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사변 직후인 1932년에 수립되어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만주국'이라는 정체(政體)는 여전히 동아시아의 근대성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학술적, 사상적 자원을 내포하고 있다. 20세기 초 만주(중국인들은 '둥베이'라 지칭하는)라는 공간은 한중일 삼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얽히고설키며 수많은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이 남긴 복잡다단한 행적과 사유들 가운데 어떤 것이 '가능성'에 해당하고 어떤 것이 '불가능성'에 해당하는지는 아직 우리에게 완전히 공개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만주국'이라는 비밀문서를 해독하기 위해 긴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만주국'이 그처럼 난해하고 복잡한 연구대상인 까닭은, 우선 그곳이 서로 다른 정세적 입장에 놓여 있던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이유와 목적에서 만주국에 거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 지배 민족으로서의 일본인, 피지배 민족으로서의 조선인, 그리고 오랫동안 반식민 상황에 놓여 있던 중국인과 식민-반식민의 얼개로 설명하기 곤란한 만몽 및 러시아인, 심지어 유태인에 이르기까지, 만주국을 구성하는 민족은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 '갈등의 요람(래티모어)'으로 모여들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민족이 같더라도 만주국에서 이루고자 했던 '이상'이 늘 같았던 것은 아니다. 만주국은 좌익과 우익, 유토피아주의자와 현실주의자, 휴머니스트와 마키아벨리스트가 복잡다단하게 뒤섞여 협력, 반목, 타협, 결렬을 반복하면서 길러낸 일종의 '키메라(야마무로 신이치)'였던 것이다. 일본 중앙정부의 정책에 반하여 군벌 장쭤린(张作霖)을 폭살하고 만주사변을 일으킨 관동군 내부에서조차도 만주의 경영 방향과 중일 관계에 대한 전망이 일치하지 않았으니,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을 터다. 그 뿐 아니라, 만주라는 공간은 동일하고 균질적인 공간이 결코 아니었음을 인식할 필요도 있다. 만주 지역의 대표적 도시였던 신징(新京), 다롄(大连), 하얼빈(哈尔滨)은 각기 다른 지정학적, 역사적, 문화적, 종족적 성격을 지님으로써, 만주국의 면모를 더욱 복잡다단하게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만주국이 수립된 '만주'라는 공간은 여러 민족들이 점유와 상실을 반복했던 곳이다. 한민족, 여진/만주족이 자신들의 왕국을 수립했던 지역이고 청말 '봉금정책'이 폐지된 후에는 인구적으로 한족이 다수를 점하기 시작했던 곳이나, 청말 반청 혁명가들에게는 중국으로부터 축출해야 할 '만주족'의 고토로 표상되었던 곳이기도 했다. 20세기 초 장제스(蒋介石) 치하의 중국은 만주를 중국의 일부인 '둥베이(东北)'로 호명했고, 일제는 이 지역을 중국 본토와 분리시키고 자신들과 연결하려는 지리학적, 인류학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만주국이 수립되어 있던 이 지역의 역사는 어느 한 나라, 한 민족이 독점할 수 있는 역사라기보다는 동아시아 각국, 각 민족이 공유하는 역사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인들은 위의 역사적 전제들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가? 여전히 '식민 청산'이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협력'이냐 '저항'이냐 하는 이분법으로 그 시대의 예술과 사상을 저울질하는 태도 속에서 위와 같은 전제들이 담론장 내에서 발딛을 곳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필자는 중국현대문학 연구자로서, 지난 몇 년 간 건국대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에서 수행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중국 내 만주국 문학 연구자들의 관련 논의들을 비판적이고 대안적으로 검토, 분석해왔다. 일제 식민주의의 피해자로서, 만주국의 문학을 바라보는 중국 학자들의 입장과 견해는 한반도 거주민들의 주류적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필자는 제3자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중국 학자들의 연구를 바라보려 할수록, 그러한 '객관적' 태도가 우리의 역사를 바라볼 때에도 동일하게 관철되어야 하리라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만주국'이라는 대상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오랫동안 '금기어'에 가까웠다. '둥베이 윤함구 문학(东北沦陷区文学)'―중국대륙에서는 '만주국 문학'을 주로 이렇게 명명한다―은 모조리 '한간문학'의 범주에 묶여 진지한 연구 대상이 될 수 없었고, 그것에 관해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만주국에서 활동한 작가들은 대부분 그들의 정치의식, 사상 경향, 창작 기법 등과 상관없이 모두 '친일문인'으로 규정되어 비판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둥베이 윤함구 문학'을 진지한 비평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문단 내에서 제기되어 작품들의 정리, 소개, 평가가 이루어졌고, 량산딩(梁山丁)을 중심으로 만주국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의 회고담이 출판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진 종래의 평가를 바로잡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고, 이러한 노력은 '둥베이 윤함구 문학' 연구자들의 학술 작업과 호응하면서 적지 않은 성과를 일궈냈다. 그들은 만주국 시기의 문학을 일률적으로 '한간문학'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만주국의 문인들이 일제 관동군의 엄혹한 감시와 통제 하에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만주국의 현실을 비판하고 만주국 민중들의 고된 삶을 재현하는 다수 작품들을 창작해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첨예한 논점의 대립이 없지 않았지만, 1990년대 이래 중국의 학계는 대체로 이러한 방향으로의 진전을 보여주었다.
