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홀로 자취하는 집의 실내 형광등 세 개 가운데 두 개가 갑자기 깜빡이기 시작했다. 왜 이럴까 하고 보니 형광등 가장 자리가 새까맣게 돼 있었다. 그래서 형광등을 교체할 때가 됐구나 여기고 무심코 동네 마트에 들러 50W 미색형광등 두 개를 구입했다. 집에 들어와 형광등을 갈아 끼우고 이제 문제없이 살 수 있겠다 했지만, 그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분명 새 것인데 다시 '명멸'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관리사무실을 찾아 상황을 설명하니 당연하다는 듯이 "안정기가 문제인 것 같은데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기억을 더듬었다. 작년에 분명 안정기를 교체했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벌써 문제가 생겼단 말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안정기를 하나만 교체했던 것이고, 교체된 안정기에는 교체 연도와 날짜가 적혀져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교체 날짜가 적혀 있지 않던 것이 탈이 난 것이 분명하다. 부산에서 살다보니 배운 사투리 가운데 하나가 '천지삐까리(많다. 넓은 범위로 널려 있다는 의미)'다. 일상에서 생겨나는 사소한 문제들은 그야말로 천지삐까리다. 정말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역설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북중관계'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해놓고 한동안 무엇을 써야 하나 싶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북중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세간에 잘 알려진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원칙이 있다. 어떤 현상과 사실에 대한 설명 중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것이라는 원칙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이를 두고 '건전한 추론을 위한 방법론으로서, 단순성의 원칙 또는 논리절약의 원칙으로도 지칭된다고 풀이한다. 즉 동일한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 가운데 가정이 많은 쪽을 피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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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집에서 명멸하던 형광등처럼 작금의 북한과 중국 간의 관계는 바로 '명멸하는 관계'라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순망치한'의 관계, 전통적인 우방 또는 혈맹관계, 또 정상국가와 정상국가간의 관계 등의 관점에서 이해를 도모했다. 일면 맞는 표현이다. 북한이 붕괴해 미국과 직접 마주치게 되는 것은 중국에게 영 불편한 일이다. 중국은 이러한 미래를 방지하기 위해 북한을 전략적인 안전판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역으로 북한은 핵과 중국을 활용해 미국에 대응하고자 한다. 또 한국전쟁에 함께 피를 나누면서 시작된 관계, 그리고 사회주의를 함께 실천했던 우방의 관계 역시 역사적 사실이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와 1990년대 중후반 김일성과 덩샤오핑의 연이은 사망과 시대적 변화는 또 중국과 북한 간 관계를 정상국가간의 관계로 전환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두 국가 간의 관계를 전통적인 관점에만 의존해 판단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고 봐야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과 중국은 깜빡이는 관계인 것인가 설명이 돼야 한다.
한반도가 분단되고 냉전이 고착화됐을 때는 그저 북한과 중국은 우리의 명확한 '적'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북중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동하고 새롭게 재편된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의 개혁개방'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전통적인 사회주의 노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개혁개방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얼마 전 휴가 기간 중국에 여행 갔을 때 어떤 친구가 "나는 마오쩌둥이 좋아요."라고 했다. 순간 이 친구가 정치에 관심이 많구나 했지만 이 역시 나의 오해였다. 그 친구가 얘기한 것은 바로 마오쩌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00위안짜리 지폐였던 것이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시장경제'로 이행하다가 '자본주의'로 변질됐다. 중국사회는 급변했고, 중국인들의 시각도 나날이 변했다. 자본주의화 되고 개방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국인들의 시각에서는 북한은 3대 세습 독재국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특히 2011년 말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그 뒤를 이으면서 중국의 온라인을 중심으로 북한을 희화화하는 여러 표현과 패러디가 유행했다. 라오바이싱(인민)의 대체적인 정서가 이러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국 영도자들도 북한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북한의 연이은 핵개발과 미사일 도발만이 중국인들의 정서를 변화시키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자체의 사회변화와 맞물린 자연스런 조정이었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2017년까지 중국을 한 번도 공식방문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둘째, '한중관계의 시작과 발전'이다. 잘 알려져 있듯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을 당시 북한은 중국에게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했다. 이후 북한은 고난의 행군시기를 겪었고, 미국에 의해 스러져 가는 몇몇 독재자들의 말로를 두 눈으로 분명히 지켜봤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북한의 자각이었다. 핵과 미사일의 개발은 이로부터 기인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적 변화 앞에서 북한의 체제를 보장받기 위해 가장 손쉬운 길이었다. 중국은 한국과 북한 양자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거듭했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 또 중국의 한국에 대한 접점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국을 결코 신뢰해서는 안 된다'라는 표현은 북한 지도부에게 현실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회주의와는 고별하고 이제 두 나라 사이에는 '국가이익'만 남았다. 상호간 국가이익을 위해 서로를 활용하는 것만이 이제 시대적 사명이 된 것이다.
셋째, '미중간의 관계에 의한 구조적 변화'다. 냉전시기 미국은 공동의 적이었다. 하지만 미중수교와 중국의 개혁개방 등으로 인해 미국은 중국의 친구이자 경쟁자로 그 역할이 변모되었다. 아니 사업 지분을 나눠 갖는 비즈니스 관계로 가고 있다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중국이 부상하면서 세계를 움직이는 두 국가 간 관계는 동북아 지역에서 고착화되고 구조화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상실을 우려하고, 중국은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만큼은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지역강국으로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북한의 지나친 도발은 매우 위험하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북한과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비핵화 문제의 급진전으로 미국과 북한이 너무 가까워지는 것 역시 달갑지 않다. 올해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세 차례나 방문하고 북한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북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에는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대목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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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신화망
누가 더 잘 웃나 속에 감춰진 비밀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시대적 변화는 북중 관계를 보다 본질적으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다, 또는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전통적 시각을 버려야 한다. 북중 간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북중 관계는 변화해 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모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2018년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변화가 그야말로 숨 가쁜 일정으로 이어졌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김정은 세 차례 방중, 곧 있을 시진핑의 방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두 번의 만남과 앞으로 세 번째 정상회담도 예상된다. 아울러 트럼프와 김정은의 2차 정상회담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수많은 만남 속에서 그 어떤 결실을 맺어야 한다. '정전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한반도 평화협정 구축'이 의미 없는 만남이 되지 않을 수 있게 할 성과다.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의 기운이 싹틀 때 북중 관계는 더 이상 명멸하지 않을 것이다. 평창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평양에서 발견하게 될 그 날을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 관리사무소 기사님이 휴가를 가신 관계로 안정기 문제는 며칠 더 기다려야 해 형광등 하나로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