연설의 제목이 “공산주의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최근 중국공산당과 그
지도부에 대한 비판 수위를 크게 높이면서 한편으로는 공산당과 중국 국민을 분리하여 대응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 역내 국가들의 대응
이런 미중간의 갈등 상황은 한국을 포함 역내의 다른 국가들에게 있어서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최근 인도와 아세안 국가들의 대응에 있어서 보이는 약간의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인도는 모디 총리가 등장하면서 ‘Act East’ 정책 등을 통해 동남아를 거쳐 동북아에 이르기까지 전략적인 시야를 확대하고 있다. 중국과는 국경문제 등
안보현안이 있지만 전통적으로 인도는 자신이 인도양의 지도국으로서 미국 등 다른 대국에 경사되지 않는 중립 외교의 흐름을 이어 왔으며, 자신의 경제발전을 위해 중국과의 무역과 투자도
중시하였다.
그렇지만 중국의 급격한 부상과 공세적인 외교 군사 정책이 태평양과 인도양에 걸쳐 뚜렸해지는 상황에서, 특히 최근에는 중국과의 국경에서의 유혈충돌로 인해,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고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동진정책과 더불어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시키며 인도양에서 대국 간의 균형된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모디 총리는 그간 트럼프 대통령과
수차례의 회담을 가졌으며, 비록 미국의 FOIP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를 명확히 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QUAD에 적극 참여하면서 2+2 회담 등을 통해 국방과 해양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확대시키고 있고, 지난 7월 19일에는 인도양에서 미국과 해군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한 후에 관련 사진을 언론에 공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미국이
원하는 만큼 인도가 인도-태평양 전략과 너무 긴밀히 연계되는 것에는 아직까지는 소극적인 것으로 관찰되며, 이런 점에서 인도는 나름대로의 대국으로서 미국과는 독립적으로 자신의 국익에
따라 중국에 대응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아세안 국가들은 대체로 중국의 부상이 진행되고, 이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시작되었어도 미국과 중국 모두와의 양자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면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한해서 중국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헤징(hedging) 전략을 취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아세안의 인식은 최근 2020년 1월 싱가포르의 유력 싱크
탱크인 ISEAS가 아세안 국가들의 여론지도층 1,300명을 중심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살펴볼 수 있다. 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그간 북핵 등 동북아 문제와 자신의
국내문제로 동남아에 대한 관여를 줄였으며,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FOIP나 QUAD 안보대화는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응답자들은
중국보다는 미국이 이 지역에서 전략적 패권을 유지하길 선호하고 있으며, 미국 소프트파워는 여전히 상당한 힘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반면에 중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이
지역에서 가장 큰 경제적 영향력을 갖게 되었지만, 높은 비율의 응답자들은 중국의 경제적 힘에 대해 불편함을 표시하였는데, 이러한 경계감의 바탕에는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보여준 행동 등이
영향을 미쳐 중국이 과연 공공의 선을 위해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불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FOIP에 대해선 2019년 6월 발표된 아세안 Outlook을 통해 그들의 공동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지역의 정치 경제적 구도의 논의에 있어서 아세안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ASEAN Centrality와 더불어 아세안이 이끌고 있는 이 지역의 다자 메카니즘인 EAS나 ASEAN+ 같은 틀을 중심으로 역내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아세안을 건너뛰고 QUAD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FOIP에 대해서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세안 국가들 간에도 중국에 대한 헤징의 강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베트남, 싱가포르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중국에 비교적 강하게 대응해 왔지만, 말레이시아, 태국 등은 중국에
대해 가급적 대립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 왔으며, 인도네시아는 그 중간 정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근년에 들어 동남아지역에서 중국의 전략적인 위상과 정치적인 영향력이
급성장하고, 중국이 남중국해 수역에서 인공섬 건설과 군사기지화를 진행하는 한편,자신들의 해양권익에 대한 중국의 주장이 더욱 강해지면서 중국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과거 전쟁을 했던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근년에는 서사군도(Paracel Islands) 등에서의 중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2018년 3월에는 미국의 Carl Vinson 항모전단이 베트남전 종전 이후 최초로 베트남에 입항했으며, 11월에는 APEC이라는 다자회의 계기였긴 하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다낭을 방문했고, 2020년 3월에 항공모함 Theodore Roosevelt가 입항하기도 하였다. 비록 베트남과 중국공산당 간의 당대당 협력이라든가 양국 간의 투자와 무역은 여전히
활발하지만, 베트남은 국제관계 다변화 전략의 일환으로 러시아, 일본, 인도, 호주 등과도 해상안보를 위주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확대시키면서,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폴 등 국가로부터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하고 있다.