최근 중국 화둥사범대의 류샤오리(刘晓丽) 교수는 그러한 학술적 '진전'을 총결하면서, '해식문학(解殖文学)', '동아시아 식민주의' 개념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여 '위(伪)만주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그녀가 이전의 중국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둥베이 윤함구 문학'이라는 개념 대신 '위만주국 문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개념은 한 편으로 중국에서 그간 기피해왔던 '만주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현대 중국의 고통스럽고 치욕스런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겠다는 의지를, 다른 한 편으로 만주국의 '괴뢰적' 성격을 노출시킴으로써 일제 식민주의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폭로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그녀의 '해식문학' 개념은 그 두 가지를 문학 영역에서 시도하기 위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해식'이란 '탈식민(Post-colonial)'의 의미보다는 식민주의의 융해(溶解), 해소(消解)라는 의미를 띤 단어이다. 그녀가 보기에 '위만주국'의 문학작품들은 당국의 엄격한 통제로 인해 식민 체제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수행할 수 없었지만 식민 지배 하의 각종 사회 모순을 작품 속에 일정하게 반영함으로써 식민주의를 '융해', '해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해식문학' 개념은, '위만주국 문학'을 단순히 저항이나 협력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 저항하면서 협력하고 또 협력하면서 저항하는 몸부림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으로 읽혀질 수 있다.
류샤오리의 그와 같은 주장은 기존의 '저항-협력'의 이분법을 돌파하는 이론적 시도로 높게 평가해야 하지만,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 여전히 강한 민족주의 감정에서 도출된 그녀의 문제의식은 식민주의보다 더 큰 근대성의 범주를 간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녀가 비판하는 동아시아 식민주의가 일제에 의해 자행된 특수한 사태라기보다는 식민 공간 안팎에 공히 존재했던 보편적 착취와 폭력의 종속변수였다고 보고 싶다. 실제로 그녀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언급하는 작품들 속에서 근대성의 문제는 식민주의의 문제보다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또 그 근대성은 비판의 대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양가적인 의미를 띤다. 그것은 '봉건 전통'의 질고를 끊어내는 진보적 일면과 착취와 억압을 자행하는 폭력적 일면을 모두 포함한다. 단적으로 말해, 그녀가 해식문학의 사례로 다루는 작품들 속의 다양한 사회문제는 식민체제 내에서만 존재했던 문제라기보다 전근대성과 근대성이 복잡하게 착종되어 있었던 동아시아의 어느 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제였다.
따라서 문제를 식민주의의 각도에서 접근하기보다 근대성의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만주국 문학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동아시아 식민주의를 넘어 동아시아 근대성이어야 하며, 또한 동아시아에 보편화되었던 '통치성(푸코)'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어떻게 구조화, 체제화되었는지 하는 점이어야 한다. 근대성의 문제는 국민국가들 사이의 폭력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 내부의 폭력까지도 동일하게 중대한 것으로 간주할 것을 요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쉽사리 비판되고 해체될 수 없는 유용성, 효율성을 동시에 사고하도록 촉구한다. 즉 근대성의 문제는 변증법적 태도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태도 하에서는 '저항'과 '협력'이라는 이분법도, 그 시기 문학에 깃든 저항의 형식을 민족주의적 시각에서만 의미화하려는 시도도 모두 불완전한 것으로 파악될 것이다.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지금까지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쌓아올린 풍성한 학술적 성과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근대성의 면모를 포괄적으로 조감하는 일, 그리고 여기서 얻은 결과물을 끊임없이 대중 속으로 확산시켜 나아가는 일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