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은 지난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일상적인 음식이었다. 누구든 짜장면과 관련된 스토리 하나 정도는 거론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와 매우 가까운 음식이다.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중국인들에게 의해 전해진 이 ‘작장면’이 한국에서 자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저렴한 밀가루 공급이 이뤄졌고 화교탄압정책으로 인한 중국음식점의 대량 개업과 캐러멜이 첨가되면서 한국화 된 짜장소스가 우리 생활 속에서 짜장면을 살아 숨 쉬게 만들었다. 짜장면은 한반도에서 중화제국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자 단절의 상징으로 꼽을 수 있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한반도, 특히 한국에서 중국이 가졌던 오랜 영향력은 하드파워부터 상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냉전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양국은 소프트파워 마저 상실하면서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아마 양 국가의 어느 누구도 양국관계가 이렇게 변화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20여 년은 중국과 한국은 적어도 네 세대 이상 단절되었다. 아마 양국 국민들의 첫 세대 정도는 청나라가 조선에 가지고 있던 권력(현대적인 관점의 하드파워)이 사라졌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세대는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신음하느라 아무런 정신이 없었던 것이 비참한 현실이었다. 마지막 네 번째 세대는 냉전의 대립 속에서 서로를 인식할 틈조차 없게 되면서 소프트파워도 상실했다. 마지막에는 한반도에 살던 사람이 스스로 인정했던 중국의 권위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일제의 항복과 더불어 한국에 진출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조선 사람에게 미국은 그저 서방국가의 피부색이 다른 신기한 인종이었을 따름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하드파워는 초콜릿으로부터 시작됐다. 전쟁의 상처와 가난 속에서 신음하던 한국인들은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던 초콜릿과 식량으로부터 미국의 하드파워를 인지하게 됐다. 이후에는 미국의 대중음악과 할리우드 영화 등을 통해 소프트파워를 전파 당했다(?). 그러나 미국의 권위는 미국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한국과 한국인이 만들어냈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모두가 절정기에 접어들면서 스스로 미국이라는 권위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국제정치에서는 흔히 A국가가 B국가에 가지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정도가 바로 그 나라의 패권을 상징하는 지표라고 말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가장 마지막에 오는 것은 언어와 문화패권이라 생각한다. 그 나라의 ‘언어’가 타 국가의 생활 속에서 상용화되고, 문화가 한 국가의 국민들을 지배할 때 패권은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은 짜장면이라는 유산을 통해 한반도에 단절을 남겼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단절됐던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대학가에서는 중국어와 관련된 학과가 많이 신설됐고, 보잘 것 없던 중국어 교재의 숫자도 대폭 증가했다. 또 타이완으로 유학을 가는 사람은 매우 적어지고, 대륙으로 유학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중국의 음식 또한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산물이 바로 ‘양꼬치’와 ‘칭다오맥주’이다. 수년 전 한 희극인 정상훈이 ‘양꼬치엔칭다오’라는 말을 유행시키고 이와 관련한 TV광고까지 출연한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동영상출처: 2018칭따오 스페셜 에디션 복맥무비/유튜브
1903년 한 독일인과 영국인에 의해 칭다오에 설립된 것이 칭다오맥주다. 반식민지 시기 열강들에 의해 만들어진 맥주공장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세계로 다시 나아가고 있다. 그 특유의 풍미와 상쾌한 맛, 그리고 발음하고 외우기 쉬운 명칭으로 한국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2000년대 양꼬치에는 칭다오맥주를 마셔야지 하는 선입견을 먼저 만들어낸 이후 칭다오맥주는 중국맥주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됐다. 이에 따라 칭다오맥주는 한국시장에서 3년 전부터 일본의 아사히, 네덜란드의 하이네캔 등을 제치고 수입맥주 시장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 동영상의 조회 수는 250만회를 넘기면서 중독성 있는 광고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중국유학을 경험한 이들에 의해 중국의 하얼빈맥주와 쉐화맥주도 한국시장에 연이어 진입하면서 중국맥주의 한국시장 저변은 점차 넓어질 전망이다. 특히나 폭염이 시작된 요즘 각 가정에서 칭다오맥주를 친근하게 마시면서 소비한다는 것은 향후 한중관계가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문화적 조짐으로 읽을 수 있다.
