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로부터’ 진먼(金門)을 기억하기
서평: 냉전의 섬, 전선의 금문도
현지조사가 막바지로 접어들던 2015년 6월의 어느 날, 나는 무작정 타이베이 송산(松山) 공항에서 진먼(金門)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2014년 영화 ‘군중낙원’을 개봉 첫날 친구와 감명 깊게 봤기에, 서울로 돌아가기 전 진먼은 꼭 한번 가보고야 말리라 하는 마음에서였다. 1시간 정도 하늘을 날았을까, 승객을 30명 정도 실은 경비행기는 진먼 공항에 닿았다. 바람은 불지만 습하고 더운 날이었다.
진먼에 대한 첫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평화롭다는 것이었다. 대중교통도 많지 않아 관광객들은 주로 택시로 1일 투어를 해야 할 만큼,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섬들을 둘러싼 여러 요새들과 ‘땅굴’들은 이 섬 자체가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알려주었다. 특히 영화 ‘군중낙원’에서 보여준 군대와 여성들은 한국에서 종종 보았던 미군기지와 관련된 연극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 낯설지는 않았다. 포탄이 너무 많이 떨어져 그것을 녹여 진먼의 특산품인 칼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그 군사화된 섬에서도 살아나가려고 하는 진먼 사람들의 일상처럼 느껴졌다.
짧은 진먼 여행이었지만 인류학자로서 뇌리에 남았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주홍색’으로 각인된 마을이었다. 특히 수이터우 마을(水頭聚落)에 모여 사는 황씨 일가가 마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1932년에 만들었다는 진수이 초등학교(金水國小)가 인상적이었다. 초등학교 안에는 많은 진먼 사람들의 이주 경로에 대한 작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화교의 뿌리가 진먼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하며 진먼을 화교의 고향이라 칭하고 있었다. 또한 수이터우 마을에 대한 역사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이웃 샤먼의 많은 전통마을들이 일련의 역사를 거쳐 재건되는 과정을 거쳤다면, 진먼의 마을들은 그 '주홍'의 원래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진먼의 (스조니 식으로 말하면) ‘독특한’ 기억이다. 진먼은 대만 본섬과 달리 일본 통치시기를 겪지 않았다. 진먼을 주어로 놓고 본다면, 진먼은 계속 ‘중화민국’이었다. 그리고 진먼은 대만 본섬과 달리 ‘푸지엔성(福建省)’에 속한다. 여행 중 언뜻 지나쳤던 여러 공공기관에서 진먼이 푸지엔성임을 알려주고 있었고, 곧 소개하려는 이 책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진먼이 속한 ‘푸지엔성’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모두가 자신의 푸지엔성이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진먼은 이웃 샤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던 하나의 생활권으로 살아가다가 1950년대~2000년에는 교통·통신·우편의 불통(不通)으로 단절되었다가, 다시 2001년부터 소삼통(小三通)이 진행되며 다시 연결되었다. 이러한 단절과 연결의 역사는 진먼이 가진 샤먼과 대만 본섬에 대한 ‘독특한’ 친밀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거칠고 날것’의 감상은 2020년 12월 말, 김민환 선생님과 정영신 선생님의 공동번역으로 나온 『냉전의 섬, 전선의 금문도』로 구체화되었다. 중국과 대만을 오랫동안 연구했으며, 특히 중국 남동부의 지역사 전문가인 마이클 스조니(Michael Szonyi)의 COLD WAR ISLAND QUEMOY ON THE FRONT LINE(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를 완역한 이 책은 진먼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위치와 그에 따른 진먼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진먼의 지정학과 군사화, 현대화와 기억을 주제어로 하여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1부)은 1949~1960년을 주목하되,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군사 대치였던 1949년(고령두 전투(古寧頭戰役)), 대만 해협 위기가 일어났던 1954~1955년(9·3 포격전)과 1958년(8·23 포격전)을 설명하고 있다. 이 세 번의 전투는 진먼이 지정학적으로 매우 독특한 위치였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각인시키고, 진먼섬을 군사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2부에서는 1960년대 이후의 군사화 체제의 변화 과정에 대해 다루는데, 진먼의 위치가 어떻게 ‘군사적’에서 ‘정치적’으로 바뀌었으며, 진먼에 주둔한 군대 내 구성원 구성의 변화 과정에 대해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3부는 냉전 시대 진먼의 일상에 관한 것으로 ‘군사화 체제’였던 진먼이 지정학화되면서 진먼의 경제·종교·젠더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특히 주민들의 기억에 귀를 기울여 주민들의 경험과 협상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마지막 4부는 군사화 과정에서 완전히 벗어난 진먼의 사회적 삶을 ‘탈군사화(demilitarization)’라 명명하고 과거 ‘군사화’의 기억이 어떻게 기억되고 기념되는지에 대해 다룬다. 