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글로벌 차이나의 유령 –
아프리카 진출 중국 자본의 정치, 노동, 투자 (Ching Kwan Lee, The Specter of Global China - Politics, Labor, and Foreign Investment in Africa, Chicago and Lond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7)
이해의 편의를 위해 최근 30년 간 중국의 경제성장 궤적을 세 단계로 분류해 보자. 우선 1990년대는 중국이 시장경제 시스템을 본격 수용한 시기다. 천안문사태 이후 ‘개혁’ 노선에 대한 갈등이 불거졌지만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는 중국이 ‘개방’에 몰두하도록 방향키를 돌려놓았다. 그 후 약 10년은 말 그래도 고속성장 시기다. 특히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가파른 성장률을 나타내면서 세계의 시장으로 부상했다. 그 후 10년, 즉 최근 우리가 목도해 온 시기는 중국이 질적 성장을 추구하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신장한 시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30년 동안 중국은 사실 자유 시장경제 질서의 수혜자였으며 서구 국가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은 처음 20년 동안만 해도 중국이 전환경제(transition economy)의 모범생으로 그들이 주도해 온 질서에 순조롭게 적응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10년 간 서구는 과거 그들의 기대가 중국과 동상이몽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중국을 위협론의 주체로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그들의 ‘리그’에 편입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넘어 확신을 갖게 되었고,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 것이라는 공포를 갖게 된 듯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중국적 질서란 과연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중국은 어떻게 다른 체제를 바탕으로 어떻게 다른 질서를 만들어 간다는 말인가? 스스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규정하지만, 중국의 이 ‘발명어’는 연구자들에게 조차도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많은 연구가 중국 특색이 무엇인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밝히는 데 공을 들여왔고, 그동안 여러 담론들이 제기되었다. 그 중에서도 1990년대 말 중국식 발전모델, 2000년대 중반 베이징 컨센서스 논의는 특히 주목을 받았다. 이 논의들은 기존의 서구 중심적 질서와 시장실패를 극복하는 중국만의 패러다임이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사실 부분적이나마 중국 정치경제 체제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고자 했다. 대상을 탐구하는 순수한 객관성이란 존재하기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에 주를 이루고 있는 담론은 국가자본주의적 해석이다. 국가자본주의는 국가가 시장의 주요 행위자가 되어 경제활동을 주도하며, 많은 경우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보호주의와 같은 조작으로 시장을 통제하는 자본주의 유형을 가리킨다. 일찍이 19세기 독일과 20세기 싱가포르 등에서도 운용된 바 있듯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세운 중국 정부의 대응 등을 설명하면서 정치경제학계에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중국 체제에 대한 국가자본주의적 접근의 요지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것이 사실 권위주의와 시장경제의 접목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자유 시장경제 무대에서 공정하지 못한 플레이어라는 부정적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이 담론은 주로 미국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며, 중국 내에서는 학자들조차도 언급을 금기시한다.
그런데 연구자에게 보다 중요한 문제는 국가자본주의라는 추상적 개념을 어떻게 경험적 연구로 실증하느냐 일 것이다. 중국 국가자본주의에 관해 쏟아지는 피상적인 논의에 비해 정밀한 논증은 미흡한 편이다. 통계와 문건을 해석한 연구에 비해 실제로 중국이 국가자본주의인지, 그것은 구체적 현장에서 어떤 차이점을 드러내며, 어떤 특성을 갖는지 등을 보여주는 경험적 연구는 많지 않다. 그러한 연구를 직접 설계하고 수행하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중국 연구자와 일반 독자는 모두 적지 않은 자료를 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가자본주의 탐구에 대해 여전히 이런저런 갈증을 느낀다.
중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참여관찰
2017년 출간된 칭콴 리(Ching Kwan Lee)의 “The Specter of Global China - Politics, Labor, and Foreign Investment in Africa”는 그러한 갈증을 해소하는 데 참신하고도 유의미한 단서를 주는 책이다. 저자는 “중국 자본주의는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6년 간 비교 민족지적 연구(comparative ethnographic research)를 진행하고 그 생생한 관찰들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책의 초점은 중국 국가자본주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국가자본’의 특수성을 판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중국 국가자본의 대표인 국유기업의 자본 축적 논리, 노동 레짐, 그리고 관리 정신(ethos of management)을 글로벌 민간기업의 세 요소와 비교하였다. 민족지적 탐색 대상으로는 잠비아의 구리광산과 건설현장을 택했다. 잠비아는 2000년 저우추취(走出去) 전략이 추진된 이후 중국 국유기업 투자가 가장 많이 진행된 국가 중 하나이고, 구리 채광업과 건설산업은 핵심 투자 부문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중국 이외 해외 기업들이 잠비아에서 경쟁적으로 광업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점, 그리고 영국의 옛 식민지로 영어 취재가 가능한 점도 저자가 이 국가를 연구 현장으로 선택한 이유다.
