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역동적이고 복잡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지속적이고 빠른 성장세를 줄곧 유지해 왔는데, 1978년에서 2007년 사이에는 연평균 10%,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부터 2020년까지는 연평균 6-8%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 왔다. 중국은 1921년 공산당이 창립되고 근 100년 동안, 혁명, 사회주의, 마오주의적 급진주의, 점진적 경제개혁, 급속한 경제성장, 신창타이(新常态) 등을 거쳐오며 보기 드문 격동의 발전과정을 지내왔다.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한 이후 겪은 대약진운동(大跃进运动)과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은 인민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었으나 오히려 이러한 실패의 경험은 1978년 중국공산당 11기 3중전회(十一届三中全会)의 개혁·개방정책 추진의 중요한 원인이 되어 계획경제에서 벗어나 시장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설적으로 1978년 이후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해 시장경제를 실험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사회주의 국가는 세계 경제에서 G2의 지위를 굳건히 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전환에 구조적 문제점과 부작용은 존재했다. 그러나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갈등을 반추해본다면 중국은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적 갈등과 비용으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조합한 새로운 중국식 경제모델이 가능함을 세상에 알렸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식 경제모델이란 무엇인가? 1978년 개혁개방 초기에는 동아시아 발전모델이 선택된 것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중국식 경제모델은 정형화된 틀이 있는 것이 아니며 대내외적 주요 사건과 환경 변화에 대응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개혁실험을 통해 서로 모순적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 나타나는 성과와 갈등 그리고 한계는 지도자별로 다른 경제모델 속에 상이한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마오쩌둥의 급진적인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한계를 느끼는 계기가 되었고, 덩샤오핑 정부는 1978년 실험적인 개혁개방을 시행한다. 먼저는 하나의 중심(一个中心)을 경제건설에 두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두 개의 기본점(两个基本点)인 개혁개방과 4개 견지(四项基本原则, 사회주의 견지, 무산계급 독재, 공산당 영도, 마르크스-레닌주의 · 마오사상 견지)를 기반으로 사회주의 현대화(4个现代化)를 건설한다는 정책적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위한 세부목표는 삼보주(三步走)였으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초급 단계임을 시사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자의적이었으나 소극적이면서 지엽적으로 이루어졌다. 기존의 계획경제와 국유부문을 위주로 하되 향진기업, 삼자기업, 경제특구 등 시장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경제성장의 추진력을 확보한 것이다. 중앙정부의 간섭이 완화되면서 외국인직접투자(이하, FDI) 유입은 가속화되었고 수출경제는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선부론(先富论)’에 따른 개혁개방 과정 중 도농격차, 지역격차, 노동자 인권 탄압 등의 모순들이 1989년 천안문 사태로 폭발하자 덩샤오핑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장쩌민 정부 집권 초기인 1992년 남순강화(南巡讲话)를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공식화하였다.
장쩌민 시기에는 점에서 출발한 덩샤오핑의 실험이 선-면으로 확대되면서 FDI에 의한 수출이 크게 증가하여 1990년대의 중국 GDP는 근 10년 동안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달성한다. 적극적인 FDI 유치로 세계 500대 기업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중국은 국제 분업의 한 축인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였고 동아시아 발전모델과 유사한 측면이 심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운 성장 이면에는 천안문 사태 이후 해결되지 못한 도농간 · 지역간 빈부격차, 지방관료의 부정부패, 지역자원과 환경 훼손, 노동자 인권 탄압, 금융권의 막대한 부실채권 문제들이 겹겹이 적체되어 왔다.
