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을 떠올리면, 무엇보다 먼저 만리장성, 천안문, 자금성, 이화원, 천단 등 역사적 장소를 떠올리게 된다. 물론 이외에도 베이징은 마천루마냥 솟아있는 대형건물과 사통팔달의 도로망은 사람들에게 여유를 가져다주지 않은 체, 정치 경제의 수도의 면모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베이징은 과거와 현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공간이자 시공을 초월하여 미래를 여는 대화의 장소이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 “만리장성에 오르고, 고궁박물원을 관람하고, 798 예술구에서 노닌다(登長城, 看故宮, 逛798)”라는 노선이 베이징 여행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만리장성과 고궁박물원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장소이지만, 798 예술구는 다소 생소한 느낌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과거와 전통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반면, 후자는 현재성과 창신성을 담보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전통과 창신을 담보하고 있는 베이징은 시 정부 주도 아래 문화라는 새로운 옷을 덧붙이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즉, 문화에다 산업적인 요소를 더하여 문화라는 소프트 파워를 강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먼저 문화라는 개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다. ‘문화’라는 개념에 있어 동서양 간에 해석상의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다. 서구에서 사용하는 ‘Culture’는 라틴어 동사 ‘colere’를 어원으로 하여, 밭을 경작하는 것과 가축을 돌보는 일과 같은 농업적 의미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이러한 의미에서 확장되어 인간을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며 마음을 닦는다는 의미로 전환하게 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 집단의 생활양식으로 정의할 수 있는 문화는 교양, 진보, 예술과 정신적 산물, 상징체계 등으로 확대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문화의 고전적 의미는 ‘무늬(꾸밈)로 교화를 이루는 것’, 즉 인위적인 예악제도인 윤리의 질서로써 교화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하게끔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에는 문화의 고전적 의미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 시기 서구의 동양에 대한 침탈과 함께 서구적 문화적 의미가 동양으로 전이되었다. 이러한 전이의 결과로 자국의 정치적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 문화, 교양, 수양 등으로 해석을 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볼 때, 문화라는 개념은 그 단어 자체가 모호성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는 모호성을 지닌 ‘문화’라는 개념에다 자국의 상황 논리에 따라 산업적인 분야와 접맥을 시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제기된 것이 ‘문화산업’ 혹은 ‘창조산업’ 등의 용어이다.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와 호크하이머(Max Horheimer)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처음 사용한 ‘문화산업’이란 용어는, 예술을 대량상품이나 패스트푸드처럼 생산하는 ‘대량문화’에 담긴 부정적 의미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문화산업’이란 개념을 확장시킨 ‘창조산업’이란 용어로 사용하였고, 중국에서도 이러한 용어에 걸 맞는 ‘창의산업’ 또는 ‘문화창의산업’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이징의 문화창의산업을 이야기 하자면, 현재성과 창신성을 앞세우면서 문화의 꽃을 피우고 있는 따산즈(大山子) 798 예술구가 대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런던의 테이터 모던(Tate Modern)이나 뉴욕의 소호(Soho)의 전환과정과 유사한 이곳은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산업단지로, 문화 창조와 생산 그리고 전파와 소비 등의 다양한 요소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베이징이라는 수도가 가지는 자원, 문화수요, 지리적인 우세에 힘입어 따산즈 798예술단지는 예술인을 포함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대표적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따산즈에 위치한 798 예술단지의 출발점은 1951년도 저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진공관공장과 무선기자재연합공장의 설립을 승인하면서 718연합공장이라 명명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1964년에 718연합공장은 전자공업부 직속 아래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6개의 브랜치 공장으로 나뉘어졌는데, 그 중 한 공장의 일련번호가 798이었다. 하지만 90년대에 접어들어 798공장에서 생산되던 제품의 판로가 점차 사라졌고, 이에 많은 공장 건물들이 쇠락의 길을 걷거나 방치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 798공장 지역이 예술단지로의 변화에는 두 가지 전환점이 있었다. 첫째, 중앙미술대학의 이전에 따라 이 대학의 수젠궈(隋建國) 교수가 자신의 창작공간을 위해 798공장 내에 건축공간을 임대한 것이고, 둘째, 2002년에 미국인 로버트 버넬(Robert Bernell)이 798공장 지역에다 Timezone 8(東八時區)라는 예술전문서점을 연 것이다. 수 교수와 로버트 버넬의 798공장 지역에로의 입주는 국내외 많은 예술인들의 주목을 얻었고, 게다가 넓은 공간과 저렴한 임대료는 않은 예술인들을 끌어들이는데 충분한 역할을 하였다. 아울러 정부의 문화산업에 대한 육성과 발전을 위한 다각적인 정책도 798공장 지역이 예술문화산업단지(더 나아가 문화창의산업 클러스터로 선정)로 탈바꿈하게 되었는데 일조를 담당하였다. 이에 따산즈국제예술제(DIAF)와 798 비엔날레 등의 예술 활동으로 798 예술단지는 국제적 명성과 더불어 예술특구로 발전하여 더 많은 예술인들의 활동무대로 되었다.
