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갈등과 북핵문제
한반도와 주변 강대국의 지정학적 구조
유럽세력이 동아시아에 도래해 지역의 중요한 행위자로 역할을 한 19세기 말 이후로, 한반도 문제가 주변 강대국들의 문제로 비화하거나 그들이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전례가 자주 있었다. 지정학적으로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해양세력(일본, 미국)과 대륙세력(청, 러시아, 소련, 중국)이 독립변수 역할을 하고, 그 중간에 있는 한반도는 종속변수가 되어왔다.
유럽과 미국의 강압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부국강병의 길에 나선 중국(청)과 일본이 자웅을 겨룬 청일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쪽은 청도 일본도 아닌 전쟁터가 되었던 구한국이었다. 20세기 초에는 러시아와 일본이 구한국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광복을 맞은 한반도가 분단과 6·25전쟁을 치르게 된 배후에는 옛 소련과 미국이라는 당시의 양대 초강대국의 갈등과 경쟁이 있었다. 미소냉전이 첨예화되던 시기에는 6.25전쟁을 통해 적국으로서 많은 희생을 치른 미국과 중국이 서로 화해하여 공동으로 소련을 견제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한반도는 이러한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미중화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20세기 말 옛 소련이 사라짐으로써 도래한 세계적 양극체제의 붕괴와 개혁개방으로 괄목할 국력을 보유하게 된 중국이, 미국과 함께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양대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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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알파위키
한중수교 이후 남북한과 미중관계의 변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한 및 미국과 중국의 전에 없는 적극적 노력은 수십 년 동안 이어온 동아시아의 국제관계 구조의 변화를 기대할 만큼 중대한 현상이다. 그동안 대륙세력(소련 및 중국)과 해양세력(미국)의 영향력 아래서 종속변수 역할을 하던 남북한이, 1992년 한중수교를 통하여 구조적 변화를 기하여 독립변수 역할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한중수교에 이어 북미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한반도 냉전구조의 변화는 미완성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중국이 남북한과 모두 수교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키웠지만, 한반도 북쪽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미국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한중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의 무역 및 각종 교류의 확대로, 미국은 한국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로 편입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되었다. 2007년 한미FTA의 타결은, 2002년부터 한중무역 규모가 한미무역을 초월하기 시작하여, 무역이익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이 정치·전략적으로는 중국으로 기울지 않도록 하여 미국으로 재견인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인 동기가 내재해 있었다.
한편, 한국은 중국과 미국 모두와 수교함으로써 양 강대국이 갈등할 때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양자의 관계가 협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는 양자 모두로부터 이익을 확보해 오기도 했다. 반면 북한은 한중(경제)관계가 괄목할 발전을 이루는 동안 소외감을 가져왔다. 옛 소련이 사라짐에 따라, 중국과 소련의 경쟁 관계를 이용해 국익을 확보했던 1960년대식 등거리 외교를 할 상황도 이미 아니다.
북미화해시대의 동아시아 국제관계 구조: 북미엔 이익, 한중엔 상대적 박탈감
최근의 남북 및 북미간 대화의 물꼬가 북미수교로까지 이어진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구조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미중과 모두 수교함으로써 양국으로부터 이익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던 한국처럼, 북한도 중국과 미국 모두로부터 국익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도, 남북 모두와 수교한 중국처럼 한반도 남쪽에만 미치던 영향력을 북쪽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된다. 중국 이외에는 마땅히 의지할 대상이 없었던 북한으로서는 전략적으로 매우 이익이 되겠지만, 그동안 미중과 남북한으로부터 전략적 이익을 누려왔던 한국과 중국으로서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각오해야 하는 구조이다. 지금까지 북한과 미국이 겪었던 것처럼, 한국은 북한과 우호적인 미국을 지켜봐야 하고, 중국은 미국과 우호적인 북한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도 냉전구조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바야흐로 행위자들이 오직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여 행위 하는 정상적인 국제관계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변화를 한국은 북한과의 교류확대와 경제협력 증진을 통해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에서 미국과 갈등을 피할 수 없는 중국으로서는, 이러한 구조의 변화로부터 오는 전략적 박탈감을 완충할 방법이 상대적으로 없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표면상 동의하면서도 내면적으로 최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발생하지 않도록 중국은 노력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미국과 수교해도, 궁극적으로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이 한국 및 미국과 맺는 모든 관계에 중국도 당사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중국이 배제된 어떠한 남북한 및 미국의 관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결국, 최근 북핵과 미사일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 및 북미간의 관계개선과 긴박한 과정 및 그 귀추는 중국이 어떻게 행위하는지 여하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4.27남북정상회담과 6.12북미정상회담 이후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았지만, 동아시아 각 행위자의 행보는 이전과 비교하여 몇 배의 활발함을 보였다. 특히 핵문제는 북미간의 관계이고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미국의 기대와 달리 그리 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해 오던 중국의 행태가 매우 달라졌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행위당사자임을 중국지도부는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최고지도자 집권 7년동안 이루어지지 못하던 북중정상회담도 불과 3개월 만에 3차례나 이루어졌다. 미국과 힘겨운 핵(포기)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경쟁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한 북한의 계산도 작용했겠지만, 북한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 계속 견고하게 묶어두고자 하는 중국의 계산이 더욱 컸다고 필자는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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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blog.daum.net/koreananjs/8413690