후진타오 정부 시기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국제무대에 오르게 되자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밸류체인(Global Value Chain, 이하 GVC)의 기반이 형성되었고 타의적이면서도 전면적이고 적극적인 개혁개방의 특징이 나타났다. 2006년 11차 5개년 계획에서는 서비스업 개방이 언급되었고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의 전환, 수출주도형에서 산업구조 고도화의 전환, 분배 이슈가 강조되었다. 후진타오 정부는 장쩌민 정부와 노선을 달리하며, 에너지와 환경을 고려한 친환경적 지속가능한 발전인 ‘과학적 발전관(科學發展觀)’과 지역불균형의 청산과 해소를 향한 ‘공동부론(共同富论)’인 ‘조화로운 사회(和諧社會)’ 건설을 목표로 삼았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FDI를 통해 시장은 주되 선진기술과 자본은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2005년 ‘다국적기업보고서(跨国公司中国报告)’에 따르면, 선진자본 확보는 달성된 반면, 기술획득은 실패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자, 중국은 산업구조 고도화 정책을 취하고, 2011년 유럽재정위기를 계기로 이전의 에너지와 자원 획득에서 2012년부터 기술획득을 위한 조우추취(走出去) 전략을 적극적으로 취하게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국유기업의 대기업화였다. 중국의 국유기업은 규모가 작아 대기오염 등 환경 파괴를 유발했고 기술면에서 뒤쳐져 규모의 경제를 위한 대기업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국유기업은 투자의 1/3을 차지하나 GDP의 10%만 창출하고, 전체 기업 자산의 40%를 보유하나 전체 이윤의 20%만 생산하는 등 효율성 문제는 항상 거론되었으나, 가장 민감한 지표인 일자리 해결을 책임지고 있어 역대 어느 정부든 성공적인 개혁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후진타오 정부는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SASAC, 이하 국자위)을 통해 국유기업간의 인수 · 합병을 진행했다. 이는 추후 장쩌민 정부와는 다른 ‘국진민퇴(國進民退)’ 기조 강화와 재국유화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논지는 국유기업의 독점적 지위 강화인데, 사실상 국유기업의 대기업화로 몸집이 커진 대형국유기업은 경영실적이 민영기업에 훨씬 못 미침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특혜로 막대한 이윤을 챙긴다는 문제점을 초래했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생각지 못한 변수를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으나, 정부 우대 정책 하에 국내 과잉생산과 투자가 문제시 되었고, 대표적으로 과잉 생산된 염가의 철강가격은 이후 세계 철강시장을 교란시켜 상식적인 경쟁이 무너지고 외국 경쟁기업들을 세계시장에서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밖에 차이나머니를 등에 업은 대형국유기업들은 해외투자와 해외기업 인수합병의 가속화로 기술과 브랜드를 용이하게 획득하였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직접 개입을 통한 대기업화는 국유 지배력을 더욱 강화시켰다.
시진핑 정부에 들어 ‘국진민퇴(國進民退)’ 기조는 ‘중국제조 2025’, ‘인터넷+’ 정책 등 4차 산업혁명의 기술굴기와 맞물려 국가자본주의 색채가 짙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경제사에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이 예상되는 4차 산업혁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근간은 네트워크의 구축과 데이터의 양이다. 중국의 14억의 인구, 10억명 이상의 인터넷 사용자로부터 모을 수 있는 빅데이터는 머신러닝과 딥러닝 알고리즘 개발과 AI 진화에 필요한 기본이 된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직후 2013년 ‘중국몽(中国梦)’을 선포하며 ‘두 개의 100년(两个一百年)’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행동방침으로 신창타이(新常态) 기조하에 질적성장으로의 전환, 일대일로 추진, AIIB 설립, 중국제조2025, 인터넷+정책 등 중국굴기를 향한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청사진은 미국을 자극하여 2018년 미중간 통상분쟁으로 격화됐고 이는 미중간 디커플링 현상으로 이어져 미중간 첨단기술 대립과 미국의 기술동맹 확대전략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은 이를 대응하고자 핵심기술 자주혁신의 방향으로 ‘쌍순환 전략’을 선택하여 4차 산업혁명의 기술굴기를 위해 맹추진을 하고 있다. 여기서 우려되는 점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가 기업이 근본적인 목표인 이윤추구보다 국가의 전략적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제고시킨다는 데 있다. 빅데이터, AI, IoT, 5G 첨단기술은 드론, 로봇,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차 산업 등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중국경제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국가안보와 사회공익이라는 명명하에 AI 안면인식으로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감시체제 강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인권탄압 등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히 한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한계가 중국 내부에서 중국몽과 중국굴기를 향한 공산당에 명분을 씌워주고 민족주의에 희석되어 첨단기술을 통한 사회통제가 강화될 개연성이 높다는 데 있다.
종합해보면 중국은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G2 국가로써 FDI, ODI, 수출입규모, 외환보유고 1위를 달성하고 일대일로 추진부터 국제기구인 AIIB의 성공적인 설립까지 시장요소를 적극 끌어들여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인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세상에 알렸다. 이러한 성장 이면에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기부터 개혁개방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당의 개입이 있었다. 지도자별로 사회주의 체제에 시장과 개방의 접목수준은 상이했지만 경제관리에 있어서는 끈을 놓지 않았다. 덩샤오핑과 장쩌민 정부는 선부론으로 동아시아 발전모델을 선택하여 많은 자본을 수용하고 시장화 · 민영화를 통해 중국경제의 양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면, 후진타오와 시진핑 정부는 공동부론으로 그동안 쌓은 부를 적극 활용하여 외국기업에게 주었던 시장점유율을 가져오고 국유기업의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대기업화로 중국경제의 질적성장을 꾀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 이후 국가가 경제 핵심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국가자본주의 모델은 4차 산업혁명에서 더욱 공고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당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인위적인 국유비중이 증가할수록 효율성과 정당성은 점점 보장받기 힘들다. 더욱이 4차 산업 혁명에서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는 전세계적인 민주와 인권의 가치와 부딪치고 있어 많은 국가들이 중국식 기술네트워크가 군부독재체제 국가들로의 확장 가능성과 기술표준 장악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G2국가에게 갖는 세계인의 기대와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력, 지속가능한 장기적인 발전을 꿈꾸는 중국의 당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