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이론에 의하면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은 체제를 이끌고 나가는 정치적 전위대(vanguard)이며, 따라서 그 체제 내에서 가장 큰 권위와 권한을 보장받는다. 공산당의 가장 상위의 의사결정체는 당 대회로, 통상 5년~10년 단위로 개최되는 이 대회의 휴회기간 동안에는 당 중앙위원회(전원회의 1년 1~2회)와 서기국(비서국)이 그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한다. 국가별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당대회에서는 지난 당대회 이후의 시기 중 달성한 성과가 보고되고 이에 대한 검토와 토론을 바탕으로 향후의 대내외정책 방향이 결정된다. 지난 1월 5일~12일간 개최된 북한의 8차 당대회 결과에 관심이 집중된 이유 역시 바로 이 사실 때문이다. 북한 주민들의 최고 대의기관인 최고인민회의(중국의 경우 전인민대표회의)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이며, 실질적 결정은 공산당(북한 노동당)의 정책결정체제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 무려 36년 만에 개최된 2017년 5월의 7차 당대회와는 달리 이번의 8차 당대회는 5년~10년이라는 기존의 주기(물론, 조선 노동당 규약상 당 대회의 개최 주기는 정해져 있지 않다)에 충실한 것이었기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하 김정은)이 이번 당대회를 통해 어떤 대내외 정책비전을 제시할 것인지 그 이전부터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당대회의 주기를 지킨다는 사실 자체가 그가 ‘수령 독재’보다는 공산당 독재의 원칙을 지키려 하며, 자신의 업적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이 있다는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2016년~2020년간 추진된 『국가경제개발5개년전략』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고, 대북제재ㆍ코로나19ㆍ자연재해(홍수피해)의 3중고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이 가중됨에 따라 속히 이를 다독이기 위한 비전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했다.
전반적으로 이번의 8차 당대회는 자신감보다는 전반적인 여건상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대내적 결속 쪽에 무게감이 두어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당대회 사업총화보고를 통해 김정은은 지난 5년간의 다양한 성과를 자랑했고, 앞으로 이를 이어나가기 위한 비전을 제시했지만, “우리식 사회주의의 새로운 승리”라는 슬로건을 비롯한 말의 성찬(盛饌)의 이면에는 북한의 적지 않은 고민이 드러났다.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 하에서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당혹스러움이 은연중에 묻어났고, 이를 사상 무장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비장함이 담겼으며, 군사력 건설과 병진을 통해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처방이 제시되었다. 아마, 이번 8차 당대회에서 북한이 거의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었던 것은 핵능력 및 재래군사력의 증강실적이었고, 이 점은 김정은의 사업총화보고 뿐만 아니라 당 간부들의 토론, 북한 매체의 평가들에서도 수시로 강조되었다. 김정은이 총화보고를 통해 7차 당대회 이후 5년의 기간 동안 ‘화성’ 계열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북극성’ 계열의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개발 성공을 알리면서 ‘국가핵무력건설대업’과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가장 큰 성과로 내세울 정도였다. 또한, 초대형방사포, 북한판 ATACMS, 신형 순항미사일 등을 모두 ‘첨단 핵전술무기’라고 언급함으로써 한반도를 사정권으로 한 단거리 핵전력에 있어서도 핵탄두가 가능한 수준임을 과시하였다. 2020년 10월 10일 열병식에서 공개된 신형 ICBM 추정 발사체에 대해서도 김정은은 “우리의 핵무력이 도달한 최고의 현대성과 타격능력을 남김없이 과시”했다고 평가함으로써 단순한 개발단계를 넘어 완성단계에 이르렀다는 인상을 주려 하였다. 또한, 북한은 신형 주력전차를 비롯한 재래무기 역시 첨단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그들의 군사력 건설이 핵전력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했다. 이와 같이, 제8차 당대회를 통해 북한은 사실상 ‘병진정책’의 재개를 공언하였는데, 주목되는 것은 이 ‘병진’의 대상이 단순한 ‘핵’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은 총화보고에서 “이미 시작된 핵무력 건설을 중단 없이 강행 추진할 것”을 다짐하는 한편, 향후 ‘극초음속활공비행전투부’(Hypersonic Glide Vehicle, HGV) 개발, 중형잠수함 현대화, 핵추진잠수함 설계ㆍ개발, 무인타격장비 개발, 군사정찰위성 획득 등을 추진할 것임을 공언한 바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8차 당대회를 주시하였던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이번 당대회를 기점으로 북한의 대외정책 방향, 특히 한반도 비핵화 관련 미ㆍ북 협상 및 남북한 관계 측면에서도 돌파구가 제시되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나타난 북한의 대남/대외 메시지는 강성 기조를 유지하였다. 김정은의 총화보고에서 “시대적 요구에 맞게 대남 문제를 고찰하고”란 표현이 등장하고, “대외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ㆍ발전”시켜야 한다고 언급됨으로써 이의 배경에 대한 기대 섞인 전망이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대남/대미 기조는 강성으로 일관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현재의 남북관계가 “비정상적이고 반통일적 행태”에서 비롯되었다고 규정하였으며, 우리가 추진해 온 금강산 개별관광, 인도적 협력, 방역 협력 등이 ‘비본질적 문제’라고 폄하하였다. 