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혼란을 가진 개미들
1. 프롤로그
지금으로부터 벌써 10년 전이다. 2010년 8월 2일, 필자는 김영사로부터 마윈에 대한 기획도서 집필을 의뢰 받고 항저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몇 달전부터 알리바바닷컴 한국지사는 물론 홍콩본사에 이메일로 마윈의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국의 ‘일개’ 사립대 교수라서 그런지 회신이 영 신통치 않았다. 결국 KOTRA 중국본부의 힘을 빌려 당시 알리바바닷컴과 KOTRA가 진행중이던 한국상품 온라인 판매기획 담당자와의 인터뷰를 성사시켜 항저우 본사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광쿤제로 유명해 진 온라인 판매 상황판 등 알리바바닷컴 투어를 마치고 회의실로 들어서는 순간, 입구에서 마윈을 마주쳤다. 그 중국인 부장은 자신도 마윈 마주치기가 힘들다며 너는 참 운이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0년전에 보았던 범상치 않았던 절강상인 마윈이 이제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2. 도화선
작년 11월 2일, 알리바바 그룹이 최대주주로 있는 앤트파이낸셜 상장(IPO)이 전격 중단되었다. 온·오프라인으로 모집된 이번 기업공개는 중국 커촹판 A주 가격이 68.8위안, 홍콩 H주 가격이 80홍콩달러로 조달액 350억 달러의 세계 최대 IPO로 기록될 전망이었다. 또한 상장 후, 앤트 그룹의 기업가치는 2조 위안으로 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판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할 예정이었다. 중국본토에서 515만명이 청약했고, 홍콩에서는 전체인구의 21%인 155만명이 청약에 나선 IPO가 중지된 것이다.
그 도화선은 초기에 마윈의 설화(舌禍)로 보였다. 작년 10월 24일 상하이와이탄금융포럼(上海外滩金融论坛)에서 나온 마윈의 정부 비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마 회장은 전에 연설한 왕치산 국가부주석의 P2P 금융사기사건과 같은 금융리스크 안정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중국은 금융리스크가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금융시스템이 없다’라고 한 것이다. 둘째, 감독만 있지 관리는 없다며 금융관리감독기관을 비판했다. 셋째, 금융기관을 전당포 영업에 비유하며, 디지털 금융혁신 없이는 글로벌 금융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넷째, 중국정부가 밀고 있는 디지털 화폐에 대한 불만을 언급한 점이다. 이는 중국정부가 디지털 위안화를 통해 기존 알리페이와 위챗페이가 양분하고 있는 모바일 결제시장에 타격을 주려는 것과, 온라인 소액대출 규제 정책에 대한 불만이 배경이다.
3. 앤트 그룹의 비즈니스 모델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번 사태의 원인은 ‘정치·경제적 사회 안정’에 있었음이 들어났다. 2004년, 세계 최대 B2B 사이트인 알리바바닷컴을 기반으로 모바일결제 서비스 알리페이로 시작한 앤트그룹은 오늘날 총 자산 3000억 위안이 넘는 '핀테크 공룡'으로 성장했다. 마이차이푸(자산관리), 마이뱅크(인터넷은행), 즈마신용(신용평가),위어바오(머니마켓펀드), 화베이·제베이(소액대출) 등 자회사 대부분은 금융업에 집중돼 있다. 앤트그룹의 주요 수익원은 소액대출 사업이다. 2020년 상반기 기준 앤트그룹 매출의 40%가 양대 소액대출 업체인 화베이(花呗)와 제베이(借呗)에서 나왔다.
화베이는 앤트그룹의 선소비 후환급 서비스이다. 소비자는 자회사인 즈마신용에서 받는 신용점수에 따라 구매 한도를 부여받고 온라인에서 상품을 먼저 구매한 후, 대금을 상환한다. 판매자는 화베이로부터 물품대를 선지급 받는다. 이는 은행의 신용카드 업무와 대출을 섞어 놓은 형태이다. 문제는 화베이가 조달하는 자금원에 있다. 이 돈은 알리바바 소액대출회사로부터 공급 받는데, 은행 대출과 ABS(자산유동화증권)에서 나온다. 여기에서 금융 리스크가 시작된다.
제베이 역시 앤트 그룹의 온라인 소액대출 서비스인데, 대출 한도는 알리바바 온라인 생태계의 신용도에 따른다. 즉, 온라인 구매실적이 높으면 실제 신용과는 관계없이 제베이에서 대출을 받을 확률이 크다. 제베이가 대출해주는 돈도 알리바바 소액대출회사로부터 조달된다. 아주 간단하게 보면 은행에서 빌린 돈을 몇 단계 거쳐 은행 신용시스템의 검증을 받지 않은 고객에게 재대출 해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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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앤트 그룹의 수익구조
자료: 국내외 공개자료 참고하여 저자 편집 (2021.1.25.).
4. 중국정부의 표면적 우려
2020년 상반기 앤트그룹의 신용대출 잔액은 2조1536억 위안(약 363조원)이나, 앤트그룹 자본금은 전체 대출의 1.68%에 불과하다. 레버리지(차입투자) 비율이 60배에 달한다. 나머지 돈은 어디서 온 것인가? 하나는 제3자 금융기관과 공동대출을 제공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소액대출 채권 여러 개를 모아서 ABS 상품으로 만들어 자금을 융통한 것이다. 앤트그룹은 이렇게 만든 ABS를 은행 등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해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신용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또 그 대출채권으로 ABS를 만들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지렛대 효과를 냈다. 2008년 미국에서 일어났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비슷한 방식이다. 중국 당국은 여기서 야기될 리스크를 염려한 것이다.
