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7일 양회(兩會) 기간 친강(秦剛) 외교부장은 대만 문제에 관해서 작정을 하고 기자회견에 나섰다. 주미대사를 역임한 친강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전랑(戰狼)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였다.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고, 중·미 관계의 정치적 기초 중의 기초다. 중·미 관계에서 첫 번째로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이다.”고 분명히 밝혔다.
현재 워싱턴과 베이징의 최고지도자 갈 수 없는 곳은 대만이 유일하다. 그만큼 미국은 중국과 대만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다. 중국은 “양안 문제는 내정의 문제”라고 공언하지만, 순수한 중국 내부의 문제도 아니며 그렇다고 완전히 국제 문제도 아니다. 내부와 외부의 문제가 뒤섞여 엇갈리고 복잡하며, 베이징의 대만에 대한 장악 능력도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베이징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원칙’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공식(共識)으로 인정된다. 요즘 신문에 오르내리는 대만과 온두라스와의 단교를 포함하면 현재 대만(중화민국과의 수교국은 13개국에 불과하다. 한국 역시 1992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할 수 있었다. 베이징의 입장에서 ‘하나의 중국’은 타국과 관계 수립에 있어서 근본 전제며 정치적 기초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의 중국’ 문제를 국제사회에 대두하게 만든 장본인은 미국이다. 미국은 양안의 분쟁과 더불어 시종일관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는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대만 문제를 처리하는 데에 있어서 베이징의 주요 상대는 대만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다. 이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미국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역사를 회고할 때, 미국은 이장제모(以蔣制毛, 장제스로서 마오쩌둥을 제어하고), 이국제공(以國制共, 국민당으로서 공산당을 제어), 이독제장(以獨制蔣, 타이두로서 장제스를 제어), 이민제국(以民制國, 민진당으로서 국민당을 제어), 이대제중(以臺制中, 대만으로서 중국을 제어)을 이해제육(以海制陸, 바다로서 육지를 제어) 하는 데 대만문제를 활용해왔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덩샤오핑은 대만 문제가 곧 미국 문제라고 보았다. 그만큼 대만 문제는 중·미관계의 가장 큰 도전이며, 심지어 양국 간 충돌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만 문제는 중·미관계를 판단하는 중요한 시금석이며, 중·미 관계의 체온을 재는 온도계와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21세기 국제정치의 최대 화두가 중국의 굴기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라고 볼 때, 향후 미국이 어떻게 대만을 처리하는가는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일중 정책(One China Policy)
‘하나의 중국’ 문제가 국제사회에 대두된 배경에는 국제정치라는 냉엄한 현실정치가 놓여 있었다. 닉슨과 마오쩌둥은 소련에 대한 견제에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이었다. 1972년, 닉슨 정부는 중공과 연합하여 소련을 견제하려는 연중항소(聯中抗蘇)라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기존의 ‘두 개의 중국’ 정책에서 ‘하나의 중국’ 정책으로 전환했다. 미국은 대만과의 단교, 철군, 폐약(공동방어조약)을 거쳐 마침내 1979년에 베이징과 수교했다. 베이징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에 대한 입장을 미국은 ‘인지(認知, acknowledge, 승인이 아님)’한다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는 당시 중·미가 소련의 패권 견제라는 공동의 전략적 이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후 양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되기 전까지 ‘동맹 아닌 동맹’ 즉 준동맹 상태를 유지해왔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베이징과 워싱턴 간 대만 문제에 관한 타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하나의 중국’은 지금까지 중·미관계를 유지하는 정치적 기초가 되었던 것이다. 바로 중·미 수교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대만 문제였다. 미국은 대만의 국가적 지위를 포기시키고, 대만의 국가 주권을 모호화 했다. 대만 문제의 해결을 먼 미래에 두었을 뿐 아니라, 대만 문제를 주변화했다. 즉 미국은 양안 통일은 양안 ‘중국인’들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쪽으로 양안 미래를 설계했다. 마오 또한 당장은 대만이 미국의 손안에 있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는 ‘신포도’ 심리가 적용했다. 설령 대만을 돌려준다 해도 장제스 반동들이 득시글거리는 대만을 효율적으로 통치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백 년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다는 배짱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대만에 병만 준 것이 아니라 약도 주었다. 중·미수교 커뮤니케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만관계법(Taiwan Act)을 통과시켜 대만 보호의 의무를 스스로 떠안았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미국은 교묘하게 양안 갈등의 복선을 깔아 놓았다. 1972년 상하이 커뮤니케에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한다”고는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베이징의 입장에 도전하지 않는다(not to challenge)고 명시했다. 더구나 양안의 일은 양안 당사자인 ‘중국인’들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은 자국의 여러 정책 중 가장 애매모호하다. 미국의 ‘일중정책(one china policy)’과 베이징의 ‘일중원칙(one china principle)’은 다르다. 미국의 일중정책은 삼보일법(1972년 상하이 공보, 1979년 중·미 수교 공보, 1982년 8·17 공보, 1979년 대만관계법)과 레이건 정부 시절 대만의 장징궈에게 승낙한 6항 보증이 주 내용이다. 그래서 미국은 일중정책을 칭할 때 항상 ‘우리의 일중정책, our one china policy’으로 부른다. 더구나 소련이 해체되고 난 후 중국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해지고, 심지어 21세기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국가 중에 중국이 유일한 후보로 떠오른 시점부터 대만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사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서 대만만큼 절묘한 위치에 있는 곳도 드물다. 미국에 있어서 대만은 언제나 동북아와 동남아의 중간에 떠 있는 불침의 항공모함(unsinkable aircraft)이었다. 맥아더도 그랬고, 오바마도 그랬으며, ‘자유 개방의 인·태 전략’을 내세운 트럼프 정부, 특히 대중견제에서만큼은 트럼프 2.0판인 바이든 정부의 대만에 대한 전략적 가치는 더 높아졌다. 그만큼 중·미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미국은 대만 카드를 사용하여 베이징을 제어하고자 하는 충동도 더 강렬해진다. 하지만 요즘 미국은 마음이 있어도 힘이 따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바이든 정부의 대만카드 활용에 대한 비용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미국은 대만 카드를 사용하여 자신의 구미에 맞게 카드를 치고 싶은 대로 패를 빼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대만해협 장악 능력이 과거에 비해 훨씬 증강했고, 중국의 반타이두(反臺獨) 능력도 과거와 다를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도 예전과 다르다. 더구나 시진핑은 대만과의 통일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연결하고 있다. 그는 대만과의 통일이 없다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없다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