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대만 총통선거의 안과 밖

대만해협의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가운데 대만은 2024년 1월 13일 중화민국(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일을 100여일 남겨놓고 후보자들의 경쟁구도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야권 단일화 등 여러 변수들이 잠재되어 있어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선거의 추이에 대해 대만 국민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민주진보당 출신의 차이잉원 총통이 집권한 지난 7년여 동안 국제질서와 양안관계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국제적으로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었고 코로나 팬데믹이 전세계를 휩쓸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목도하게 되었다. 양안관계에서는 중국공산당이 민진당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대만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중 충돌의 지정학적 단층지대로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고 있는 대만이 이번 선거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세계인들의 눈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총통선거를 앞둔 대만인들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중국이 그나마 선호할 후보를 선출하여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었으면 좋겠다는 안보 지향적인 타협적 감정과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이 선호하는 후보에 투표하고 싶다는 대만 정체성에 기반한 저항적 감정이 공존한다. 이러한 양가적 감정 사이에서 각 정치세력을 대표하는 총통 후보들의 입장과 대만인들의 선호도는 아래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출처: 대만 언론보도를 참조하여 저자 작성
  • 출처: 대만 온라인 미디어 메이리다오(美麗島)지의 여론조사 결과 정리
현재 각 후보들에 대한 선호도에서는 집권당인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많이 앞서고 있다. 후보자 간 3자 대결에서는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39.7%, 국민당의 허우여우이 후보가 20.2%, 대만민중당의 커원저 후보가 18.3%를 기록하고 있다. 4자 대결에서는 라이칭더 39.1%, 허우여우이 19.6%, 커원저 16.1%, 궈타이밍 8.1%을 기록하고 있다.
대만 총통선거를 둘러싼 외부 환경의 이해
현재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대만 문제 해결에 대해 시간적으로 압박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원인은 3연임을 강행한 최고지도자의 강력한 의지와 역사적 유산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다. 냉철하게 평가하자면, 중국 당국이 평화적인 방식을 동원하여 대만이 자발적으로 통일을 원하게 할만한 장기적 전략의 부족과 자신감 결여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정보당국에 따르면 시진핑이 인민해방군에 2027년까지 대만을 공격할 준비를 끝낼 것을 주문했다고 하지만, 사실 무력을 통한 통일은 중국이 선호하는 선택은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추이를 지켜보면서 중국은 군사적 행동이 가져올 불확실한 결과에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겪고 있는 전쟁의 불확실성과 국내 정세의 불안정성은 베이징이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단기간에 대만을 평화적으로 통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점과 ‘92 컨센서스’와 ‘일국양제’에 대한 대만 여론의 수용도가 매우 축소되어 있다는 상황은 중국이 강경한 수단을 선택하도록 내몰고 있다. 평화적인 통일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무력이라는 위험천만한 수단 외에 다른 길을 찾을 수 없는 아포리아 상황은 중국이 일국양제의 표상인 홍콩을 강하게 탄압하고 대만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지속한 자충수의 결과이다.
따라서 선거 결과와 상관 없이, 중국이 (그나마) 선호하는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나 국민당의 허우여우이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중국은 대만 신정부에 대한 압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양안 간 정치협상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중국 당국은 ‘92 컨센서스’를 인정하는 것을 양안 간 대화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현재의 국제정세와 대만의 여론지형을 감안할 때 어떤 후보가 총통이 되든 마잉주 정부 시기와 같은 베이징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중국 당국은 대만의 신임 총통에게 “대만이 독립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대변하는 ‘92 컨센서스’를 인정하도록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이다.
대만의 여론지형 형성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오인(misperception)
중국의 지도자들은 대만 사회에서의 여론 형성이 대만 정부의 정책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 형성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생긴 착각이다. 그래서 대만 사회에서 92 컨센서스와 일국양제의 수용도가 낮아진 것을 민진당의 책임으로 인식한다. 민진당 정부가 독립을 지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역사교과서 개정 등 대만 정체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이는 여론이 정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중국 엘리트들의 고정관념이거나 민주주의 체제에서 간주관적(intersubjective)으로 구성된 대만 사회의 탈중국 정서를 외면하고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대만 학계나 국제 학계의 평가는 차이잉원 정부가 대만의 독립을 촉진하기 위해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담론이나 정책을 추진했다고 보지 않는다. 차이잉원 총통은 민진당의 급진독립파의 압박을 견뎌내며 “현상유지”의 스탠스를 유지해 왔다. 미국도 “트러블 메이커”였던 천수이볜 총통(2000-2008년 집권)과 달리 온건하고 신중한 정책을 유지해온 차이잉원 총통에 대해 신뢰를 갖고 있다.
반면에 지난 7년간 베이징 당국의 해석과 정책은 이런 미세한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차이잉원 정부가 ‘92 컨센서스’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명목 하에 대화의 채널을 단절시켜 버렸다. 사실 대만 사회에서 선거 공약과 정부의 정책은 여론의 동향을 고려한 것이며 여론의 영향 하에 있다. 따라서 중국 당국이 차이잉원 정부의 양안정책을 비난하며 대화를 거부한 행위는 대만 사회의 주류 여론을 소수 여론으로 둔갑시키고 "대만독립 세력"이라는 실체가 모호하고 여론 기반이 취약한 담론 그룹을 "거대한 적"으로 상정한 것으로서 마치 풍차를 "괴물"로 착각하고 돌진한 돈키호테의 망상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망상은 어쩌면 양안 통일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자신감 결여와 조급함, 그리고 장기적 전략의 부재를 은폐하기 위한 가면일지도 모른다.
대만 선거의 방정식과 중국이 가야할 길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본 방정식은 중도 세력의 지지를 얻는 것이다. 대만 사회의 주류 여론은 현상유지이다. 대만인들은 자신들이 처한 지정학적 압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대만 독립의 추구를 포기한 지 오래다. 주류 여론은 현재의 상태를 사실상의 독립 상태로 이해하고 있을 뿐 법적인 독립을 추구할 의지가 없다. 따라서 후보자들은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자신이 현상유지 정책을 유지할 것이며 중국을 도발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대만독립 추구의 상징적 인물인 라이칭더 후보가 최근 시진핑과의 회담을 원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최근 대만 선거 동향을 우려하며 라이칭더에 대해 “트러블 메이커”이자 외부 세력과 손을 잡은 “분열주의자”라고 비난하며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어떤 정당과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조국 통일의 대세를 바꿀 수 없다는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대만 집권 세력에 대한 중국 당국의 노골적인 적대감은 대만의 민심을 중국으로부터 밀어내 원심력이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며 대만이 더욱 미국에 의존하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풍차에 불과한 민심이 진짜 괴물로 바뀌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양안의 평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중국이 대만 정책의 일관성을 회복하고 평화적 통일의 길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분할 지배(divide and rule)”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만에서 어떤 정치세력의 후보가 집권하든 대화와 협상의 채널을 개방하고 포용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충남대 평화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장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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