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중국은? 중국에게 우리는?중국과 한국의 “관심 비대칭”에 대한 단상
작년 연말,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과정에서 중국 측 경호인력이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려는 한국 사진기자들을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은 중국 현지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들의 적잖은 공분을 샀다. 해당 사건을 보도한 기사 링크를 공유한 것을 시작으로 내가 다니는 학교의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제법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다수의 유학생들은 비분강개한어조로 해당 사건을 묵과하지 말 것이며 정부 차원에서 항의하여 국가의 자존심을 세워야 한다는의견을 피력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관민(官民)이 유별한 중국의 분위기를 미리 학습하지 못한 한국기자들의 부주의와 과도한 취재열에 대해 지적했다. 중국의 경호인력이 해외 취재진을 무력으로 제압한 경우는한국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대국이 소국을 모욕했다는 식으로 비화해 국가 간 불화를 부추길 필요는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가진 이는 어디까지나 소수였고 그 후며칠간 단체대화방에서는 "중국은 후진국이다", "영원히 세계 패권국이 못될 것이다"와 같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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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국경제
논점을 이탈한 원색적인 비하와 비난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소수의견"이었던 나로서는 중국 현지에서 공부하면서 훗날 이 경험을 가지고 중국전문가를 자처할 이들이포털 사이트의 네티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데 조금은 실망했다. 중국에서 유학한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제대로 중국을 읽는 지중(知中) 인재풀이 형성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겠구나 하는 주제넘은 걱정도 들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또 다른 "소수의견"에 눈길이 갔다. 논쟁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었지만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비즈니스 현장에서 체감한 한중관계는 중국이 한국에 불합리한 것을 요구하거나 직접 모욕감을 주는 일보다 오히려 한국이라는 시장을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 무관심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억울한 일을 겪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중국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와 싸우지 못하게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경험에 근거한 솔직한 견해였기에 더욱 인상 깊었다. 이 또 다른 "소수의견"은 내가 유학생활 중 판판이 마주치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던 "중국에게 한국이란 무엇일까"하는 문제를 새삼 직시하게 하였다. 현재 중국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고 있다. 이제는 딱히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 얻은 몇 가지 데이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중국은?"이라는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답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중국의 주요 대학 안팎을 가득 채운 한국 유학생의 규모 또한 그 붐업(boom up)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중국 현지에서 공부하면서 이것과 비례할 만한, 한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을 느껴본 일이 없다. 이러한 "관심 비대칭"은 많은 한국 유학생들을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럴수록 더 중국 연구의 중요성에 천착하면서 중국인보다 더 중국을 잘 아는 "타자(他者)" 연구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중국에게 우리는?"이라는 물음은 내가 답할 수 없는 문제로 여기며 외면했다. 그러던 중 위에서 서술한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소위 중국전문가라면 "중국에게 우리는?"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가 그토록 파고드는 대상에게 우리가 누군지조차 각인시키지 못한다면 이 일방향이쌍방향으로 전환되기는 더 요원하겠다는 생각마저 들고 나니 뭔가 아득했다. 연구자라면 중국과 한국의 "관심 비대칭"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마땅히 그 원인이나 현상에 대해 자신의 시각을 개진할 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일었다. 그래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과 한국의 "관심 비대칭" 문제를 조명함으로써 그간의 안일함을 조금이나마 만회하고자한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일천한 이해를 드러내는 몇 가지 키워드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한류(韩流)다. 한류는 이제 한국의 특정 문화산업의 흥행만을 일컫는 것이 아닌, 한국의 문화적역량에 대한 총칭이 됐다. 혹자는 중국에서 한국을 수식하는 키워드로 한류를 꼽은 것을 식상하다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에 대해 갖는 관심의 향방, 한국의 ‘존재감’을 느끼는 영역은여전히 문화, 한류에 있다. 한류는 중국이 한국을 인식하는 채널인 동시에 한국이 중국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이기도 하다. 내가 열심히 한국 아이돌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려 애쓰는 것도 모두 90년대생(90後), 2000년대생(00後) 중국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여전히’ 한류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중국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이 문화에 국한되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더구나 이제는 한류의 성과를 마냥 자긍하기에도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 중국의 캐치업(catch up)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기 때문이다. 카피캣(copycat)이라는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방전략은 중국의 IT산업 뿐 아니라 문화 영역 곳곳에서도 진행 중이다. 올 해 인기리에 방영한 “이것이 스트릿 댄스다(這就是街舞)”, “날 놓아줘 Baby(放開我北鼻)”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만 보아도 한국에서 범람하는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의 육아 포맷을 모방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모방 여부가 아니라 중국이 이러한 규모와 퀄리티의 프로그램을 공급, 소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는 데 있다. 한 때 중국 방송의 매력으로도 여겨졌던,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고 2% 부족한 모습도 찾아볼 수 없어졌다. 다시 말해 중국이 한류에 아직도(?) 열광하는 것을 감사해야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 때는 벌써 성큼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한국 유학생들이 나름대로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한류에 대해, 중국인들이 “또 한류냐”, “이제 중국 연예인도 돈 잘 번다”와 같은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심심찮게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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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바이두
둘째는 북한이다. 중국인들이 북한과 한국을 연계해 사고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한국 자체를토론 혹은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드물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중국에서 수학하면서 중국이 한국이라는 국가의 연구가치를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만큼 한국에 대한 지적 흥미와 관심이 현저히 낮은 편이다. 이것은 유학생이기 때문에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유학생의 경우 종종 개인의 퍼스널리티가 아닌 국적으로 인식, 규정되고는 한다. 그럴 때면 자의와는 상관없이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비교정치 수업에서 다양한 토론을 진행할 때 교수자의 지목에 따라 특정 국가의 학생이 발언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한국인 유학생의 경우 스스로 나서 발언하지 않는 한 한국의 입장, 한국인의 생각을 묻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한국인 유학생에게도 관심이 집중될 때가 있다. 바로 북한 관련 문제가 화두에 올랐을 때다. 그러나 그마저도 한국인들은 통일을 원하는가,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같은 호기심 어린질문에 그칠 때가 많다. 북핵 문제 해결을 비롯한 동북아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한국의 비전이나 역할을 묻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제시되었던 ‘동북아중심국가론’, ‘동북아균형자론’은 당시 언론과 학계의 무수한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은 한국이 중미간, 중일간 균형을 이끌 수 있는 실질적인 영향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1) 나는 동북아균형자가 한국이 장기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경험을 할 때마다 우리는 아직까지 학술토론에서조차 합당한 이니셔티브를 갖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해서 씁쓸했던 적이 많다. 어떤 의미로 유일하게 한국의 의견이 요구되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조차 그 적절한 위상을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통감한 것이다.
