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학장(學長)’이라는 말을 듣거나 본다면, 무엇을 떠올리는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종합대학 내에서 단과대학을 책임지는 사람’ 혹은 ‘전문대학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에서 공부를 하던 나는 이 단어 때문에 꽤나 당황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시기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박사과정 초기였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어느 날 석사과정에 있던 후배 하나가 나를 ‘学长(xuézhǎng)’으로 불렀다. 내가 공부하고 있던 베이징(北京)에서는 선후배를 부를 때 주로 ‘师兄(shīxiōng: 남자 선배), 师姐(shījiě: 여자 선배), 师弟(shīdì: 남자 후배), 师妹(shīmèi: 여자 후배)’라는 말을 쓰던 터라, 나를 두고 이렇게 불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늦었을 뿐만 아니라, 또 순간적으로 ‘나는 단과대 학장이 아닌 일개 학생일 뿐인데, 왜 이 친구가 나를 ‘학장(學長)’으로 불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후배에게 왜 나를 学长으로 불렀냐고 물었고, 그 친구의 반응은 당연히 ‘学长을 学长이라 부르지 뭐라고 부르냐?’였다. ‘學長’이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다른 의미를 가지는 탓에 오해가 발생한 것이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해는 풀었으나, 같은 한자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한자에 대한 인식에 차이로 인하여 소통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이 일을 겪은 이후, 나는 학생들에게 중국어 어휘를 가르칠 때마다 한국 사람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것은 ‘同字異意’, 즉 ‘같은 글자를 쓰나 의미가 다른’ 어휘라고 강조를 하곤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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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모대학교 의과대학장 이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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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学长学姐的手写信
언어의 특성이 만들어낸 ‘同字異意’와 ‘異字同意’
언어학에서는 언어가 ‘임의적 속성(任意性, arbitrariness)’을 지닌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언어는 부호(符號, 음성 혹은 문자)와 의미가 결합된 시스템인데, 부호와 의미의 결합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언어화자들 간의 사회적 약속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중국에서는 ‘約定俗成(yuēdìngsúchéng)’이라 칭한다.) 그렇지만 부호와 의미가 결합을 한 이후에는 결합관계가 상당히 단단해져, 개인이 이를 마음대로 바꾸고자 한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공권력이 동원되어 강제적으로 바꾸고자 하더라도, 언어 사용자들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즉, 언어 사용자들 사이에 새로운 약속이 있어야 이 결합관계에 변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자(漢字)도 문자부호에 속하므로 예외가 되지 않으며, 그리하여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어와 중국어, 중국어와 일본어,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필자가 위에서 밝힌 것과 같이 ‘同字異意’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성을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어 사귀게 되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이에게 무엇이라 소개하는가? 바로 ‘애인(愛人)’으로, 우리에게도 굉장히 익숙한 한자어이다.
이는 《論語(논어)》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論語·學而》를 보면 ‘道千乘之國, 敬事而信, 節用而愛人, 使民以時2).’라는 구절이 있으며, 여기에서는 ‘동사(愛)+목적어(人)’의 구조로 ‘사람을 사랑하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후에 ‘수식어(愛)+피수식어(人)’ 구조로 확장되어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도 지니게 되었고, 다시 ‘연인 관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게도 되었다. 한국어에서의 ‘애인’은 이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중국어에서 ‘爱人(àirén)’이 나타내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도 지니고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의미는 바로 ‘남편 혹은 아내’, 즉 ‘배우자(配偶者)’이다. 한국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혼인 관계를 맺은 남녀’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외에 일본에서는 ‘첩’ 혹은 ‘내연 관계’를 의미하는 말로도 쓰이는 것을 보면, ‘愛人’은 同字異意의 전형적인 예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같은 ‘임의성’이라는 원인으로 서로 다른 글자 혹은 단어가 동일한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異字同意’로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 중에서 이용할 수 있는 주요한 교통수단 중 하나가 바로 ‘기차(汽車, Train)’이다. 