칭콴 리는 오랫동안 중국 노동 연구에 천착해 온 홍콩 출신의 학자로, 현재 미국 UCLA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광저우와 홍콩의 여성 노동 레짐에 관한 민족지적 비교연구로 명성을 얻었던 그녀가 오랜 현장조사 끝에 내놓은 이 저작 역시 전 세계 중국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연구자의 직접적 참여관찰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민족지적 탐색은 인류학이나 사회학에서는 널리 쓰이는 연구방법이지만 정치경제학 분야에서는 다소 생경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본은 일종의 과정이자 힘의 관계를 반영” 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중국의 국가자본 탐구에도 민족지적 접근이 유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xiii쪽),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잠비아 구리광산 다섯 곳과 건설현장 곳곳에서 직접 현장조사를 수행하였다. 그녀는 이 연구방법이 잠비아의 역사적 맥락에서 중국과 글로벌 자본의 투자 활동이 가진 의미를 설명하고, 그 미시적 과정들을 거시적 구조에 연결하는 확장된 사례연구(extended case method)를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1쪽).
책은 총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책 내용과 연구방법, 기본 개념들을 소개한 첫 장에 이어 2장은 자본 축적의 다양화에 초점을 맞춰 수익 극대화 이상의 동기를 가진 중국의 국가자본이 잠비아의 구리 채광 및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정치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전략자원 확보를 실현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중국 국가자본은 수익 극대화라는 단일 목표를 추구하는 글로벌 민간자본과 달리 현지 구리산업 이익 증대에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건설 산업에서는 차관 문제 때문에 약탈적인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3장은 두 가지 유형의 자본이 잠비아에서 어떻게 다른 생산 레짐(production regime)을 구성하고 있는지 탐구하였다. 저자에 따르면 글로벌 민간자본은 금융 기반의 생산 체제를 운영하기 때문에 구리 가격 변동에 매우 민감하며 시장 변동성에 대한 첫 번째 대응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중국 국가자본은 구리의 교환 및 사용 가치, 즉 실질 수요에 따른 생산 체제를 운영하므로 비교적 안정적인 생산과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안정적이고 즉각적인 생산을 위해 단일 하청업체를 고용하므로 노동자 단결에 더 큰 여지를 주며, 중국자본이 고용한 현지 노동자의 임금이 글로벌 민간자본에 비해 낮아 노동 쟁의에 더욱 취약하다.
이어서 4장은 두 종류 자본의 관리 정신(ethos of management)을 비교한다. 저자는 광산 주거지에서 각 기업 주재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중국 국유기업 관리자들에게는 "집단적 금욕주의" 문화가 있는 반면, 글로벌 민간기업 관리자들에게는 "개인적 출세주의(individualistic careerism)"가 지배적인 점을 발견하였다. 장시간 근무에도 고생을 참고 견디는(eating bitterness) 중국 관리자들을 보면서, 잠비아인 노동자들은 “그들이 사실 본국의 재소자여서 아프리카에서 고역을 하고 있다”고 믿거나 “중국 기업 문화는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소개는 민족지적 연구이기에 가능한 생생한 기록이다.
5장은 잠비아 투자 진행 시 야기되는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대해 중국 국가자본과 글로벌 민간자본이 각각 어떻게 대처하는지 고찰한다. 저자는 구리산업의 경우 중국 국가자본이 글로벌 민간자본에 비해 잠비아의 이익과 요구를 더 많이 수용하는 편이지만, 건설산업은 중국이 더욱 착취적이고 약탈적인 경향이 있다는 비교로 귀결한다. 그러나 잠비아 내부의 오랜 분열과 해외투자 급증 이후 현지 노동자들 사이에 생겨난 ‘쁘띠 기업가’ 문화는 노동 계급의 연대를 더욱 약화시켰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마지막 6장은 잠비아 이외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로 사례연구의 확장을 시도하고, 잠비아에서 중국 국가자본의 축적, 생산, 관리 등에 관한 관찰과 분석이 ‘자본의 다양성’ 연구로 이어지길 제안하며 책을 마친다.
