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질병의 오리엔탈리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이른바 언택트시대의 개막이다.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등장하면서, 인류사회도 새로운 계급사회로 재편되고 있고, 언택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회적 불만과 양극화 문제 역시 심화되고 있다. 결국 사회적 불만과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코로나19 이전의 일상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예방백신의 개발과 예방접종의 확대가 절실한데, 여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예전의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적지 않은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부라긴 하지만 사회적으로 누적된 분노와 공포가 특정 인종을 대상으로 혐오와 폭력이라는 범죄로 표출되기 시작했고, 특히 세계 각지에서 중국계 혹은 아시아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각종 인종차별 및 테러 등이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아시아계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인다. 2020년 5월 5일, 민주당 소속 아시아계 의원인 그레이스 멩 의원 등이 최초 발의안 “코로나19 혐오범죄법”은 중국이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알려지면서 미국·유럽 등지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범죄와 혐오범죄가 증가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 올해 3월에는 민주당의 메이지 히로노 상원의원과 그레이스 멩 하원의원 등이 “아시아계 혐오범죄 방지법”을 공동 발의하였고, 법안 발의 닷새만에 조지아주 아틀랜타에서 한인 4명을 포함한 아시아계 8명의 여성이 총격으로 사망하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5월 말, 이 법안의 통과 이후에도 미국사회 내에서 여전히 아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왜 일어나는가? 혐오와 폭력은 특정 집단에 대한 지배의 욕망을 드러내는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으며, 미국 국가건설의 역사만큼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 국가건설의 정신은 앵글로 색슨계의 백인이 주도하는 청교도 정신과 프론티어 정신이다. 미국 동부에 정착한 그들은 서부로 자신들의 지배 영역을 확장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청교도 정신과 프론티어 정신을 강조하였고, 그들과는 인종적으로 다른 흑인 노예, 토착 인디언들, 아시아계 이주민 등을 타자화하고 지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백인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지배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미국내 인종주의를 다양한 형태로 강화시켰다. 특히 19세기 후반 제국주의가 등장하면서 의학은 제국의 팽창을 위한 도구로서 기능했다. 특히 열대의학, 사회진화론, 우생학 등은 아시아인와 흑인들이 백인과 비교해서 인종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며, 어떤 형태로든 우월한 백인이 열등한 아시아인과 흑인들을 지배하고 차별하는 것을 합리화하였다.
백인이 아시아인에 대한 지배와 차별을 합리화하는 방안 중의 하나는 아시아는 하나의 오염된 세계이고, 그곳에서 온 아시아인은 통제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끊임없이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가 각종 질병의 온상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콜레라, 페스트, 성병, 상피병, 조류독감 등 적지 않은 질병들의 근원으로 중국과 인도 등이 지목되었다. 그리 놀랄 것도 없이 지금까지 학문의 세계에서 질병사 서술의 목표 중의 하나는 아시아가 질병의 근원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질병사 서적의 대부분은 백인 주도하에 작성되었고,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질병의 오리엔탈리즘을 구축하는 데 동원되었다. 중국과 아시아는 서양과 달리 불결하고 더러우며, 야만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수동적이고 여성적이며, 부도덕하고 질병이 난무하는 세계로 그려졌다. 중국과 아시아는 서양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되어야만 서양 중심의 세계질서에서 안정과 평화가 보장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서양인의 입장에서 통제되어야 할 존재인 아시안인들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그 공포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이른바 황화론(Yellow Peril)의 등장이다. 황화론이라는 용어는 1895년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처음 사용했는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으로 급부상한 일본과 경제적, 군사적 잠재력을 가진 중국이 서양 중심의 세계질서를 위협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또한 황화론은 서양의 아시아 지배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한 이론으로 활용되었다. 결국 황화론은 아시아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여 서양의 아시아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오리엔탈리즘의 한 형태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론은 서양사회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재생되고 확산되었으며, 대중매체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가 아시아인들은 불결하고 더럽고 오염되었다는 이미지를 증폭시켰다. 코로나19는 다시 한번 황화론의 이미지를 증폭시킬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된 것이다. 서양언론들은 황화론의 공포와 코로나19의 확산을 연상시키는 보도를 앞다투어 반복했다. 코로나19는 황화론이 묘사해 온 ‘더럽고 불결한 아시아’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고 있고, 아시아인을 전염병의 보균자이자 책임자로 낙인찍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19는 실제로 중국에서 발원한 것인가? 코로나19는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武漢)의 화난(華南) 수산시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한은 사통팔달의 대명사로 중국 내륙교통의 최대 요충지이며, 인구 1,100만명이 거주하는 도시이다. 최초 발원지 추정은 화난 수산시장에서 팔린 박쥐 원천 바이러스를 가진 야생 동물에서 사람간 감염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중국 우한이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여겨진 것이다. 이것이 논쟁이 되자, 시진핑 주석은 발원지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고, 2020년 2월 중국의 대표적인 감염학자인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출현했지만,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중국의 관영 언론들은 중난산 원사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했고, 독감 환자가 대거 발생한 미국이 발원지일 수 있다는 식의 논조를 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대강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시기였다. 급기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군이 우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가져온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트럼프 대통령도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지칭하며 미국발원설을 일축했다. 이 때부터 미국 내에서 코로나19의 발원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일부에서는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와 우한 질병예방통제센터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문제를 주시하던 WHO도 2021년 1월 화난 수산시장에 대한 직접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WHO는 코로나19와 화난 수산시장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지 못했으며, 2019년 12월 우한에서 이미 13종의 변이 바이러스가 출현하는 등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감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연구팀도 코로나19가 화난 수산시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2019년말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었으며, 화난 수산시장에서 채취한 동물 샘플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고, 하수도 등의 환경 샘플에서만 바이러스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중국발원설은 현재로선 미궁에 빠져 있지만,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된만큼 중국발원설을 명백히 부인할만한 근거도 명확치 않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이상 코로나19의 발원지 논쟁은 소모전에 그칠 공산이 크다. 더욱 중요하게는 코로나19의 발원설 논쟁이 오히려 황화론과 질병의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해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설령 코로나19의 중국발원설이 부정된다고 해도 서양의 오랜 지적 전통을 형성해 온 질병의 오리엔탈리즘이 한순간에 무너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질병의 오리엔탈리즘은 아시아에 대한 편견과 지배에 대한 열망이라는 수액을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공급받아왔기 때문이다. 편견의 해체와 일상의 회복을 위한 오늘의 한걸음이 내일의 작은 희망이 되어 줄 뿐이다.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 신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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