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각이 한미일 3각을 보완해야
미중 갈등의 격화와 동북아의 대응

미중 양국간 갈등의 첨예화와 북한의 핵위협으로 한반도와 동북아는 상시적인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미중간의 헤게모니 다툼과 타이완, 남중국해, 북핵 문제 등을 둘러싼 미중간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전세계 특히 한반도 및 동북아는 엄청난 참화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정부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 및 한미일 3각협력 결성을 통해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응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미일과의 협력 강화는 동북아에서 한미일과 북중러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신냉전구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미일 공조 강화가 가져온 불가피한 기회비용이다. 최근 러시아 극동에서의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이러한 움직임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외교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과 한미일 3각의 출범
지난 8월 18일 미국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 미국 대통령 별장에서 회동한 한미일 3국정상은 ‘한미일 새 시대’(New Era)를 선언하며 몇 가지 중요한 합의를 만들어냈다. 세나라 정상은 우선 자유, 인권, 법치라는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상호협력 강화를 선언했다. 이어 안보 위협에 대한 신속한 협의(‘commit to consult’)를 명문화했고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서는 확장억제를 재확인했다. 중국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여온 타이완 문제도 언급했는데 중국을 ‘지역내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가로막는 세력으로 지목하고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다. 경제부문에서도 공급망 연대구축, 미래 핵심기술협력, 금융안정협력을 선언했다. 북한과 중국을 겨냥한 군사 및 경제부문에서의 한미일 3각협력 선언이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한미일 3각협력의 제도화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1회성 행사로 끝나는 전시성 회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1년에 1회이상 정상회의를 개최(대통령 안보실, 국방, 산업장관회의 등 장관급 회의도 별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합의는 여러 측면에서 대중국 포위망 구축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Quad(미,일,호주,인도)와 AUKUS(미.영, 호주)에 이어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새로운 소다자협력이다. 중국 정부의 반발도 이어졌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8월 18일 정례브리핑에서 “어떤 국가도 타국의 안보 이익을 희생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손해를 대가로 삼아 자신의 안보를 도모해서는 안된다”며 미국을 겨냥한 발언을 내놓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산하 환구시보는 8월 17일 “한국은 진흙탕으로 들어가는 의미를 알고있는가?” 제하의 사설을 싣고 “미일은 결심을 굳혔지만 한국은 이번 고비에서 이성과 지혜를 갖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한국이 미중갈등에 휘말리지 말 것을 촉구하는 경고다.
김정은, 푸틴 정상회담과 북러의 밀착
이러한 와중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9월 중순 5박 6일간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했다. 9월 13일에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크렘린궁은 이날 회담에 앞서 ‘우리는 공개할 수 없는 매우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인공위성 개발을 도울 것이냐는 질문에 푸틴 대통령은 “그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왔다”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전쟁에서 사용할 포탄을 러시아에 지원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위성발사 기술 등 첨단 군사기술과 식량, 에너지 등을 지원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어 김정일 위원장은 하바롭스크주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을 방문, 수호이 35 다목적 전투기 조립공장을 시찰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는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도 별도로 만났고 크네비치 군 비행장에서 러시아군 극초음속 미사일 ‘칸잘’과 전략 폭격기 등을 관람했다. 그리고 전략 핵 잠수함 등 최신 장비를 갖춘 러시아 태평양 함대 기지 등 러시아의 첨단 군사시설들을 잇따라 방문했다. 앞으로 양측간 군사분야 협력이 어디까지 진전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되겠지만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패권주의에 대항한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기 때문에 양국간 전략적 협력은 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대통령의 방북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일 위원장의 북한 방문 초청에 대해 푸틴대통령이 흔쾌히 수락했다는 발표도 나왔다.