최근 들어 이 예술단지에는 예술적 향기로 가득차기 보다는 상업 성향의 분위기가 강하게 작용하여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또 높은 임대료로 인해 기존의 입주 예술인들에게 심각한 문제로 다가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798 예술단지 내의 제한적 공간 구조는 도리어 주변 지역들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송쫭 지역의 송쫭 문화창의산업 클러스터 형성이다.
거시적인 문화창의산업에 따른 다양한 상품의 개발, 즉 문화상품은 또 다른 효과를 드러낸다.
문화상품은 문화의 영역이 경제적 영역과 결합하여 산업적 생산을 통해 소비 대상물로 나타나,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문화상품이란 단순히 물질적 필요에 의해 대량생산 시스템인 적인 포디즘(Fordism)적인 것이 아니라, 다원화된 소비자의 정신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m)적인 의미로 작용하는 바가 크다. 다시 말해 표준화된 소비 형태가 아니라 선택화된 소비(개인화된 소비)의 이행으로 변화하여, 소비자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드러내고 스스로의 안목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으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현재와 혁신이라는 798예술특구와는 달리 전통이라는 문화에 예술적 감각을 입힌 문화상품을 탄생시킨 곳이 바로 자금성(자줏빛으로 둘러싸인 금지된 성)이자 고궁박물원이다. 중국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자금성을 떠올리면, 그 자체로 신성한 공간이자 내밀한 공간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그 높디높은 성벽 너머로는 중국 봉건시기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일반인에게는 거리가 있는 인상을 가져다준다. 신성함과 내밀함으로 가득했던 자금성의 옛 모습은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수많은 관람객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탐색의 여정을 제시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정은 고궁 가이드의 술책에 가로막혀 실망감으로 얼룩져, 지적 생산 활동이라기보다는 육체적 피로감으로 먼저 다가오게 된다. 이처럼 고궁은 고루한 중국 전통 문화 이미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되어버렸다.
이러한 중국 전통문화의 상징인 자금성에 신선함을 던져준 것이 바로 ‘고궁 립스틱’이란 문화상품이다. 즉, 고궁의 궁정 이미지를 극대화하여 젊은 여성들의 기호에 부합한 문화상품으로 등장하여, 기존 자금성에 대한 고루한 형상을 젊은이의 활달한 이미지로 전환을 이룬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문화와 현대 생황의 해후라 할 수 있다. 이에 연이어 고궁박물원에서는 중국 전통문화를 간직한 다양한 문화상품을 설계하여 선보이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가 추구하고자 하는 애국심의 발양에 젊은이들이 동조를 한 것으로 해석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이 점은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 특성을 드러낸 여러 상징부호가 중국에서 만연하고 있는 작금의 중국 현실에서 볼 때,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전통을 지니면서도 생명력을 강하게 표출한 이러한 문화상품은, 문화대국이라는 거창한 표어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중국인들의 자존감을 충분히 드러내는 상징성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자존감이 어쩌면 중국 정부가 추구하고자 하는 애국심의 발양과 결합되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해본다.
문화적 소프트 파워를 강변하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 반해 현재 한국 더 좁게 부산에서의 문화지형은 어떠한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반추하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