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발턴/서발터니티 관점에서 중국 읽기

중국은 2018년 ‘중화민족’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헌법에 적시하였고, 근현대 역사를 중화민족이 ‘분투’해온 역사로 서술하며 기존과는 다른 국가정체성을 추구하고 있다. 민족과 역사와 문화가 모두 ‘국가 현대화 건설’의 목표 속에 빨려들어가고, 또한 미중 간의 대결 구도가 장기화되는 전환적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중국을 읽고 마주해야 하나?
동서대 중국연구센터 연구소사업단은 서발턴/서발터니티라는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지난 역사와 현재의 문제를 읽어내며, 인간과 지구를 위한 다른 미래를 여는 인문학적 성찰과 실천을 제안해보려한다. 이러한 작업이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구를 제안하는 이유는 지정학 논리의 회귀와 ‘각자도생’의 압박이 더욱 강해지는 시대일수록, 또 다른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마음과 연대의 자리를 마련해야한다는 생각에서이다. 향후 문제의식을 더 구체화하고 다듬어나갈 것이다. 우선 이 글에서는 중국 서발턴 연구의 특징을 간단하게 살펴보고, 서발턴/서발터니티의 관점에서 중국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새로운 관점과 문제의식에 대해 몇 가지 적어보겠다.
중국에서는 서발턴(subaltern)을 ‘저층(低層)’, 서발터니티(subalternity)를 ‘저층성(低層性)’으로 번역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서사에는 ‘인민’을 역사의 주체로 보는 주류적 시각이 있고, 초기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사회 각 계급의 분석」과 「후난(湖南)농민운동고찰보고」는 저층 시각을 드러낸 대표적 글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농민 저층에 의한 혁명 역사가 존재하지만, 중국에서 저층이 곧바로 서발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중국 학계에서는 서발턴을 ‘저층’으로 번역하지만, 이것이 기존에 사용되던 저층 개념과 혼용되며 인도의 서발턴 연구와는 다르게 맥락화되었다.
서발턴이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상황에 놓여있는, 혹은 지배 계급에 의해 규정된 문화와 지식권력에서 배제된 하위주체들을 말한다. 따라서 서발턴이란 자본과 시장 논리에 의해 형성된 구조 뿐 아니라, 국가권력이나 주류 엘리트계급에 의해 설계된 정치적, 문화적 위계구조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중국에서 서발턴은 대개 시장화 개혁 이후 진행된 계층분화구조에서 맨 말단에 위치한 저층의 의미로 사용되었고,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의 취약계층을 의미해왔다.
중국 당국은 ‘사회안정’의 관점에서 저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층에 관한 다양한 실태 조사와 정책 연구를 진행해왔다. 또한 농촌에서 도시로 진입한 농민공(農民工)을 ‘행정’의 논리로 도시 시민과는 다른 집단으로 분리하며, 오랫동안 법 적용이나 사회보장혜택에 대한 접근에서도 차등을 두어왔다. 이러한 행정적, 위계적 칸막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저층 연구는 서발턴 주체의 시각에서 진행되기 보다는,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계층 불평등의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시정함으로써, 중국의 사회건설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관점에서 진행되었다. 저층은 사회주의 주류 담론의 종속적 위치에서, 안정과 질서 유지를 위한 하나의 하위주체로 자리매김되면서, 사회적 온정과 따뜻함을 보내야하는 객체로 대상화되었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의 가부장적이고 온정주의적인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
일당체제 중국에서 서발턴 연구는 당에 의해 허용되지 않는 범주에 있는 정치적, 문화적, 역사적 서발턴에 대한 연구는 전혀 공론화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오히려 저층에 관한 연구가 계급 담론을 억압하고, 중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계급 갈등과 충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한하며 지배이데올로기의 순기능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이익이 침해될 때 저층집단 역시 저항하고, 일련의 권리보호 전략 구축과 행동 자원의 동원을 통해 강력한 주체적 행동 역량을 드러낸다. 