이러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움직임에 중국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왕이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겸 외교부장이 9월 18일부터 21일 까지 러시아를 방문했다. 왕이 정치국원의 모스크바 방문은 중-러 제 18회 전략 안보협의 참가가 주 목적이지만 최근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친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극동 지역 방문 내용에 대해서도 의견을 청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의 강도에 대해서는 여러 다른 관측들이 있지만 양측 모두 미국주도의 동아시아 질서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큰 흐름상으로는 양국이 연대해 나갈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8월중순 필자가 북경을 방문했을 때 주한중국대사를 지낸 닝푸쿠이 대사가 ‘한국이 미국에 경사되면 될수록 북한에 좋은 일을 해주는 격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면 중국과 러시아에게 북한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화되고 핵개발로 고립무원상태에 있던 북한이 고립에서 탈출해서 북중러 협력의 기회가 만들어 진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 재개를 통한 동북아 긴장완화 필요성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외교적 타개책은 무엇인가? 한국의 미국 밀착으로 조성된 중국과의 대립 구조를 완화시키는 것이다. 가장 유효한 방책은 기존의 한중일 3국협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한미일 삼각과 한중일 3각 모두에 포함되어 있는 당사자다. 그중 한중일 3국협력은 이미 8차례의 정상회의를 개최한 역사를 가진 동북아의 지역협력체제다. 정상회의뿐만 아니라 21개의 장관급회의까지 작동하고 있다. 2011년 9월에는 서울에 상설사무국(TCS)까지 설립됐다. 한중일 세나라에서 파견된 외교관들과 세나라에서 선발된 유수한 인력들이 근무하고 있다. 필자가 이 조직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냈다. 한중일 3각은 경제를 중심으로한 포괄적 지역협력으로서 안보협력(군사 및 경제 분야) 성격이 강한 한미일 3각과는 성격상 다소 차이가 있지만 지정학을 매개로 한 지역협력이며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한중일정상회의는 2019년 말 중국 청뚜 정상회의이래 코로나와 3국간 역사갈등 재발 등으로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차기 정상회의 개최 의장국으로 호스트국가다. 호스트 국가로서의 주도권을 십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재개될 경우 다음과 같은 효과가 기대된다. 첫째는 동북아에서 미중간의 극심한 경쟁을 완화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 중국 모두와 친구로서 잘 지낼수있는 국가다. 한미일 협력의 가장 약한 고리가 한국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한국이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역할을 할수있다는 이야기다. 둘째 동북아에 새로운 활력의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만으로도 동북아 지역 전반의 분위기를 바꿀수있다. 통상적으로 한중일 3국정상회의에선 3국간 안보이슈 뿐만 아니라 경제, 통상, 투자 등 미래 지향적 이슈가 중점적으로 논의된다. ‘3국협력 현황 및 향후 발전 방향’과 ‘주요 지역 및 국제문제’가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기본 의제다. 셋째 북한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한 입장을 조율할 기회도 될 것이다.
3국정상회의 재개와 관련해서는 그동안 3국이 모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약간의 미묘한차이가 있었다. 왕이 중국정치국원이 지난 7월 초 중국 칭따오에서 개최된 3국협력국제포럼(IFTC)에서 3국정상회의 개최 분위기 조성을 강조한 것이 그러한 것이다. 다행히 최근 상황은 3국정상회의 개최에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9월 초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리창 중국총리에게 한중일 정상회의 재개를 제의한데 대해 리창 총리가 적극 호응하겠다고 화답했다. 중국으로서는 한국을 한미일 협력의 틀에서 가급적 끌어내야 할 필요성도 있고 또 중국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이 한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야기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는 이미 한중일 정상회의의 조기 개최 희망을 표명한바 있다.
그동안 한국내에서는 3국정상회의 중국측 참석자가 주석이 아닌 총리인데 대한 약간의 불편함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G20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을 대신해 참석한 리창 중국총리가 한국을 포함 미국 등 정상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름 존재감을 키웠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 이상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3국협력을 활성화하는 것은 윤석열정부의 한미일 협력으로의 쏠림을 완화할수있는 역할을 할수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오랜 우방국인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지리적 인접국인 중국과의 관계도 원만히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한중일 3각이 한미일 3각을 보완해야 한다.

한국외교협회장, 전 주인도대사, 초대 TCS사무총장 신 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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