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홍콩에서 “홍콩범죄인인도법”에 대하여 반대 시위가 격렬하게 일어났고, 결국 그 법안은 유보되었다.(법안을 철회나 폐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향후 어떠한 가능성도 열려있다) 이는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래 가장 격렬한 반중시위였다. 물론 이미 2013년부터 홍콩에서는 “센트럴점령운동(佔中運動)”이라는 홍콩의 자치에 대한 중국의 간섭에 대하여 반발하는 군중운동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소위 말하는 우산 혁명이라고 불리는 홍콩의 대표적 반중시위다. 이번 시위의 발단은 해외의 홍콩이 범죄자를 중국으로 송환할 수 있는 법안으로, 홍콩 사람들은 이것이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법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하여 이에 대한 반대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 법안은 시위를 가져온 도화선에 불과하고, 앞서 말한 우산혁명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위에서 홍콩인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과연 중국이 말한 일국양제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중국은 홍콩에게 일국양제를 실시한다고 하였고 이것은 50년 동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일국양제란, 홍콩의 사회경제제도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중국과는 차이가 있어, 중국에 반환을 하더라도 50년 동안은 기존의 사회경제체제를 유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일국양제와 함께, 고도의 자치, 홍콩인에 의한 홍콩통치를 보장한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 홍콩인들은 중국이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2014년 발표한 홍콩백서(일국양제백서)에서 중국은, 고도의 자치는 중국이 중국의 헌법안에서 허용한 자치일 뿐이라고 범위를 명백히 제한하였고, 홍콩인에 의한 홍콩통치도 애국하는 홍콩인이라는 제한을 두어서, 결국은 중국이 원하는 홍콩인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이미 중국의 일국양제에 의심을 갖고 있던 홍콩인들에게 그 의심을 더욱 확인시켜주는 것이 되었고, 우산혁명에 기름을 붓게 되었다. 상술했듯이 지난 6월의 시위도 우산혁명의 연속이고 이는 곧 일국양제에 대한 홍콩인들의 의심의 표출인 것이다.
사실 이 “일국양제”는 덩샤오핑이 홍콩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제시한 모델이지만 그 최종 목표는 대만과의 통일이다. 중국은 홍콩에서의 일국양제 실험을 통하여 대만과의 통합모델로 승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콩에서 이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나자 대만 일각에서는 벌써 홍콩의 현재는 대만의 미래라고 하면서 중국의 일국양제를 반대하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홍콩의 반환은 홍콩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루어졌고, 일국양제도 홍콩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주어졌다. 하지만 대만의 경우와는 다르다. 일단, 대만은 홍콩과 같은 식민지가 아니라 사실상의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는 정치체이다. 대만인들에게는 일국양제는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대체적으로 일국양제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중국이 일국양제를 처음 제시했을 때 당시 대만의 총통이었던 쟝징궈(蔣經國)은 일국양제는 거짓이라고 단칼에 거절하였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80%에 달하는 대만 민중들이 일국양제를 반대한다고 한다. 대만인 대부분이 중국의 일국양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일단 하나의 중국의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여론조사에서 대만사람들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물론 상당히 회색지대가 있긴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당히 소수이다. 일국양제에 대한 대만인의 인식이 좋지 않은 현 시점에서 홍콩에서 일어난 일련의 일국양제 반대시위는 대만인의 일국양제에 대한 인식 악화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게다가 1년 뒤에 있을 대만 총통선거는 이러한 상황에 정치라는 촉매제를 부어 대만 내 일국양제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대만은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평화적으로 이행해온 민주주의의 모범국가이다. 하지만 대만이 처한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하여 민주화와 함께 정체성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고, 모든 정쟁이 결국은 정체성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넘어온 이후로 중국의 정통을 주장하며 중국전통문화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지만, 권위주의체제를 유지함으로써 민주화 이후에 그 정통성이 박약해졌다.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민주진보당은, 대만독립의 추구를 당 헌장에 명시하면서 중국인으로서보다는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대만은 이 두 정체성이 충돌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매번 선거마다 이 두 정체성은 항상 충돌하여왔다.
