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중국 정치사회 전망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7년 가을 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 이데올로기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천명했다. 새로운 시대의 주요 모순을 “날로 증대하는 인민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수요와 불균등하고 불충분한 발전 간의 모순”으로 규정하고 전면적인 발전을 통해 민생에 신경쓰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중국이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이며, 마르크스주의를 계승, 발전시켜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과연 현재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내세우고 있는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베이징의 마르크스
정호승 시인은 1980년대 한국의 엄혹한 군부독재 시절, 「서울의 예수」라는 한 서정시에서 “들풀들이 날마다 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 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 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울고 있다”고 썼다. 그 시절 정권의 가혹한 탄압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당국에 잡혀가서 고초를 겪었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시인은 그 시절의 풍경을 이 땅에 내려온 예수의 목소리를 빌려 “가난한 자의 별들을 바라보지 않았나니, 내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자들은 불행하고, 내 이름을 간절히 사랑하는 자들은 더욱 불행하다”고 통탄했다.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는 이 겨울, 중국 베이징에서도 적지 않은 이들이 당국에 잡혀가 고초를 겪고 있다. 바로 제이식(Jasic Technology, 佳士科技股份有限公司)이라는 기업에서 비인간적인 처우에 저항해 노조를 설립하려했던 노동자들과 이에 연대에 나섰던 중국 각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의 학생들이다. 이미 국내외의 많은 언론을 통해서도 알려진 사건이지만, 간단하게 사건의 추이를 짚어보자.
2018년 여름, 선전의 주식시장에 상장된 용접기계를 만드는 기업인 제이식에서는 노동자들에게 화장실에 가는 것도 통제하고 휴식 시간에 강제로 구보를 시키는 등의 비인간적인 처우가 이어졌다. 이에 노동자들은 항의하기 시작했고 지역 당국에 사측을 고발하는 등 저항을 이어나갔지만, 이들의 항의는 무시되었으며 이 움직임을 주도한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사측에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SNS 등을 타고 조금씩 알려지자 베이징대, 난징대, 인민대 등 여러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들이 ‘노동자투쟁지원단’을 구성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연대 활동에 나섰다.
상황은 이후에 더 심각해졌다. 자신의 노조를 조직해 정당한 권리를 되찾으려했던 제이식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노학연대 활동에 나섰던 대학생들이 당국에 구금되기 시작했다. 각 대학 당국은 가을 개강과 더불어 기존 마르크스주의 동아리들의 활동을 금지하고 동아리 등록을 취소하는 동시에 어용 동아리까지 만들기도 했다.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은 계속해서 잡혀가 실종된 인원수가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40여 명에 이르렀다. (지금도 계속해서 구금된 인원수는 늘어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권익은 무시되고 이에 연대하는 사회주의의 신념을 가진 대학생들을 탄압하는 모순적이고 환멸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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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제이식 노동자들과 연대활동에 나선 대학생들, Support the Jasic Worker of China 페이스북 페이지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와 마르크스
시진핑 주석이 2018년 12월 18일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기념사를 살펴보면, 마오쩌둥이 5회, 덩샤오핑이 7회 언급된 반면, 마르크스는 12회나 언급되었다. 최근 몇 년 간 공산당의 공식 기관지인 인민일보에서 마르크스주의라는 단어가 출현한 빈도수를 살펴보면, 2013년에서 201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평균적으로 580여 회였다면, 2016년에는 827회, 2017년에는 956회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 공산당원은 마르크스주의의 충성스러운 신봉자이자 확고한 실천자가 되어 마르크스주의를 고수하고 발전시키는데 악착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관영 CCTV에서는 “마르크스는 옳다”는 교양 프로그램을 연일 방영하기도 했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청년시절을 다룬 애니메이션까지 준비했다. 심지어 마르크스의 고향인 독일 트리어 시에 높이 4미터에 달하는 청동상을 선물하기도 했는데, 이는 중국 공산당이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념사와 프로그램에는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서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에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의 내용은 전부 사라지고 공산당의 일당 통치에 대한 강조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야말로 위대하고 과학적인 사상이라는 내용만 앵무새처럼 반복될 뿐이었다. 시진핑 사상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노동계급의 해방’이라는 원대한 사회주의의 이상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공산당의 영도’라고 못박았다.
마르크스(‘馬’克思)인가? 록르크스(‘鹿’克思)인가?
이렇듯 사회주의없는 사회주의, 마르크스없는 마르크스주의를 풍자하여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온 말이 ‘록르크스주의’다. 마르크스의 중국어 표현이 ‘馬’克思라는 것을 이용해 지금 상황이 사슴을 말이라고 했던, 즉 남을 속이려고 진실과 거짓을 바꿔치기한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빗대어 풍자하는 표현이다.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조직하려 했던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동시에 어용노조를 만들고, 사회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지원하던 각 대학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는 폐쇄하고 어용 동아리를 만들어버린 중국의 아이러니한 현실은 이런 풍자를 불러오고 있다. 즉, 인민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국가정체성을 의심하고 다시 질문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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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을 저버린 중국 공산당을 풍자하는 인터넷 풍자
제이식 노동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 동아리 학생들은 흔히 서구 언론에서 묘사하듯 반체제 인사들이 아니었다. 이들은 중국 공산당과 혁명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사회주의 국가가 노동자들을 탄압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에 나선 것 뿐이었다. 학생들이 읽고 토론한 것은 바로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를 통해 배워왔던 마르크스, 마오쩌둥, 루쉰이었다. 그렇기에 이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본질적 성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기에 중국 당국이 이런 움직임에 계속해서 강력한 탄압으로만 대응한다면, 점차 단순한 풍자를 넘어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비록 아직까지는 너무나 미미한 움직임이고 소수에 그치고 있지만 말이다. 이들이 읽고 실천했던 루쉰은 「외침(呐喊)」서문에서 20세기 초반 중국의 엄혹한 현실을 철로 된 방에 비유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가령 말일세, 창문도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는 철(鐵)로 된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네. 머잖아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 그러나 잠든 상태에서 죽어가니까 죽음의 비애는 느끼지 않을 걸세.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질러 비교적 깨어 있는 몇 사람을 일으켜, 이 불행한 소수들에게 구제할 길 없는 임종의 고통을 겪게 한다면 도리어 그들에게 미안한 일 아닐까?"
"그러나 몇 사람이라도 일어난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중국이라는 철로 된 방에서 몇 사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비록 아직은 깊은 절망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하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