즉,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변화, 즉 북한의 군사력 건설에 대한 경계 해제와 국제 대북제재 공조로부터의 이탈 등 큰 틀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해석됨에 타당하다. 미ㆍ북관계에 대해서도 북한의 경직적이고 자기중심적 인식은 그대로 드러났다. 김정은은 총화보고를 통해 “불법무도하게 날뛰는 적대세력들과 강권을 휘두르는 대국들에 대하여서는 강대강으로 맞서는 전략을 일관하게 견지”해야 한다고 선언하는 한편, “미국에서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고 평가한 바 있다. 미국이 ‘혁명발전의 기본장애물’이며 ‘최대 주적’이라는 인식 역시 여과 없이 표출하였다. 그는 이어 미ㆍ북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이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라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였고, 이는 북한이 미ㆍ북 협상에서 제시한 조건 즉 제재의 전면 철회와 한ㆍ미 군사연습/훈련 중단, 그리고 조기 관계 개선이 없이는 먼저 조치를 취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대외관계의 전면적 확대ㆍ발전’이라는 표현은 왜 등장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아마 북한은 2018년 이후 강화되어 온 북ㆍ중 밀착 및 북ㆍ러 협력 기조를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김정은 총화보고에서 5차례의 북ㆍ중 정상회담 및 2019년의 북ㆍ러 정상회담 사실을 언급하였으며, 쿠바ㆍ베트남과의 외교적 유대관계를 과시하였다. 아마 김정은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연대와 협력이 있는 한 북한은 대외적으로 고립된 것이 결코 아니며, 외부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자신들의 노선을 유지할 충분한 동력이 있다고 주민들에게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2021년 북한의 중ㆍ러에 대한 협력 제스추어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당장은 재개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되는 미ㆍ북 협상에 미리 대비하여 안전판과 지원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2021년 상반기 중 김정은의 중국 및 러시아 방문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다만, 김정은의 이러한 행보가 냉전 시대와 같은 북중러 삼각관계의 복원으로 해석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로부터의 지원을 필요로 하지만, 경제적 이익이 외교적 과다 의존이나 종속으로 이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은 중ㆍ소에의 종속을 방지하는 하나의 보조적 장치로 비동맹을 활용했으나, 이미 비동맹은 그러한 힘을 상실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역점을 둘 수 있는 곳은 바로 현대판 비동맹, 즉 미국과 중ㆍ러가 각축을 벌이는 힘의 공백지역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2021년 중 이란,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지역에 대한 북한의 외교적 접근도 가속화될 수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대미 도발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이다. 이미 평양은 2020년 10월 10일의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ICBM과 SLBM을 선보임으로써 이러한 포석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은 2021년 상반기 중으로 신형 SLBM 탑재가 가능한 잠수함의 진수식과 대남도발(단거리 발사체 실험의 지속)을 병행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으며, 하반기에도 미국이 대북협상에 큰 미련을 두지 않을 경우, 신형 ICBM의 발사실험 혹은 핵실험과 같은 초강수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북한으로서도 이러한 행동이 국제제재의 강화나 미국의 강력한 조치를 불러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대남도발이다. 북한은 2018년 이후 자신들의 대남행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포용적인 자세를 보인 것에 대해 고무되어 있을 수 있다. 즉, 자신들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더라도 한국이 이에 대해 그리 강력한 대응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며, 남북관계 복원 역시 평양이 원한다면 그 시기와 방법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는 것이다. 2021년 미국을 겨냥한 본격적인 강경조치의 시현이 있기 전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을 가늠해보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한국을 활용할 수도 있다. 2020년 6월에 선언했다가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형태로 ‘보류’된 ‘4대 군사조치’의 재현이나 단거리발사체 재발사 등이 이에 속한다. 이에 대해 한ㆍ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따라 후속 조치의 수위를 조절해나갈 것이다. 남북관계에 있어 ‘희망적 사고’보다는 차분하고 원칙에 충실한 대응이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전망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