‘다양성’으로서의 중국 국가자본과 아프리카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 투자가 급증한 것은 저우추취(走出去) 전략이 추진되면서부터다. 저우추취는 원래 중국 석유기업들이 공급처 다변화를 위해 1999년에 시작한 비즈니스 전략이었는데, 장쩌민 주석은 이듬해에 그것을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승급시키고 자원안보를 위한 공급처 탐색은 물론 국내 일부 과잉공급 산업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포괄적 경제외교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아프리카는 저우추취 정책의 중요 대상이며, 그 중에서도 잠비아의 구리와 건설은 핵심 투자 부문이다.
저우추취 전략은 중국을 자본주의의 한 유형으로 보는 학자들의 견해에 힘을 실어 주었다. 자본주의 국가의 외교정책은 경제적 논리와 분리될 수 없는데 저우추취가 바로 그 방증이라는 논리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의 주장처럼 자본주의 경제의 잉여 생산물은 새로운 시장개척과 그에 따른 지리적 팽창을 필요로 하는데, 그 협상 과정이 ‘외교’라는 이름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사실상 제국주의와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은 신제국주의자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대 아프리카 투자와 외교 역시 자본주의 또는 신제국주의의 한 형태로 비춰졌고, 이는 2010년대 들어 주를 이룬 중국 국가자본주의 논의와 맥을 같이 했다.
그러나 칭콴 리는 그러한 논의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찾고 있다. 저자 또한 이 책이 “중국 자본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으며, 그 세계적 영향도 (다른 자본과 마찬가지로) 구조적 상보성 또는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일부 학자들의 결정론적 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한다(164쪽). 결과적으로 저자가 보는 중국 국가자본의 성격은 글로벌 민간자본과 다르다. 우선 자본의 축적과정이 처음부터 시장경제의 민간자본과 달랐고, 사용가치에 초점을 맞춘 생산 레짐과 집단적 금욕주의로 무장한 관리자들도 글로벌 민간자본과 다르다. 이러한 중국적 특성은 아프리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강력한 위협이 되기도 한다. 과거 식민주의가 전형적으로 동반했던 군사적 정복이나 독점적 회사 설립, 그리고 종교 개조를 하지 않고도 때때로 더욱 착취적인 자본의 형태를 띤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 국가자본은 하나의 개별적 연구 대상이다.
칭콴 리는 한발 더 나아가 국가를 개별 단위로 보는 ‘자본주의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 접근 대신 ‘자본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에 초점을 맞춰 중국 국가자본의 독특성을 봐야한다고 주문한다. 저자가 그 독특성을 이해하려는 목적도 결국 자본이 가진 다양성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자본의 다양성과 다양한 자본이 상이한 정치, 경제, 문화적 맥락에서 양산하는 저항들을 이론화하면 오늘날 자본주의의 도전과 기회를 보다 명료하게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163쪽). 다양한 자본 중 한 유형인 국가자본이 특정 정치체제와 문화적 맥락 속에서 어떠한 독특한 결과를 양산하는지, 중국이라는 개별적 대상에 적용해 연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마치면서 본인의 연구가 이미 이론화된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와 구별되는 ‘자본의 다양성’ 연구로 지평을 넓힐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편, 중국의 다름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가자본을 자본의 한 유형으로 개별화함으로써 ‘중국식 자본주의’로 간주되는 것을 경계하는 이유에 대한 풀이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민간자본’은 중국의 국가자본 또는 글로벌 민간자본과 어떻게 다른가 라는 의문도 남는다. 아프리카에서 중국 국가자본의 운용 방식이 기존 글로벌 민간기업들의 투자와 다르다면, 오랫동안 착취와 저개발에 시달려 오면서 두 가지 자본의 차이 또한 인식하게 된 아프리카 국가들은 앞으로 어떤 유형의 자본 투자를 비교적 선호하게 것이며, 중국식 자본주의는 아프리카에 어떻게 수용될까 라는 궁금증 또한 떠오른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독창적 관점과 생동감 있는 기술은 (한글 번역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일독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저자처럼 아프리카에 투자한 중국 국유기업을 참여관찰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한 간접체험만 하더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만대학교에서 진행한 출간 기념 강연에서 칭콴 리 교수는 잠비아 구리 광구에서 산소 부족으로 혼절한 경험 등 현장연구의 여러 어려움을 이야기했지만,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필자는 그녀의 고생마저 사뭇 부럽게 느껴졌다.
국립대만대학교 정치학연구소 박사후연구원 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