이러한 ‘기차’가 정차하는 곳을 우리는 ‘역(驛, Train Station)’이라고 부르며, 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역(驛)’은 원래 ‘소식 등을 빠르게 전달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수단, 즉 역마(驛馬) 혹은 역차(驛車)’를 의미하는 말이었는데3),이후에 의미가 확장되어 ‘공문을 멀리 전달하는 사람 혹은 관원들이 잠시 머무르면서 말을 바꾸는 곳’의 의미까지 지니게 되었고, ‘기차’라는 신문물이 들어온 후에는 한국과 일본에서 ‘기차 및 유사한 종류의 교통수단이 정차하며,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기 위하여 대기하는 장소’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에서는 ‘기차 등이 정차하는 곳’을 ‘참(站, zhàn)’으로 칭한다. ‘站’은 원래 ‘앉거나 서서 움직이지 않는 모양새4)를 의미하는 글자로,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역(驛)’의 의미와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원(元)나라 때로 알려져 있다. 원나라에서는 ‘역참’제도가 발달하였는데, 몽골인들은 이러한 ‘역참’을 Jam으로 불렀으며, 이를 중국인들이 ‘站赤’로 표기하면서 기존에 사용되던 ‘驛’을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驛’과 ‘站’은 ‘異字同意’의 전형적 예라고 할 것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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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부산역(Busan Station, 釜山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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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北京西站(Beijingxi Railway Station)
그렇다면, ‘同字異意’와 ‘異字同意’ 중 무엇에 더 주의를 해야 하는가?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하면, 모국어와 외국어가 충돌할 시에 무의식적으로 모국어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어 어휘 사용에 있어 ‘한자어’에 익숙한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한자어가 모국어에서 가지고 있는 의미’를 그대로 사용해버리는 것이다. 즉, 양국 간에 존재하는 의미의 차이를 무시한 언어사용으로 인하여 소통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겉보기에도 차이를 보이는 부류보다 겉보기에는 익숙한 부류에서 오히려 방심으로 인한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同字異意’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겉보기에 다르더라도 동일한 의미라는 것을 알게 되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異字同意’도 일정 부분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중관계: 유사함 속의 차이점과 다름 속의 공통점
이를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한국과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一衣帶水(yīyīdàishǔi,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워 왕래가 빈번함)’의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에, 타 대륙에 위치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는 유사한 면모를 보이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것으로는 한자문화권, 유가사상 등을 들 수 있고, 현대적인 것으로는 수출주도형 경제, 압축적 경제성장 등이 있다. 그렇지만, 한국과 중국이 각자 수천 년의 역사를 거치는 동안, 유사한 면모를 보이는 부분 내에 중요한 차이를 나타내는 면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두 나라 간의 관계에서는 사소한 실수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는 경우가 있고, 이런 사소한 실수는 차이를 명확히 보이는 부분보다는 오히려 유사한 면모에 숨겨진 차이점을 소홀히 하는데서 오는 경우가 왕왕 존재하므로, 세심한 접근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나 마냥 조심하는 것만으로는 양국 간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가 없으므로, 서로 다름 속에 존재하는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이를 통하여 한국과 중국이 ‘공존공영(共存共榮)’하는 길을 모색하기에 분발해야 한다.
부산외국어대학교 강사 박규정
- 1) 그림1) 네이버에서 검색 및 다운로드
그림2)https://m.gmw.cn/baijia/2021-08/31/1302526215.html
- 2) 《논어·학이》: 천승의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일을 신중하게 하고 믿음을 얻어야 하며, 씀씀이를 절약하고 타인을 사랑해야 하며, 백성을 부리되 때에 맞추어야 한다.
- 3) 《呂氏春秋·士節》:齊君聞之,大駭,乘驛而自追晏子,及之國郊,請而反之。
《여씨춘추·사절》: 제나라 임금이 듣고 크게 놀라 역마를 타고 직접 안자의 뒤를 쫓으매, 국경에 이르러서야 (그를 만나) 청하여 돌아오게 하였다.
- 4) 《五音篇海》: 坐立不动貌, 俗言獨立也.
《오음편해》: 앉거나 서서 움직이지 않는 모양새로, 홀로 서있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 5) 그림3) 네이버에서 검색 및 다운로드
그림4) 百度에서 검색 및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