이 때 탈군사화는 좁은 의미에서는 진먼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는 군사화 담론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진먼은 흔히 국제정치학적인 측면에서 냉전의 최전선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난 여러 전쟁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중화민국의 최대 방어선으로 대만 본섬을 지키기 위한 기지였으며, 진먼이 그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기에 대만이 경제 발전을 했다고 알려지기도 하였다. 스조니도 이러한 시각에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는 진먼 사람들의 ‘기억’에 관심을 가지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이 냉전이 거시적인 수준에서처럼 투쟁이나 이념적 대립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덧붙여, 필자가 이 책을 다른 진먼에 관한 연구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본 것은 바로 제 11장 ‘냉전의 귀신과 신’ 때문이다. 11장에 따르면 진먼 사당들의 겉모습은 대만 본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당의 모습과 흡사하지만, 이 사당 안에 모시는 신은 전통적인 민간 종교에서의 신이 아니라 현대화된 모습을 하고 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진먼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 중 하나인 왕위란(王玉蘭) 추모 의례이다. 왕위란의 등장 배경은 다음과 같다. 1954년 진먼의 해변가로 젊은 여성의 주검이 떠내려왔다. 사람들은 이 주검이 악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양지 바른 곳에 매장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묘를 지날 때마다 여성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몇 달 뒤, 이 여성 영혼에 빙의된 지역의 무당을 통해 그의 이야기가 알려졌다. 이 여성은 17세 샤먼 출생 왕위란이라고 했다. 이후 ‘왕위란’에는 진먼 사람들이 군대에 가지고 있었던 내재된 공포가 담기게 된다. 어떤 마을 사람들은 왕위란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군인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왕위란이 악귀가 되기 전에 영혼을 달래주어야 한다며 왕위란을 위한 사당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왕위란은 진먼에서 가장 높은 81사단장의 꿈에 나타나 읍소했다고 알려졌다. 결국 사단장의 지시 하에 왕위란은 ‘열녀’로 신격화되어 ‘열녀묘’에 그 혼을 기리게 되었다. 그 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군 간부들은 정기적으로 열녀묘에 방문해 왕위란을 참배했다. 왕위란 열녀는 죽음을 무릅쓰고 정절을 지킨 민족의 상징으로 나타났으며, 동시에 중국 대륙의 민간신앙 탄압에 맞서 ‘중화 문화’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국민당 정부의 ‘(중화)전통문화 보존하기’ 기획의 일환으로 더욱 숭배되었다. 이 과정에서 ‘왕위란 기념’에는 진먼 주민들에 의한 민간의 해석과 정부와 군인들에 의해 장려된 해석이 공존하게 되었다.
이 책은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런데도 특히 냉전과 탈냉전이 뒤섞인 세계에 살아가고 있으며 여전히 분단체제에 사는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책이 냉전을 몸소 겪은 사람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냉전의 역사와 그 이후’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는 단순히 개인‘들’의 역사도 아니며, 대만 본섬이나 중국 대륙에서 벌어졌던 여러 현대사의 사건들과도 거리가 있다. 진먼을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치했던 전쟁의 각도에서만 바라보게 되면 ‘군사의 요새나 요충지’로만 해석하고 현재는 그 ‘전시 상태’ 역사를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려는 단편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군사화의 잔재를 벗어내고 새롭게 기억하려는 진먼에는 진먼 사람들의 삶과 믿음과 기억, 노력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책이 영어로 처음 나온 지 십여 년이 지났다. 현재의 진먼은 다시 ‘소삼통’으로 연결되어 대만 본섬과 푸지엔성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있다. 혹자는 진먼이 중국 대륙과 더 가깝기 때문에 ‘중국 편’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혹자는 아시아의 다른 접경지대와 비교하며 양안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진먼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의견들은 진먼 밖에서 자신의 시각/입장으로 진먼을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스조니처럼 진먼을 진먼 사람들의 기억으로 계속 분석해나가는 작업이, 그리고 그것을 다른 연결점들과 계속해서 ‘함께 보려는’ 후속 작업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문경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