2016년 집권한 차이잉원은 국회마저도 민주진보당이 과반을 확보함으로서 대만정체성으로 향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왔다. 하지만 작년에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오히려 국민당에게 참패를 당하면서 민주진보당과 차이잉원은 커다란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의 기세를 몰아 그해 말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민진당은 2016년 순조롭게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작년말 지방선거에서는 민생문제가 선거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참패를 하였다. 특히 국민당이 20년 동안 정권을 잡지 못했던 대만 제2의 도시 까오슝(高雄)에서 한궈위(韓國瑜)가 당선되었고 한궈위는 일약 국민당의 최대 정치스타로 떠올랐다. 게다가 이번 패배로 민진당내에서도 차이잉원을 압박하였다. 올해 1월에 4명의 민진당 원로들이 연합성명을 내어, 차이잉원은 민진당을 위하여 차기 총통선거에 출마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미중무역분쟁이 일어나고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대만을 사용하면서 차이잉원의 인기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홍콩에서의 시위는 차이잉원의 인기 회복의 안정제가 되었다. 그 결과, 6월19일, 차이잉원은 내년에 있을 대만 총통선거의 민진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국민당과 무소속으로 차기 후보로 알려저있는 커원저(柯文哲)현 타이베이 시장은 홍콩의 시위가 못내 아쉽거나 껄끄러웠을 것이다. 특히, 무소속으로서 타이베이시장의 연임에 성공한 커원저는 차기 후보로 손꼽히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홍콩시위 이후 커원저의 지지도는 약 5%정도 하락했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커원저의 지지층은 민진당의 지지층에 더 가깝기 때문에 차이잉원의 상승은 커원저의 하락을 가져왔다. 국민당 입장에서는 중국이 말하는 일국양제는 반대하지만 ‘하나의 중국’원칙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92합의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홍콩 시위를 대만의 독립으로 연결시키는 민진당의 프레임에 휘말리면서 작년 말의 지방선거에서의 상승세가 점차 꺾이게 되었다. 국민당은 아이폰 생산업체인 폭스콘으로 유명한 홍하이그룹의 꿔타이밍(郭台銘)을 내세워 대만의 트럼프라는 이미지로 라이징 스타인 한궈위와의 경쟁을 통하여 커다란 흥행을 노렸으나, 국제정세의 급변과 홍콩시위사태로 있하여 흥행의 가치가 많이 하락하였다. 어쨌든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17일에 국민당중앙상무위원회에서 한궈위를 차기 총통후보로 선출하였고 28일 전당대회를 통과하여 정식으로 국민당의 총통후보가 되었다.
차기 대만총통은 현재로서는 현 총통 차이잉원과 국민당의 한궈위가 확정되었고, 커원저가 잠재적 후보로서 거론되고 있다. 어떠한 대진표가 되었던 민진당은 이번에도 대만의 정체성에 선거 전략의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중충돌에서의 어부지리와, 홍콩 사태는 민진당으로서는 상당한 호재이다. ‘홍콩의 현재는 대만의 미래’라는 프레임은 대만사람들에게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각인시켜주는 것이고 여기에 미국이라는 든든한 후원자의 존재는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지켜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미 국민당의 총통후보 여론조사에 중국이 개입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고, 대만 총통선거의 “중국요인”은 벌써 발효중이다.
현재로서는 여러 가지 여론조사에서 차이잉원이 조금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대만선거의 특징중의 하나는 상당히 큰 이슈의 휘발성이다. 어떠한 이슈던지 더 큰 이슈가 있으면 금방 새 이슈로 덮어진다. 작년 이맘때 쯤 한궈위가 까오슝 시장에 당선될 가능성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하였다. 하지만 한궈위가 가져온 한류(韓流)는 모든 풍파를 누르고 성공하였다. 앞으로도 어떤 이슈가 정세에 영향을 미칠지는 예측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홍콩의 현재가 대만의 미래”라는 프레임이 존재하는 한 홍콩의 상황은 어떤 형태로든 대만의 정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미중무역충돌의 추이, 대만의 경제상황, 한궈위의 한류의 지속성 등이 어떠한 형태로 작용하게 될지도 미지수이다. 또, 최근에 불거진 한일간의 무역마찰이 대만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그것도 대만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 보다 인구가 반밖에 안되고, 면적도 남한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라, 하지만 역사의 굴곡과 정치적 동태성은 그 누구보다도 활발한 나라 대만, 내년 1월 총통선거의 결과는 국내외 정세의 반영이기도 하겠지만 향후 국제정세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