친중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두테르테의 필리핀도 중국에 대해 최근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0년 4월에 필리핀 외교부는 파라셀 군도 수역에서 중국이 베트남의 어선을 침몰시킨 데
대해 베트남과의 유대를 표시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군사적 행동으로 인한 새로운 상황이 중국에게 어떠한 법적 권한도 부여하지 않으며, 현재 진행중인
행동규칙(CoC) 협상을 위해 필요한 상호신뢰를 저해할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지난 20년간 미국과의 방위협력을 위해 유지되어 왔던 방문군 협정(Visiting Forces
Agreement)을 종료하겠다고 했던 두테르테는 2020년 6월에 이러한 결정을 보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말레이시아는 아세안 국가들 중에서도 일찍부터 중국과 양호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가급적 중국과는 대립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해왔다. 그렇지만 금년에 처음 발간된 말레이시아의 국방백서에는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활동에 대해 “점령”이나 “군사화”, 그리고 중국의 “공격적인 행동”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2019년 12월 말레이시아는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에
자신의 대륙붕 확대에 대한 부분적인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이는 남중국해 내 작은 암초들의 법적 권리를 부정하는 2016년 중재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것으로서 그 수역에서 자신의
해양권익을 주장하고 있는 중국의 반발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 때문에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3. 한국에의 함의
한미동맹은 한국 안보의 초석으로서 북한 등 외부로부터의 무력위협을 억제해 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국이 크게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다른 확실한 대안이 없는 한, 한미 동맹관계는 앞으로도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계속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중국 역시 우리의 이웃
국가로서, 비록 한중간에 이런 저런 문제들이 존재해 왔지만, 우리의 안보와 경제, 문화적 발전에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과 상호존중과 호혜평등의 동반자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중국남해연구원’의 우스춘 원장은 2019년 12월 기고한 글에서 앞으로 수십 년간 이 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는 상호 의존, 전략적으로는 상호 경쟁, 그리고 다양한 규범경쟁이 공존할
것으로 전망하고, 미국의 FOIP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글로벌 이슈에 대해 주요 대국들과 적극 협력하며, 미국의 실력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주변국들과의 해상분쟁을 우호적으로
해결하며, 양자간, 다자간 국제협의 체제에 적극 참여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만약 중국이 이러한 방향에서 기존의 공세적이고 민족주의적 외교정책에서 벗어나 미국 및 역내
국가들과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한국으로서는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동시에 발전시켜 나가는데 어려움이 적을 것이다.
그렇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미중간의 전략적 갈등이 계속 심화되면, 역내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미중 양국으로부터 압력은 계속 강해지게 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미국은 이념과 체제 면에서 like-minded 국가인 한국이 QUAD 플러스나 EPN(경제번영 네트웍), FOIP의 군사안보 분야 등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시간을 두고 사안별로 신중하게 판단하게 될 것이며, 원론적으로는 우리의 핵심적인 국익과 지향하는 가치를 고려하여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과거에도 커다란 대외적 도전 앞에서 명분과 실리를 둘러싸고 갈등이 표면화되곤 했듯이, 진영논리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 국내 상황에서 자칫하면 국익의
우선순위와 가치를 놓고 내부적인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SEAS의 William Choong은 싱가포르 대외관계의 3가지 기본적인 개념을 언급하고 있는데, 첫째는, 싱가포르가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서 행동의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like-minded 국가들과 최대한 협력관계를 만드는 것이고, 둘째, 어떤 대국도 동남아 지역에서 패권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도록 세력균형을 도모하는 것이며, 셋째는 미국이 이 지역에
계속해서 존재하여 이 지역의 안정과 중국을 포함한 모든 역내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토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고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으며, 국가의 규모나 지정학적인 여건이 싱가포르와 같지는 않지만, 안보 취약성과 외부환경에의 적응 필요성, 그리고 가치와 이념
면에서 유사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상기와 같은 싱가포르 대외정책의 기본개념들은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으며, 특히 첫째 부분과 관련, 우리에게 우호적인 국가들과 다양한 다자
형태의 협력관계를 중층적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아세안과는 물론이고, 미국이 구상하는 역내 다자 구상들도 그 윤곽이 구체적으로 들어나면, 중국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대응이 아닌 한, 가급적 참여하여 한국의 국익에 따른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할 것이다.
동서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장 신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