세 번째는 기독교다. 나는 비단 학술토론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인 친구와 대화할 때도 중국이자신과 동아시아 주변국을 원류와 지류의 관계로 파악하려는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중화주의라는 프레임으로 재단하기에는 보다 복잡하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내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르고 있다. 나의 개인적 관찰에 따르면 중국은 자신과 주변국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어떠한 부분에서 이어지고 달라지는가에 주목한다. 자신과 주변국의 일맥상통을 확인함으로써 문화적 자신감을 확보한다. 이러한 문화적 자신감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주변국에 대한 동질감, 유대감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반면 주변국에게서 자신과 다른 경험을 발견했을 때는 이를 한없이신비하고 특수한 현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은 이러한 중국의 “내부” 오리엔탈리즘적 태도가 드러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지도교수의 문하생들이 모이는 내부 토론회에서 한 선배가 “한국 기독교의 정치적 영향력 연구”를 주제로 한 연구계획서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중국, 일본과 달리) 왜 유독 한국만 기독교가 강세를 보이는가?”를 주요 문제로 한 그 프로포절은 어떻게 봐도 정치학적 의문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고, 해당 문제만 가지고서는 어떤 정치학적 의의도 찾기 어렵겠다 싶던 차에 지도교수가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나에게 비평을 부탁했다. 일단 한국에 관심을 보여준 데에 고마움을 표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가 제시한 문제는 학위논문의 주제로 삼기엔 너무 간단한 것 같다. 내가 아는 대로만 답해보자면 중국과 일본의 경우 도교, 신도와 같은 전통 민간신앙이 현재까지 활발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내선일체정책의 일환인 신사참배운동으로 인해 민간신앙의 명맥이 끊겼다. 해방 이후 그 공백을 파고든 것이 기독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민간에서 세를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을 꼽아보자면 국가가 마땅히 제공해야 할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당시 상황에서 빈민구제 등 사회서비스 기능을 제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기독교가 주요 종교로 자리잡게 된 역사적 배경을 이같이 이해한다. 또 단순히 교세만을 근거로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가 특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말하면서도 천변만화하는 선배의 안색을 보며 사뭇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선배는 지도교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해당 주제를 고집해 예비심사에 임했다가 재심사 통보를 받았다. 위의 일화가 아니더라도 “왜 한국에는 기독교도가 그리도 많은가?” 와 같은 의문은 북한 문제와 더불어 한국인 유학생이 가장 자주 맞닥뜨리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위의 일화에서처럼 나름대로 대답한 뒤 “한국의 역사적 경험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알 수있는 문제”라는 말을 꼭 덧붙인다. 이 말 한마디가 단지 중국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주목하고 이를 신비한 현상으로 치부하는 “내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경계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일찍이 백영서 선생은 “중국에 ‘아시아’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한 바 있다.2) 중국이 적극적으로 파악하려는 외국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구미에 한정되어 있고 가장 가까운 주변국인 동아시아에 대한 수평적 관심이 미미한 것에 대한 지적이다. 학문의 장에서 이러한 “관심 비대칭”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학계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일조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의문을 부단히 투여해 “중국에게 우리는?”이라는 문제를 인식, 환기시키는 데 그 역할이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지적 노력이 보다 폭넓은 지중(知中) 의지로 연결되고 그것이 중국으로 하여금지한(知韩)의 필요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지식을 넘은 지혜가 요구되는 때다.
푸단대复旦大 정치학과 박사과정 김미래
- 1) 여기에 대해서는 강천석, 「동북아 균형자론의 꿈과 현실」, 『조선일보』(2005. 4. 16), 권용립, 「동북아 콤플렉스의 그림자」 『한겨레신문』 (2005. 6. 14), 박영준, 「“동북아균형자론”과 21세기 한국외교」, 『한국정치외교사논총』 제28집 1호(2006) 등을 참고.
- 2) 백영서, 『동아시아의 귀환』(창비, 2000), 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