한편 수년 전부터 조짐은 있었지만,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올해 열풍이 불기 시작한 ‘마라’ 역시 대륙에서 건너온 음식문화의 산물이다. 혀가 마비될 정도로 맵고 얼얼한 맛을 의미하는 ‘마라(麻辣)’는 매운 것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정서와 잘 맞아 떨어졌다. 물론 현재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마라’의 맛은 쓰촨 정통의 맛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한국시장에 진입하면서 판매자들이 그 마라의 정도를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불고 있는 마라 열풍은 세 가지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점심이나 저녁식사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마라탕을 대표로 한 ‘외식업’의 대폭 증가이다. 이는 중국에서 한국인유학생들이 즐겨먹던 대표적인 음식이기도 했다. 따라서 마라탕의 한국 상륙은 시기의 문제였지, 결코 우연히 온 것은 아니라 볼 수 있다. 현재 강남역 상권에 마라탕 전문점이 18곳이 영업을 하고 있고 전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도심지역에 그 체인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라화쿵푸’, ‘라메이즈’, ‘탕화쿵푸’, ‘라공방’ 등 그 체인 역시 다양해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마라탕과 더불어 외식업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훠궈’, ‘마라샹궈’와 ‘마라롱샤’, ‘마라새우’ 등이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마라탕을 갈구하는 새로운 표현들도 유행하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마라탕 이후의 대표주자는 ‘훠궈’와 ‘마라샹궈’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에서는 ‘쫜쫜훠궈’라는 1인 훠궈 전문점도 2018년에 생겨나 인기를 얻었고, ‘라라관’이라는 마라소고기전골을 전문 판매하는 음식점도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편의점에서 부는 마라열풍이다. 아직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일단 맛보면 계속 먹게 된다는 마라는 편의점에서도 연일 신제품을 내놓으며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GS25, CU,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거의 모든 편의점에서 마라와 관련된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어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다. 편의점에서 내놓는 상품들의 이름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중화풍마라제육삼각김밥’, ‘꽐라돼지마라’, ‘마라닭발’, ‘마라볶음면’, ‘마라만두’, ‘마라탕면스낵’, ‘마라볶음 쌀국수’, ‘마라핫치킨도시락’, ‘마라닭강정’, ‘마라볶음삼각김밥’, ‘마라족발’ 등등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마라와 관련된 제품이 나오고 있지만, ‘혈중마라농도’, ‘마라권’, ‘마라위크’등의 유행어를 봤을 때 ‘마라’의 한국 연착륙과 정착은 기정사실로 봐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마라칸 치킨’, ‘마라볼케이노’ 등을 비롯한 치킨 배달업계 음식과 ‘포기하지 마라탕면’을 대표로 한 라면업계에서도 한동안 마라열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마라칸치킨’의 경우 인터넷에서 그 맛의 호불호와 관련해 극딜을 받고 있지만, 마라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먹어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포기하지 마라탕면’같은 제품은 프로야구팀 가운데 하나인 한화이글스의 최근 성적과 맞물려 콜라보 제품으로 나온 사례로 한화이글스 팬들의 경기관람을 잠정 중단시키고 먹방계로 입문해 잠시 마음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익’을 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열풍’이 중요하고 ‘트렌드’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음식문화적 현상의 이면에 좀 더 주목하고 있다. 이 너머에는 또 어떤 관점의 전환이 생겨날 것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여름밤이다. 이번 8월은 한국과 중국이 교류를 시작한 지 이미 만 27년이 되는 달이다. 27살의 ‘한중이’는 어느덧 어엿한 젊은이가 됐고, 그는 칭다오맥주와 마라에 빠져 있다. 하지만 그 두 가지가 한중이의 삶을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중이의 40살, 50살, 그리고 60살을 장기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중국의 음식문화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침투하면서 궁극적으로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얼마나 확장될 것인지 살펴보는 것은 한중관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내 삶은 한중관계의 27년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정작 오늘밤의 현실 고민은 열대야가 지속되는 지금 이 기고를 마무리하고 중국산 칭다오 맥주느님과 한국산 삼겹느님의 은총을 받아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노상과 작은 양꼬치 매장에서 수없이 먹었던 ‘꼬치’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젊었기에 더 맛있었던 그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