21세기경제보에 따르면 앤트그룹의 화베이·제베이는 현재까지 7686억300만 위안어치 ABS를 발행했다. 특히 2018년 이전 앤트그룹의 ABS 발행 규모는 급격하게 팽창했다. 2015년 60억 위안어치에서 2016년 662억 위안어치로 10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앤트그룹은 산하에 제3자 결제, 민영은행, 온라인 소액대출, 펀드판매, 보험, 증권, 소비금융 등 금융 관련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 은행처럼 엄격한 관리감독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앤트 그룹에 리스크가 발생하면 중국 금융시스템에 혼란이 불가피하다.
실제, 상하이 와이탄 금융포럼에서 저우자이 재정부 부부장은 핀테크 대기업들이 금융안전을 위한 균형을 잡고 시장규칙을 잘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핀테크가 과도하게 금융소비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해야 하며, 감독규제를 피하고 불법으로 제도차익을 가져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선도업체가 모든 성과를 독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중국의 온라인금융에 대한 규제는 네거티브 관리시스템으로 기업들은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으며, 마음껏 혁신할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알리바바를 포함하여 텐센트, 징둥, 바이두, 디디추싱, 바이트댄스 모두 방대한 고객 빅데이터에 기반하여 신용점수를 만들어 소액대출금융서비스를 제공, 본업보다 금융업 이익이 더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앤트 그룹은 중국 전체 단기소비대출의 1/4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들이 지켜야 하는 바젤3의 핵심은 자본충족율 규제이다. 이는 은행의 부실경영이 사회에 위험으로 전가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앤트 그룹의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은 4217억 위안에 불과하다. 반면 1조7320억 위안의 대출은 개인소비대출이다. 만약 대출자가 1억명이었다고 가정하면 1인당 1.7만 위안을 대출한 것이다. 대졸 신규취업자의 연봉(3~4만위안)으로 가늠하면, 부채비중이 50%가 넘는다. 실제 중국의 네티즌들은 앤트파이낸셜이 제공하는 소비대출 금융상품 제베이와 화베이를 통해 부족한 자금을 빌려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대출규모가 커질수록 나중에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며, 이런 대출상품들이 ABS를 통해 금융기관들 투자자산으로 흘러 들어가면, 중국판 ‘리만브라더스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5. 마윈이 가진 실제 리스크
첫째, 알리바바 및 앤트그룹 가진 정보(빅데이터)가 중국정부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해진 점이다. 현재 알리바바 생태계가 구축하고 있는 빅데이터는 8.8억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나아가 알리바바는 해외 인터넷 금융기업의 M&A를 통해 인도, 태국 등 제3국의 빅데이터도 구축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본업인 전자상거래에서 시작해 전자결제, 물류, 외식배달, 클라우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인공지능(AI), 반도체, 여행, 스마트시티 관리 등 이미 중국인의 일상 모든 곳을 파고든 상태다. 중국인이 무얼 먹고 어떤 옷을 사며 어디에 사는지를 모니터링 할 수 있을 파워가 마윈에게 있다.
둘째는 공산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 6월 알리바바 부총재 장판(蔣凡)의 스캔들 사건이 그 예다. 장판의 사생활 추문이 터졌을 때 알리바바가 30% 지분을 가진 시나닷컴이 개입해 순식간에 장판과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관련 보도를 온라인에서 내렸다. 중국 공산당 선전부 부부장이자 인터넷판공실 주임인 쉬린은 ‘여론 업무의 주도권을 굳건하게 장악해 당의 영도 약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리바바가 자본의 힘으로 미디어를 장악해 여론 주도에 나서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경고인 셈이다.
6. 향후 전망
다음은 2020년 12월말, 중국인민은행이 앤트 그룹 경영진을 소환해 요구한 다섯 가지다. 위 조항들을 보면, 알리바바닷컴과 앤트 그룹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
① 결제 본연 업무에 충실하라.
② 합법적으로 신용정보 사업을 전개하고 개인정보를 보호하라.
③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자본금을 충족시켜 합법적으로 거래하라.
④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신용대출·보험·재테크 업무 규정을 위반하지 마라.
⑤ 합법적으로 펀드 판매를 하고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법규를 준수하라.
앤트 그룹은 실무팀을 꾸려 금융당국의 요구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을 개편 중이며, 은행과 유사한 수준의 규제를 받는 금융지주회사로 전환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있다. 그룹 산하의 인터넷은행·소액대출·자산관리·보험·결제 등 금융 관련 사업 부문을 따로 분리해 금융지주회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앤트 그룹이 금융지주회사와 하이테크 기업으로 나뉘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려면 납입 자본금이 최소 50억 위안 등 까다로운 요건도 충족시켜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되면 현재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온라인 금융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에서 가장 돈 잘버는 절강 상인 마윈은 1995년 중국 최초의 인터넷 기업인 차이나옐로우페이지를 항저우에서 창업해서 지금의 반열에 이르렀다. 그가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절강성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닷컴 본사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김동하
- 참고 자료
- 9억 중국인 빅데이터 구축한 마윈 (유상철. 중앙일보. 2021.1.11.)
- 마윈의 개미그룹 상장유예 결정의 진짜 배후는?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2020.11.4.)
- 30억을 3000억으로 둔갑시킨 마윈의 앤트 금융제국 (배인선. 아주경제. 2021.1.7.)
- 중국 공산당과 마윈의 복잡한 함수관계 (박승찬. 아주경제. 2020.12.27.)
- 앤트파이낸셜의 상장유예가 주는 시사점 (안유화. 아주경제. 202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