그러나 중국 학계에서 집중해왔던 저층 개념에는 기본적으로 계층분화로 인한 분층(分層)은 당연한 현상이고, 여기서 맨 아래에 놓인 저층 현상 역시 불가피하며, 따라서 이러한 저층의 자기 개발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사회가 관심을 갖고 이들을 보호하며 대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구제’에 호소하는 국가의 ‘통치(성)’의 관점이 반영되어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저층에 대한 정책은 두 가지 상반된 방향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데, 하나는 “향촌 진흥”이라는 새로운 국가적 프로젝트에 맞춰 농민과 촌민의 참여를 독려하고 이들의 요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주도의 프로젝트에서 배제된 소수자 저층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각종 루트와 메커니즘 자체를 원천적으로 막고 억압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향후 서발턴/서발터니티의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본다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발견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발전 패러다임’ 중심의 기존 중국 분석에서 놓쳤던 부분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다. 당과 국가와 시장이 기획한 정치경제적 변화에 반응하고 대처하며 욕망하는 민간의 수많은 민중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서발턴적 관점에서 전지구적 자본의 지배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국가주의 기획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으며, 자본과 국가의 권력담론과 통치논리에서 어떻게 서발턴을 규정하고 이들 주체의 삶과 일상에 개입해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서발턴은 단지 말을 할 수 없거나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고정된 약자계층이 아니다. 권력이 자기 이익을 위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제도를 재배열하려할 때, 또한 전염병이나 전쟁 등 비상 상황이 발생한다면, 언제든지 특정 집단의 ‘서발턴화’가 일어날 수 있으며 누구라도 서발턴이 될 수 있다. 서발턴적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 민간에서의 다양한 삶과 고난을 톺아볼 수 있고, 이를 통해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우리 역시 유사한 조건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감각을 키워낼 수 있다.
넷째, 이를 통해 지배권력 논리의 공통점, 즉 우리 사회 안에서 권력관계에 종속되고 권력담론에 은폐되어있는 서발턴/서발턴성의 동시대적 흐름을 포착해낼 수 있다. ‘통치’의 관점에서 볼 때 ‘저층’은 발화의 주체가 아니라 구제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시각은 단순히 중국만의 특징은 아니다. 달라진 국제환경 속에서 국가 단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국의 정치권력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통치’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민주주의체제에서 ‘사회적 약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우파 포퓰리즘 시대로 접어들면서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 도시빈민, 실업자, 여성, 장애인, 난민, 이주민 등을 공격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한다. 이러한 시대에 서발턴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강력한 정치적 동원의 자원이 되었고, 권력에 의해 배제되고 낙인찍힌 존재로서 사회에 불려나왔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문제는, 서발턴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문제를 넘어, 목소리를 내도 이들의 메시지를 듣지 않고 왜곡하며, 심지어 정치적 목적의 도구로 쓰여졌다 버려지는 구조적, 인식적 폭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서발턴/서발터니티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국가와 체제의 차이를 넘어 이러한 권력의 지배 논리와 통치술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서대학교가 위치한 ‘부산’이라는 장소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모든 권력과 자원이 수도권으로 집중된 ‘공간의 불평등’ 문제와 서발턴성을 직시할 수 있게 된다. 부산을 통해, 서발턴적 관점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를 껴안을 수 있으면서도, 이러한 부단한 자기 객관화를 통해 다른 동아시아의 도시들과 소통할 수 있는 굳건한 기반을 만들고, 동시대적으로 마주한 서발턴성을 통해 연대의 고리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서발턴의 목소리를 사회에 드러내고 ‘서발턴의 정치’를 새롭게 재정비하여 우리의 문제로 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아시아 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그들의 문제로 삼게 하고 또한 그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삼아,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진 국가 간 경쟁이 극단적이고 위험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서대 중국연구센터 연구교수 장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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