북핵이 폐기되었다고 선언하는 정치적 폐기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문제는 결국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를 둘러싼 영향력의 구조적 변화에 대한 전략적 경쟁에 크게 영향받게 된다. 핵과 미사일 자체의 폐기보다도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타협이 한반도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느냐가 주요한 독립변수라는 것이다. 완전히 폐기했다는 사실을 검증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이지만,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인력이 존재하는 한 이미 가지고 있는 핵과 미사일을 완전히 폐기한다고 해도 필요할 때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북한의 핵 전문인력을 미국으로 이주시키는 문제까지 나오는 것이다. 결국, 핵과 미사일을 실질적으로 폐기하는 기술적 폐기보다, 폐기했다고 인정(선언)하는 정치적 폐기를 통해 북핵폐기 문제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중국에게는 폐기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그것이 미중의 글로벌 전략경쟁에 어떤 구조적 영향을 미치느냐가 더욱 큰 관심사이다. 종전선언이나 주한미군에 관련하여 중국과 미국이 민감하게 인식하는 것은, 이것들이 한반도에서의 양국의 입지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중의 전략적 경쟁에서도 주요한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에 관하여는 이미 김일성 시대부터 한반도에서 역할이 있음을 북한이 인정해 오기도 했다. 최근의 대화국면에서도 주한미군에 관한 사안은 북한이 융통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임에 반해, 오히려 중국이 더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중국이 참여하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중국이 배제된 체, 북한이 미국과 관계하는 어떤 상황도 불안한 것이다.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및 한국과 중대사안을 논의하고자 시도한 북한의 전례가 있기에 북한을 경계하는 것도 사실이며, 같은 이유로 4.27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 측이 중국 없이 남북미 3자간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공표한 것에서 불안감이 증폭되었을 것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 면에서, 무엇을 중국이 민감해하는지에 대한 한국정부의 이해가 다소 부족했지 않나 필자는 우려한다. 북미교섭이 진전됨에 따라 자연히 나올 수 있는 중국이 민감해하는 문제를, 굳이 한국정부가 나서서 공표한 것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군의 요구와 비용으로 미군이 운용하기 위해 배치하는 사드(Thaad)시스템을, 마치 한국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들여 운용하기 위해 들여오는 것처럼 주권의 문제라고 목소리 높임으로써, 무역보복 구실만 중국에게 제공했던 2016년의 투박한 외교의 데자뷔이다.
북핵해결 보다 더 큰 중국과 미국의 관심
북한의 핵과 미사일 포기여부가 중국의 큰 관심사임은 분명하다. 불신과 갈등을 극복하고 남북한이 평화와 협력으로 나아가서 궁극적 통일을 이룰지가 관심사임에는 분명하다. 중국의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한반도가 안정을 유지하는 것 또한 큰 관심사이다. 그러나 더욱 큰 우선순위를 두고 민감하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미국을 극복하고 ‘중국몽’을 실현하는데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내고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은 중국몽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하다. 최소한 현상유지라도 중국은 바랄 것이다. 2만 2000여km의 국경선에 이웃하는 14개 국가 중에 한반도가 특히 중요한 것은, 수도 북경과 매우 인접한 지역일 뿐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의 충돌이 매우 자주 발생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미중간의 힘의 접점이 만나는 곳이 한반도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2017년 마라라고 미중정상회담에서부터 트럼프는 치밀한 계산을 하고 시진핑을 몰아붙였다. 북핵문제해결을 위해 중국의 더 큰 역할을 요구하면서, 어르고 협박하면서 중국이 전에 없이 적극적으로 대북제재에 동참하게 견인했다. 김정은 정권의 붕괴를 우려하는 중국의 대북제재가 한계가 있음을 알면서도, 무역전쟁을 무기로 중국을 압박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중국과 소원해지도록 만든것 같다. 중국이 하지 못하면, 미국이 직접 북한을 다루겠다고도 했다. 결국 미국은 직접 북한과 접촉하여 최초의 정상회담을 하였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적극성을 띠는 동안 유보되는 듯했던 무역전쟁은 지금 거의 전면전 양상으로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애시당초 미국의 가장 큰 관심은 북핵해결 자체보다 그것을 활용해 중국을 길들이고 견제하는 데 있었다.
결국 미중무역전쟁은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의지와 능력이 없어졌다고 미국이 판단하는 때에 종결될 것이다. 실제 폐기 여부와는 별개로, 북핵이 폐기되었다고 미국(국제사회)이 선언하는 정치적 핵폐기에 의해 마무리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도 한국 못지않은 미국의 우방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ICBM 없는 북한 핵을 미국보다는 중국이 더 우려할 수 있다. 남북한 모두와 수교함으로 한반도 전체에 영향력을 확보한 중국처럼 미국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인식과 전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처방이 나와야 할 것이다.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ㅣ 아시아개발연구소 소장 김태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