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 전망: ‘52년 레짐’의 변화는 가능한가
북미관계는 70여년 만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양국 정상의 만남과 서로 합의문에 서명한 것은 장기간 적대관계로 대립했던 두 나라의 관계 변화의 신호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질서, 소위 ‘52년 레짐’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대단히 크다. 앞으로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분명히 지금의 흐름은 역행하기 쉽지 않은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고 평가된다.
‘52년 레짐’의 변화 예고
한반도 문제의 근원은 우선 ‘52년 레짐’의 지속과 ‘교차승인’의 불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52년 레짐’이란 그간 동아시아를 관리해 온 미국 주도의 관리전략이라 할 수 있는데, 내용의 본질은 태평양전쟁의 패전국 일본의 전후처리를 다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51년)의 발효 시기인 1952년을 따서 명명한 레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실은 일본을 중심에 두고 한국을 최전방에 내세워서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 확산을 방지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기에는 ‘52년 레짐’이 유지되면서 소련 중국 북한의 북방삼각관계와 한미일의 남방삼각관계 대립구도를 유지해왔다. 소련의 해체 이후 냉전이 종결되면서 한국은 러시아(’90), 중국(’92)과 수교를 이루게 되는데, 반면에 북한은 미국, 일본과 수교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갈등 대립 상태를 지속해 왔다. 따라서 이와 같이 불안정한 구조는 한반도 및 동북아 갈등의 기본요인으로 작용해 온 것이다. 공산진영이 붕괴되어 ‘52년 레짐’의 원형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라는 ‘불량국가’(rouge state)로 인해 기존 냉전시기 체제를 이어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및 안정을 위해 추구해 나가야 할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오래된 레짐을 변화하려는 시도가 쉽지만을 않을 것이다. 70년간 유지돼 온 체제를 바꾸는 데는 많은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환영하지만 일본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아시아에서의 적대국가의 소멸은 미국의 아시아전략과 세계 전략의 변화를 가져오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본은 ‘52년 레짐’ 속에서 미국의 우호적 지원을 받아왔다고 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일본과 전쟁을 치뤘거나 피해를 입은 48개국이 참여했지만 일본이 아무런 배상과 보상 없이 전후처리가 완료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조약체결 직후에 일본과 방위동맹을 맺고 주일 미군주둔을 영구화한 것이다. 그런데 북미관계가 정상화된다면 바로 일본에 대한 미국의 특별한 우호적 관계가 종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동북아에서 독도를 비롯한 영토분쟁을 빈번히 제기했던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나, 앞으로는 일본이 독자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북미관계 개선을 가장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국가는 바로 일본 자민당 정권일 것이다.
미국의 입장도 복잡하다. 90년 냉전 해체 이후에 중국 포위 전략으로 변화를 취해왔는데 북한의 위협은 그것을 핑계 삼아 중국을 포위하는 좋은 이유가 되어왔다. 그러나 북미관계 정상화 이후 북한의 변수가 해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북아에서의 미군의 위상이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미국의 공화당과 보수진영은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가장 많이 도입하는 국가이며 이는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때문인데 이러한 구조도 변화하게 된다. 이렇듯 다양한 영역에서 70년간 체질화되었는데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민주당의 입장은 다소 다를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성공이 민주당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관계 개선 전략은 미국 내의 전반적인 반발에 부딪히게 마련인 것 같다.
-
사진출처: 노컷뉴스
트럼프의 ‘변덕’은 국내정치의 소산
미국의 이러한 복잡한 구조가 트럼프의 심한 ‘변덕’으로 나타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5월 북미정상회담 준비가 진행되던 시기에 트럼프대통령은 김정은위원장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70년 만에 북미 정상이 마주한다는 것이 대단한 화제였는데 취소되다니 참으로 세계가 경악할 일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해 유화적으로 대처하고 대화의지를 강하게 표현하였고, 다시 북미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리게 된 것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노력이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취소와 재개가 가져다 준 효과는 없지 않았을 것이다. 취소 서신을 보낼 즈음 미국 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적지 않았는데 취소 서신 이후에는 다시 부정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국면이 되었다. 따라서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데 반대의 목소리를 재개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트럼프의 취소 서신은 결국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데 기여 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의 반트럼프 정서와 북미관계를 반대하는 세력들의 입장은 트럼프대통령의 대북정책 결정과정에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달 23일(현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기자회견 다음날 트럼프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방북을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트윗의 내용을 보면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도록 해두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는 이유를 두 가지 언급했는데 하나는 “우리가(we) 한반도 비핵화에 관해서 충분한 진전을 만들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구에게 어떠한 구체적인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문장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미국과 북한을 지칭할 수도 있고, 미국의 행정부들을 지칭할 수도 있어서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충분한 진전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중국과의 매우 거친 무역 분쟁으로 인해, 중국이 비핵화에 도움을 준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이 비핵화를 방해하고 있다는 확실한 주장도 아니다. ‘믿지 않는 것’은 자신의 판단과 의지의 문제일 수 있으며 중국의 문제라고 꼬집어 말하기도 어렵다. 이쯤 되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더 헛갈린다. 결국 방북을 발표하고 다음날 취소함으로써 방북을 하지 않으면서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게 만들었다. 왜 이랬을까 짐작하기도 쉽지 않다. 우선 국내적으로는 비우호적인 언론의 지면에 방북 취소에 대한 기사로 채울 수 있다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스캔들이 터져 나오면서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적지 않았을텐데, 방북 소식만이 아니라 방북소식 하룻만에 취소 소식이 가중된다면 그 효과는 더 클 것이라는 계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북한 문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아니라 본인이 풀어나가겠다는 표현일 수 있다. 그것도 쉬운 문제에 대통령이 나서는 게 아니라 어려운 문제로 만들고 난 후에 해결사로 등장하는 ‘극적인 무대 세트’를 만든다는 전술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
사진출처: 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국장 트위터
11월 중간선거 앞두고 관계개선 불가피
미국의 중간선거가 두 달여 밖에 남지 않았고 차기 대선도 그리 멀지 않다. 북한도 9.9절 70주년 경축행사가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절반의 시간이 지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의 성과를 내려면 매우 바쁘다. 특히 5개년전략은 3차7개년계획이 수립된 1987년 이후 30년 만에 세워진 계획이며, 과거 김정일 시대에는 단 한번도 세우지 못했던 국가경제발전 계획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
이처럼 북한과 미국은 ‘시간의 이해관계’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처럼 김정은 위원장과는 ‘멋진 케미’(great chemistry)가 있는 것 같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는 트윗 말미에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가장 따뜻한(warmest) 경의와 존경을 보내고 싶다. 곧 만나기를 고대한다”라고 했다. 이 언급처럼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직행하려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결국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미관계의 질적인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것은 ‘52년 레짐’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 전환점은 9월말 유엔총회 직후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인제대 진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