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7월 30일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인도-태평양 비즈니스 포럼에서의 연설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미국의 구상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였다. 이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작년 11월 베트남 다낭에서 개최된 APEC CEO 회의에서 경제안보가 국가안보라고 하면서 미국과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동반자 관계를 제기했던 내용을 보다 현실에 맞게 구체화시킨 것이며, 8월 초 예정된 ARF에서의 아세안 국가 외교장관들과의 회동을 앞두고 보다 분명하게 미국의 지역전략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도-태평양 전략 개념은 일본과 호주가 각각 자신들이 먼저 제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태평양 지역과 인도양 지역이 정치 경제적으로 보다 연계되고 미국과 인도가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을 공유함에 따라 세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2017년 10월 전임 미 국무장관 틸러슨은 워싱턴 CSIS에서의 연설에서 기존 국제질서와 규범을 지키기 위한 인도와의 안보 파트너쉽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전략적 협력 개념으로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아울러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미·일·인도 3자 협력에 호주를 더한 4자간 협력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이후 미국의 제의에 따라 작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계기에 미국, 일본, 호주, 인도로 구성되는 소위 QUAD의 차관보급 인사들이 2007년 이후 10년 만에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이라는 주제로 회의를 개최하여, 규범에 기초한 지역질서, 해양에서의 항해와 상공비행의 자유, 국제법 존중, 해양안보, 인프라 연결과 북핵문제, 국제테러 문제를 다루면서 마치 4개국이 중국에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인상을 준 바 있었다. 이어 작년 12월에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비전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은 이 지역의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강력한 방위 네트워크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기술하였고, 미 태평양 사령부의 명칭도 인도-태평양 사령부로 바뀌었다는 점 등을 볼 때,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결국은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 안보적인 고려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그간 우세하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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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mobacle/221136889320
그렇기 때문에 개별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과 중국 두 나라와 모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길 희망하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내 다수의 국가들은 미중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향방에 대해 주의 깊게 관찰해 왔다. 이런 이유로 작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시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한국의 참여 여부에 대해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내심 적지 않은 고민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싱가포르 싱크탱크의 한 전문가는 최근 필자와의 대화 시에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심화되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은 사실상 중국을 목표로 하는 안보 협력보다는 인프라 연결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협력이 주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협력이 QUAD, 특히 인도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하여 “아세안 중심”이라는 원칙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가능성에 대해 내심 우려하고 있다고 언급한바 있다.
물론 폼페이오 장관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의 이 지역에 대한 비전이며, 이는 국가들 간의 주권 존중, 법치, 그리고 지속가능한 번영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면서, “자유로운(Free)”의 의미는 역내 국가들이 자신들의 주권에 대해 다른 나라(사실상 중국을 지칭)로부터의 강압을 받지 않는 것이며, 국내적으로는 각국의 시민들이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한편, 그는 “개방적인(Open)” 것의 의미는 지역 내 해양과 그 상공에 대한 개방적인 접근이며, 모든 영토와 해양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고 언급함으로서 중국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한편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갖고 있는 중국에 대한 정치 안보 면에서의 의미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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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워싱턴D.C. 신화=연합뉴스
그러나 그의 연설 내용은 전체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우선은 경제적인 면에 비중을 두고 있음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미국이 역내 국가들과 더불어 중국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 안보적 협력을 추진하기에는 인도의 다소 모호한 입장을 포함하여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지역 내 국가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공정하고 상호주의적인 무역, 개방적인 투자환경, 국가들 간의 투명한 협정 그리고 지역 내 인프라 연결을 향상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이와 관련, 그는, 비록 중국의 실크로드 협력 구상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작은 규모이지만, 앞으로 1억 1,300 만 불의 자금을 지역 내 디지털 경제, 에너지와 인프라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고 장차 미국의 개발금융 재원도 600억불로 확충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아울러 폼페이오 장관은 이러한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에 어떤 나라도 그 참가를 배제하지 않으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중심에는 아세안 국가들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폼페이오 장관의 연설에 대한 미 국무부의 배경설명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 지역에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직접 경쟁하려는 것이 아니고 능력배양 사업이나, 인프라 개발 지원 등에 있어서 민간분야 투자를 장려하여 보다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을 역내 국가들에게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7월말 폼페이오 장관의 정책 연설에 더하여 8월 초 싱가포르 미-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에서의 모두 발언을 통해 아세안 중심을 강조하고, 역내 국가들 간의 경제적 연계를 부각시키며, 이 지역에 대한 민간 차원에서의 투자를 적극 장려하겠다고 한 것은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우려를 다분히 고려한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이러한 미국 정책에는 현 시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정치안보 분야에서의 협력보다는 우선은 동남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해서 미국과 역내 국가들 간의 경제 분야에서의 연계성을 강화시키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Searight 같은 미국 내 동남아 전문가들의 견해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미국 내 한 전문가의 견해이긴 하지만 미국이 중국의 일대일로와 경쟁하기보다는 일대일로에 대한 보완적인 성격의 인도태평양 구상을 전개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 즉, 인프라 건설은 중국의 일대일로에 의해 추진하고, 의료, 능력배양 사업 등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미국주도로 한국, 일본을 같이 참여시키자고 제안한 것은 흥미롭다고 하겠다.
한편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11월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세안 기업투자 회의(ASEAN Business Investment Summit)에서의 연설에서 한국이 아세안과의 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켜, 한-아세안 국가들 간 활발한 인적교류를 통한 사람공동체, 상호 안보협력을 통한 평화 공동체와 호혜적 경제협력을 통한 상생 번영의 공동체 구축을 내용으로 하는 신 남방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문대통령은 특히 아세안 국가들과의 경제협력과 관련, 역내 연계성(Connectivity)을 높일 수 있는 교통 인프라, 에너지, 수자원 관리, 스마트 정보통신 등 4대 중점 협력분야를 제시한 바 있으며, 이를 위해 “글로벌 인프라 펀드”에 2022년까지 1억 불을 추가로 조성하겠다고 언급하였다. 이런 점을 보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 남방정책은 실제 내용에서 유사성이 있다고 하겠으며, 노력 여하에 따라 중국과 대립하지 않으면서 한미 간에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동서대 중국연구센터 소장 신정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